[웹소설] 비츠 샵 (Witz Shop) - 1화 : 비의 이야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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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야..너 이 정도면 내일 당장 300각이야..하..퍼펙트 아 펄펙ㅌ 그 자체!!"

내 이름은 단비이다. 성이 단 이름이 비. 내일은 대입과 직결되는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다.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그것도 우리 학교처럼 공부랑 사귀는 애들만 모인 소굴에서는 시험 한 번 볼 때마다 자괴감의 나락으로 빠지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 와중에 난 복 받은 편에 속했다. 어려서부터 벼락치기에 능숙했던 나는 기숙사에서 말그대로 ‘밤을 새는’ 인간들, 다시말해 현 내 친구들을 처음 보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밤을 샌 적이 없다. 그래봤자 내가 더 잘하는데 뭐. 난 이런 내가 참 마음에 든다. 정말 경제학이 바라는 이상적 인간이란 말이지..

그런데..

어제 시험을 제대로 망쳤다. 그것도 수학을….채점을 하고 그대로 뛰어내릴 뻔했다. 애초에 틀린 개수가 열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계산할 가치도 없는 점수일 게 뻔했다. 룸메가 있어서 망정이지..그 이후로 3시간을 교복 입은 그대로 침대에 파묻혀 울어댔다. 그야말로 탈수 직전까지 갔다. 그래도 그렇게 세상 떠날듯이 울고, 엄마와 통화하고 나니 한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주변이 보였고, 내일은 기필코 30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하루를 시인 윤동주와 오비탈 공부로 불태우고 나니..아니 이건 진짜 300각인데? 스스로의 단기기억력과 응용력에 대한 만족감에 젖은 채, 시험 전날 나의 멘탈 관리에 가장 바람직한 시간을 가졌다.

매일 밤 11시가 되면 시작되는 나만의 힐링타임..나만의 소확행..서진님의 헤아리는 밤이였다.

요즘같은 가을 바람이 불면 왠지 기분이 센치해지곤 합니다. 가을탄다고 하죠. 가끔은 우울한 생각에 나를 빠뜨리기도 하고, 또 어느 때엔 문득 새로운 인연이 다가올 것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을 선사하는 가을. 저는 낙엽 사이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 숨을 들이마시면 온몸에 한가득 퍼지는 멜랑꼴리한 가을향과 함께 종종 산책을 하며 깊은 사색에 잠기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그 사색의 끝에는 씁쓸하고도 다정한 기억만이 남죠. 어쩌면 소소하지만 나 자신에 오롯이 집중하는 그 짧은 시간들이 말없는 위로가 되어 내일의 나를 응원하고 있는걸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어요. 지금은 밤 열한 시, 저는 서진. 은하수를 건너 별자리를 헤아리는 밤. 오늘도 시작합니다.

역시나 오늘도 서진님의 라디오는 시작멘트부터 따뜻하고 난리다. 어쩜 저렇게 예쁜 말들만 골라하시는지.. 친구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게 학교생활의 낙인 나에게 서진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대학교과서와도 같이 정설만 담은 표본 그 자체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사람이 되고싶어...

“치지직..”
“Attention students. It’s time for roll call. Go back to your floors and sit next to your door. I repeat...”

‘아...또 이 중요한 순간에 점호야..’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에 살고 있다보니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한다. 그렇다고 방송은 또 왜 영어로 하는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대주의야 뭐야.. 아무튼 인원체크와 공지사항 전달만 하는, 사실상 별 의미없는 끽해봐야 5분짜리 점호니까 듣는척, 잠깐 문앞에 나갔다 들어오면 된다. 내 체온으로 데워놓은 따끈한 침대와 폭신한 이불을 마다하고 나가는 게 못마땅할뿐, 귀에 꽂은 이어폰을 들키지 않는 한 라디오가 끊길 일은 없으니 군말없이 나가야지..

당연히 나의 무려 2년 반 동안 연마한 이어폰 내공을 선생님은 오늘도 알아채지 못했고, 더구나 시험 전날이라 점호는 3분이 채 안돼서 끝이 났다. 한 학기에 두번 뿐인 사감 선생님의 배려였다. 그 와중에 방에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겠다고 쭈그려 앉아 준비하고 있는 몇몇 아이들이 보인다. 풉..정말 공부에 미쳤다니까.. 그치만 난 적어도 이 시간엔 나를 위한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다시 침대에 폭 들어가 서진님의 나른한 음성에 잠기고.. 하루의 달콤한 보상과 함께 잠든다.

오늘 아침, 난 가방 안에 내 책과 필기도구, 그 이외의 잡다한 것들을 챙겨 누구보다 일찍 교실문을 열었다. 시험 당일이면 더더욱 바빠지는게 나, 단비니까ㅎㅎ

“좋은 아침!”

“어? 보현아 너 오늘은 체육복 반바지 안입었네? 빨았어? 안입어도 괜찮겠어??”
“몰라..망할거같아”
“야..ㅋㅋ그러지말고 내꺼라도 입고해 나 사물함에 있음. 비밀번호 7283 ㅇㅇ”
“와씨...고맙다 친구야”

“지혜쓰! 너의 행운의 빨간 미키볼펜은 오늘도 잘 챙겼겠지?”
“헐...나 어제 자습실에 놓고왔다…미친!”
“여윽시 그럴줄 알고 이 단비님이 또 챙겨와 주셨지~여기요ㅎㅎ 내새끼 시험잘봐야지! 앞으론 깜빡하지마!ㅎㅎ”

“얼라리...이강준! 여기서 자고 있으면 어떡해ㅋㅋㅋ 오늘 1교시 영어다 이놈아, 영어 못보면 어머니한테 혼난다며 얼른 공부하셔야죠!!”

“오늘이 마지막날이다 끝까지 힘내자! 우리 6반 이번에도 2학년 1등 가자아ㅏ!!”

아침부터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는 내 힘찬 목소리, 이걸로 친구들이 한바탕 웃고 다같이 힘내게 하는게 나로서는 정말 보람찬 일이다. 죽도록 싫어도 매 시험이 기다려지는 아주 자그마한 이유랄까. 올해까지 총 7번, 이렇게 친구들의 별별 징크스를 챙겨주고 기를 불어넣어주는게 나의 시험 당일 아침의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다.

“딩동댕동,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답안지와 펜을...”

“흐아..드디어 끝났다!!!!! 꺄아아아아ㅏ!!!”

시간에 쫓겨 마지막 1초까지 펜을 놓을 수 없었던 세 과목의 시험, 아니 어제와 그저께까지 하면 총 일곱 과목의 시험, 그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전교생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단 3일의 시험을 위한 자그마치 한 달 간의 노력,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함성이었다. 이 함성마저 익숙해질 만큼 우리는 18년이라는 어찌보면 짧은 인생 속에서 수차례의 시험과, 승리와 패배, 결실과 좌절을 견뎌왔다.

어쨌든 이번 시험도 무사히 끝난거니까..! 오늘은 걱정 없이 놀기로 마음먹고 채점도 안하고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친구들과 학교를 나갔다..아무래도 정말 300점일 확률은 적으니까..ㅎㅎ

나와 친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기간의 고통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은 바로, 시험 끝나고 뭘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생각만해도 벌써부터 시험이 끝난것만 같고 마음이 붕붕뜨는, 어찌보면 침착함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될것도 같은 일시적인 행복의 수단이다. 그러나, 긴 싸움에서는 짧은 기쁨이 꼭 필요한 법. 그런 이유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친구들과 즐겁게 고민했던 게 바로 어제였다. 마침 오늘 우리 학교 근처 대학교에서 축제가 열리고, 초청 가수가 무려 비투비…?! 나의 사랑, 나의 희망, 나의 오빠ㅠㅠ 무조건 가야할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니 과분했다. 그리하여 나는 나와 덕질을 함께하는 나의 프렌드들과 함께 실물을 영접하러 축제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난 지금 왜 여기 있는 것인가…
우리 오빠들을 보기도 전에 사회자가 시간을 엄청 끈다. 그럴만도 하지..우리 오빠들을 그냥 보여줘버리면 섭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왜 지금 내가 무대에 올라와 있는거지?

“자, 오늘의 초청가수를 만나보기 전에! 사실 이 축제의 진정한 주인공은 여러분들 아니겠습니까아~ 내가 오늘밤 파뤼를 빛내줄 수 있다! 하시는 분들, 지금 당장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딱 다섯팀만 받겠습니다아, 상품이 어마무시하게 준비되어있습니다아~~ 지금부터 하나! 둘! 셋!”

그렇다. 나의 친구들은 비투비 오빠들의 실물영접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품까지 받아가려는 아주 극악무도하고 안분지족할줄 모르는 것들이었다...하기야 생각해보면 나라도 나같은 친구가 있으면 믿고 올려보낼것 같긴 하다만..내가 워낙 존재감 넘쳤어야지..ㅎ 어찌어찌 좋은 마음으로 잠자코 서 있었더니만 내 옆 자리에 선 사람이 덜덜 떨고 있다. 그리고 이 사람도 나처럼 떠밀려 올라왔구나라는 생각에 왠지 동지애가 샘솟아 먼저 말을 걸었다.

“언니, 왤케 떨어요ㅎㅎ”
“....”
“언니 이럴땐 심호흡 한번 하구 그냥 눈한번 딱! 감고 철판 한장 똭! 깔고!! 금방끝나잖아요 응?”
“....”
“아니...왜 계속 떨어요..그렇게 긴장돼요? 그럼 나 보고 따라해봐요! 쓰읍--후 심호흡하구! 괜.찮.아.요! 자 얼른 따라해봐요오오”
“....”

방금까지 내 옆에서 떨고 있던 이 언니가 내 눈앞에서 말없이 쓰러졌다. 그냥 긴장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갑자기 주변이 웅성웅성 소란스러워졌고, 내 머릿 속을 스치는 한 단어.

‘띠-용’

written by witz-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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