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쓰는 하루 : 점심 산책

in #kr7 years ago

점심시간 마다 회사에서 벗어난다. 점심을 먹고 나면 20분 정도의 시간이 남는다. 나는 언제나 이어폰을 끼고 회사를 나가서 회사 주위를 산책한다. 보들레르가 말했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로든’이라고. 나도 그래서 회사에서 잠시 벗어나는 시간을 통해 20분의 자유를 누린다. 항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루트를 걸어 다니는 게 습관이 됐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우직하게 걸어 다녔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엔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요즘은 기온이 부쩍 내려가서 바람이 불면 너무나 춥다. 그래도 나는 걸어 다닌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머리를 산발로 만들지라도 나는 걷는 것을 즐긴다.

처음에는 걷는 시간 동안은 방해 안 받고 생각을 열심히 해보자 싶었다. 그런데 걷다보니 먹은 점심이 소화도 잘 된다. 몇 년 동안 시달리던 장 트러블에서 요즘은 벗어나서 소화가 잘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기분이 든다. 산책을 시작한 이후로 식사를 하고 나서 어디든 걷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산책 코스는 언제나 같은 회사와 풍경이 있지만 매일 걸어 다니는 내가 받아들이는 풍경은 바뀐다. 기분이 좋은 날은 발걸음도 경쾌하고 음악도 흥겹게 들린다. 그렇지 않은 울적한 날은 풍경도 탁해 보이고 칙칙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요즘 산책로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따뜻한 햇볕이 나에게 들어오는 양지 바른 구간이다. 여름에는 싫어하는 구간이지만 겨울엔 따뜻한 햇볕 아래서 걷는 기분이 얼어붙은 대지와 내 마음을 녹여주는 기분이 든다.

매일 내가 코너를 도는 구간에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전에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걸려는 시도를 한 것 같은데 나는 갈 길이 바쁘다. 그 이후로는 저 쪽 코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를 발견한다. 그도 추운 날씨에 나와서 담배 피는 걸 보면 쉬는 시간엔 회사에서 벗어나 있고 싶나보다.

매일 나가는 나를 보면 다른 팀 사람들은 이렇게 추운데도 나가냐고 한다. 나의 산책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몇 명 있다. 걸어 다닌 지 얼마나 됐는지 물어볼 때 알았다. 내가 산책을 시작한지 2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처음 시작할 땐 여름, 겨울은 쉬었는데 요즘은 나가는 게 아예 습관이 돼 버렸다. 나가지 않으면 힘들다. 한번 씩 점심을 빨리 먹으면 기분이 좋다. 더 오래 돌아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기분 좋은 산책은 회사에서 나와서 걸을 때 가장 잘 즐길 수 있다. 집 근처에서 걷는 산책은 이렇게 오래 걸을 수 없다. 20분의 딴 짓이 내가 회사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처음엔 글감을 상상하기 위해서 나갔던 산책이 이제는 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하나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점심 산책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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