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엔 핫팩
토요일.
기분이 좋았다.
길고 지루했던 녹음이 끝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사우나에 있는 아주 뜨거운 불가마에 들어가 몸을 지지고 나니 갈증이나 아이스 까페 라떼를 마시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엔지니어분도 평소보다 더 프렌들리 하셔서 마음도 편했고 작업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녹음을 마치고 스텔라로 돌아와 서로 수고했다 다독이고 작업실을 함께 쓰는 동료들에게 우리 작업물을 들려주었다.
다시 들어보니 녹음했던 트렉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과하게 신나서 과음을 해버렸다.
새벽에 술이 깨니 잠도 깼다.
그때 직감했다. 감기다. 망했다.
일본어, 영어 녹음도 남아있는데 큰일났다 싶었다.
부랴부랴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감기약을 샀다.
술 기운에 세상이 빙글 빙글 돌지만 감기 약을 먹고, 가습기를 틀고, 전기 장판을 틀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잠에 들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너무나 너무나 건조했다.
이런 행동이 처음이는데 본능적으로 서랍 속에 핫팩을 꺼내 목에 붙이고 온기가 생긴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오후 6시엔 일본어 가녹음이 있었고 반드시 컨디션을 회복해야만 했다.
먹고, 자고, 약 먹고를 반복하고 무사히 가녹음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몸살이 났다.
밤새 입술이 하얗게 타버렸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이비인후과에서 3일치 약을 받아왔다.
음원을 담을 피지컬 앨범의 형태와 견적을 뽑아서 디자이너 동생에게 전달해줘야했다.
원하는 기획을 담으면 견적이 터무니 없이 비싸지고 마감도 완성도 있게 나오기 어려워 기획을 4번이나 엎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방해하지 않는 것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틀은 잡는게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진행했다. 결국 원하는 기획이 건졌고 견적도 저렴했다. 디자이너 동생도 내 기획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은 좋은 기운을 받았다.
진이 빠져 있을 때 좋은 기운은 정말로 달디 달게 다가온다.
급한 일정은 마무리 했으니
이제 활동을 하지 않는 동안 팬들에게 전할 근황을 담은 영상 제작, 창작 지원 해주시는 곳에 보낼 행정 서류 작성, 뮤직 비디오 촬영 전 아트디렉팅 미팅 잡고, 연말정산을 하고 나니 목요일이 되었다.
기타오빠가 지난 일요일 내가 개 취해서 고래고래 아프리카어를 하는 영상을 보내왔다.
웃고 기운 내라고 보낸거겠지만 나라는 인간은 어쩜 이리 개차반일까 싶어 부끄럽고 창피해서 절로 한숨이 나오고 고개가 푹 꺼졌다.
고개를 떨구니 따뜻한 핫팩이 목을 지긋이 눌렀다.
지긋이 온기가 전해졌다.
기운이 없고, 부끄럽고, 지칠 때 고개를 떨구더라도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든든한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이번 감기 때문에 처음 핫팩을 목에 붙여보고 얻은 새로운 감흥이다.ㅎㅎㅎ
다른 사람들에게도 핫팩 같은 존재가 하나씩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친다 하더라도 어느 때라도 나를 위로 할 수 있는 것.
부담이 없고 오로지 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 자체가 나를 두려움 없게 씩씩하게 만든다.
나이를 먹을 수록 나를 위로할 방법을 하나, 둘씩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가진게 없어 무작정 시도했던 때의 치기, 열정, 용감한 사람이다 라는 얘기를 듣는 것 보다
이제는 "나는 용기있는 사람이다" 라고 스스로 말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
아 기운이 난다.
잘한다 민댕이 우쭈쭈 오구 이뻐 죽겄다 내새꾸 어쩜 이렇게 장하지 어쩜 이렇게 똑소리가 난다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알차지네 기냥 뉘집 새꾸인지 기냥 총기고 원기고 반짝반짝 빛이 나네 아구 참말로 이뻐 죽겄써가지고 냥 맴이 근질근질 좋아죽겄다잉 오구 이뽀라 귀하다 귀해 하구 이쁜거 내새꾸
간만입니당. 보팅 한번 해봐쥼 ㅋ
정말 간만이네 :) 주변에 가입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겠지 싶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