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참혹했네
이제 2월도 거의 다 지나가고 3월이 다가온다. 대학 시간강사로 밥벌이를 하는 나에게는 곤궁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이다. 이번 겨울은 계절학기를 맡고, 특강도 하게 되어서 곤궁함은 사실 좀 줄었다. 그런데 1월 중순까지 이어진 강의를 마치고 나서 몸에서 여기저기 이상 신호가 왔다. 병원 가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했다. 그뿐 아니라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몇해 전과 똑같이 신호 대기중에 뒷차가 내 차를 받아버렸다. 할일이 밀려 있었는데 제 시간에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 일주일 간 입원을 했고, 지금은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인생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계획 자체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될 수 있는 한 순조롭게 내 계획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방학 때 이런 저런 일들을 해야지 했는데 그건 이미 물 건너 가버렸고, 이제는 3월부터 새학기에는 어떤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무리하지 않고 처리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2018년 1학기에는 3개 대학에서 7개 강좌를 맡았다. 강의 준비도 준비지만 강의하는 것 자체가 체력 소모가 많이 된다. 멀리 있는 곳에 운전하고 갈 경우에는 오고 가는 데만도 파김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내 일이고, 주어진 일은 해야 한다. 이것이 또 나의 밥벌이고 생계수단이니까. 강의가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양질의 강의를 하면서도 체력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중간/기말 고사 기간에 밀려드는 과제물도 어떻게 하면 잘 처리할 수 있을지.... 적절한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방안까지 생각해야 한다.
학기 중에도 간간히 병원에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좀 걱정스럽다.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동네 의원에만 가봐도 아픈 사람 천지다. 고령화사회라는 게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닐 게다. 이렇게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으며 유지되는 것이다. 병원에 갔다 올 때마다 아,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하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병원 같은 건 일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던 때가 그립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지금이 그리워질 테니 지금을 좀 더 잘 보내도록 노력하자.
올겨울엔 난생 처음 깊은 우울에도 빠져 봤다. 내 인생관을 한마디로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그동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였다. 그런데 올겨울에 처음 그 인생관이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스러운 삶을 꾸역꾸역 버텨내야 한다면 그것이 꼭 죽음보다 좋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웅웅거렸다. 몸이 안 좋으니 마음도 이렇게 약해졌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텨냈다. 한밤 중에 깨어 멍하니 침대에 걸터 앉아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켄 모기가 지은 <이키가이>(밝은세상, 2018)을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이 책의 제목인 '이키가이'는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삶의 즐거움과 보람' 정도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즐거움을 느끼고 보람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면서 '오늘 커피는 참 맛있네'하며 감탄하는 삶이 '이키가이'라는데, 그건 평심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 책에는 일본인들이 어떻게 자기 삶에서 '이키가이'를 찾고 있는지 여러 실례를 보여주고 있어 유용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군대 신병훈련소에서 처음 들었다. 사격장에 들어가기 전 '피알아이' 교육을 하던 조교가 했던 말이다. 정말 잔인한 말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기기까지 하라니.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즐길 수 없는 것은 피하라. 그러나 역시 인생은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 도처에 도사리는 유격 훈련장과 같다.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그것들에 패배하고 싶지는 않다.
그해 겨울은 참혹했네. 그러나 나는 살아냈어. 봄에는 또 봄의 바람이 불어오니까. 그 바람이 어떨지 한번 기대해보자.
강의 7개라니.. 최소 2시수라해도 14시간인데 이미 내공이 쌓이신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준비를 해야하는거까지 생각하면... 정말 바쁘시겠네요.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도 있어서, 딛고 일어나려고 하면 어떻게 기회가 와서 일으켜준다고 합니다. 한 학기 안아플 사람도 아플만한 스케쥴이시지만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계획대로 안되는게 인생이지만 그래도 해야된다라는 말이 참 공감되네요.
한주의 시작!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시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