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호석, 최종범 죽음 뒤에 ‘삼성의 노조 깨기’ 있었다
검찰이 지난달 삼성전자 본사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6천여 건의 문서 중에는 회사 측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를 와해시키려 한 정황이 담긴 문서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 조합원을 사찰하거나, 유무형의 불이익을 주며 회사에서 퇴출하는 내용 등의 각종 부당 행위에 삼성전자 본사가 개입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의 무수한 탄압 속에서도 노조를 지켜 온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그동안 회사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기고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돌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담쟁이(시인 도종환)
기고에 앞서 이 시를 쓴 것은, 우리가 가열했던 지난 2014년 염호석 열사 투쟁이 벌어졌던 서초동 43일간의 총상경 투쟁에서 직접 낭독하기도 했고 우리 삶의 모습과도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난 5년 간의 투쟁이 그러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 최대 재벌이자 권력인 삼성에 맞선 투쟁, 마음으론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로 다가오던 삼성이란 거대한 힘과 그 벽에 부딪혀 절규하던 우리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원청의 관리자들은 우리가 소통하고 있던 톡방에서 전체 소식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불손 세력이라 낙인찍고 전국에서 참여했던 동지들의 스마트폰을 압수해서 주동자를 색출하겠다고 떠벌렸다. 그리고는 다들 불려 가서 삼성에서는 물론 대한민국 사회 어느 곳에서도 불량모임은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들었을 때, 우리들은 위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분노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직장은 그렇게 말도 안 되던 직장이었다. 노동3권을 요구하면 문제 인력(MJ)이 되는 세상,아니 노동3권이 아니라 우리의 급여가 대단히 복잡해서 그 급여 계산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여도 문제 인력이 되는 회사였다. 한여름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을 가야 해도 접수돼 있는 건은 다 처리하고 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회사, 6주~7주씩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하루 쉬겠다고 하면 '이제 나오지 말고 집에서 푹 쉬면 되지'라는 말을 하는 회사, 여름휴가는 평생 단 한 번도 꿈에서라도 꿔볼 수 없던 그런 회사를 우리는 다니고 있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살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살기 위해 노동조합을 시작했다. 노동조합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탈퇴, 회유 협박들이 있었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탄탄했다. 조합을 결성함과 동시에 노동부의 근로감독도 있었다 그로 인해 현장은 조직화에 활기를 띌 수 있었고 조직은 1500명까지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그해 추석 직전 고용노동부는 어이없는 근로감독 결과를 내놓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결과가 나오자마자 사측의 노조탄압은 악랄하게 진행되었다.
우선 표적감사가 진행됐다. 5~6년 전에 수리했던 건에 대해서도 부실이라고 들이밀었다. 조합원들을 수리업무에서 배제시키기도 했다. 또한 조합원이 많은 센터는 지역을 빼앗아 가버렸다. 조합원들의 업무를 없애 버렸다. 최저임금도, 기본급도, 단체협약도, 아무것도 없던 시기였다. 오로지 건당 수당으로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30만 원짜리 50만 원짜리 급여 명세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감을 빼앗긴 우리는 당장 생활이 안 되는 위기에 처했고 사측은 표적감사를 통해 '직장에서 해고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우리는 당장의 생활고와 해고 협박에 시달렸고, 조합원들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때 천안센터의 조합원이었던 종범이가 "전태일 열사처럼은 못해도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남은 동지들의 단결을 명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우리는 한겨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침낭마저 빼앗긴 채 비닐 한 장에 뼈를 파고드는 추위를 버텨가며 열사 투쟁을 하였고 마침내 합의했다. 삼성은 리스 차량 제공, 비수기 인센티브 제공, 열사에 대한 사과 등을 하였다. 하지만 노조탄압은 계속 진행됐다.
이미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나와 있듯이, 노조 고사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열사 투쟁이 끝나고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여전히 자행되는 노조탄압에 조합원들은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일감은 오지 않았고 저임금에 연명해야 했으며, 임단협 교섭에서도 경총을 앞세워 교섭해태를 자행해 왔다. 더욱더 악랄하게, 더욱더 치밀하게 우리를 옥죄어 왔다.
2014년 2월 27일 해운대센터 기습 폐업을 시작으로 이천과 아산센터까지 폐업시켰다. 위장폐업이었다. 폐업을 앞세워 우리들의 직장을 빼앗아갔고 우리 동지들은 직장마저도 잃게 되었다. 삼성의 전방위적 노조탄압은 그렇게 계속 자행됐다. 그러던 중 우리는 쟁의 행위를 시작하였고 5월 14일 삼성 노조탄압 규탄집회를 열었다. 이날 이 대회가 끝나고 호석이는 부산 내려가는 차에 오르기 직전 저를 뒤에서 안아주며 "부지회장님 힘드시죠? 힘내세요"라고 했다. 이게 호석이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다음날 호석이는 카톡을 남기고 실종됐으며, 우리는 마지막 휴대폰 신호가 잡힌 곳이 정동진이란 말을 듣고 정동진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5월 17일 호석이는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시신을 안치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날 저녁 우리는 유족(부친)으로부터 장례에 관한 위임을 받고 강릉의료원에서 서울의료원으로 호석이를 옮겼다. 새벽에는 모친에게도 장례에 관한 위임을 받았고, 오전부터 조문을 받았다. 하지만 부친은 갑자기 위임장 번복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경찰은 5월 18일 일요일 저녁 7시경 "부친의 신고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10분 만에 300여 명에 달하는 병력을 대동하여 우리에게서 시신을 탈취해갔다. 1980년대 공안정국에서나 있었던 시신 탈취 사건이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나라에서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이 일은 그 문건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반듯이 시신 탈취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야 하고 호석이의 시신을 찾아와야 한다. 친모의 시신 반환 요구를 경찰은 그냥 묵살하고 말았다. 삼성은 천인공노할 일마저 그렇게 벌였다.
우리는 또다시 열사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미 조합원들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더 이상은 억울해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그런 상태였다. 삼성은 그렇게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아 갔고 우리는 죽을 수 없었기에 살기 위한 투쟁을 했다. 모든 조합원들은 서초동에서 43일간의 투쟁을 벌였고, 그 투쟁에서 또 한 번의 승리를 하였다. 그때서야 우리는 임단협을 할 수 있었고, 버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하지만 호석이는 찾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노조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폐업은 이어지고 있고, 그래서 10~20년 다닌 우리의 근속연수는 0년으로 바뀌어 신입사원이 돼버렸다. 일감을 주지 않아 저임금의 굴레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감시당하고 있으며, 여전히 탈퇴 회유가 치밀하게 다가오고 있다. 교섭은 매년 파행에 치달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힘들게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의 노조 깨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노조에 가입한 신규센터가 두 곳이 있다. 이 두 곳 다 탈퇴 회유 협박이 있었고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됐다. 한 곳의 경우 원청 SV가 직접 조합원을 한 명씩 불러 개별 면담을 통해 '불만이 무엇이냐. 본인이 책임지고 다 해결해주겠다'고 회유한 녹취도 존재한다.
삼성은 우리가 노동조합을 해온 5년간, 아니 우리가 이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순간부터 현재까지 인사노무관리를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고용이나 임금에 관한 책임에서는 삼성은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우리 직원이 아니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고, 고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우리는 삼성의 옷을 입고 삼성을 대표하여 최일선에서 고객들을 만나면서 삼성의 일을 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삼성의 직원이 아닌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세상에 밝혀져야 할 일이다.
- 글 :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표수석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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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삼성은 망했으면 좋겠어요.
음냐... 참 어려운 댓글을 다셨네요...
아핫... ㅎㅎㅎㅎㅎ
박근혜 재판에서도 '역시나...'였었죠. 답답합니다.
@홍보해
무슨죄를 지어도 단죄가 안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오늘날 삼성이 1등 기업이라고 내세울 수 있고 많은 국민들에게 제품력을 인정받게 뒷받침해준 가장 큰 역할 중 하나가 A/S인데 정작 서비스센터 직원 분들은 직접고용도 안 하면서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죠. 생계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까지 짊어지고 투쟁하시는 게 너무나도 어렵겠지만 힘내시란 말밖에 드릴 게 없어 죄송합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정말 비인간적 행태의 극치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이라는 곳이 이런 위법행위를 많은 사람들이 알 정도로 대놓고 하는데도 멀쩡하게 영리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죠. 대기업일수록 법의 눈치를 더 보게 만들고 법을 어길 경우에는 기업 해체까지 갈 정도의 징벌을 받는 시대가 오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