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editor cum designer, marketer cum designer
웹진 회사였던 저번 직장을 그만두고 6개월간 웹디자인 학원에 다녔더랬다. 그전에도 간단한 코딩 수정은 할 줄 알았지만, 조금만 배우면 될 것 같은 페이지 코딩과 이미지 수정을 못해서 매번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의 손을 빌려야 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 회사(대학 출판부)에 들어오며 제출한 이력서에서 그 점을 눈여겨본 출판부장은 장비(컴퓨터와 프로그램)를 지원해줄 테니 직접 단행본 조판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도 원하던 바였다. 표지 디자인은 어렵겠지만 본문 조판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데 매번 조판자에게 일을 의뢰하고 종이로 뽑아 수정을 표시하고 또 조판자에게 부탁하는 게 낭비처럼 느껴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출근 첫 날부터 커다란 새 책상 위에 4백만원짜리 윈도용 쿼크익스프레스(아는 사람은 알 거다)가 깔린 3백만원짜리 컴퓨터가 구비되었다. 그렇게 나는 편집자 겸 (본문) 디자이너가 되었다. 나는 신도 나고 의욕도 충만해서 이것저것 되도 않은 멋을 부려가며 디자이너 흉내를 열심히 내보았다.
작은 부서니까, 겸직을 해야 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입사한 남자 영업자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공대와 경영대 교재를 주로 만드는 출판사 사장이라고 했다. 그도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영업자로 일했다. 주로 교수들에게 술을 사주고 성매매 접대까지 해주는 일이라, 아내가 너무너무 싫어했다고. 아버지와 갈등도 많았던 모양이었다. 전혀 다른 상황이겠지만, 왠지 전에 다녔던 출판사의 2세들이 떠올랐다.
사실 그는 미국에서도 힙스터들의 고장으로 유명한, 포틀랜드에서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유학파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사실은 한국에서 대학을 못 가니까 아버지가 미국으로 보내버린 거였다고 넉살 좋게 털어놓았다. 디자이너가 그다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영업자가 자기 성격엔 딱이지만, 성매매 접대는 정말 못해먹겠다고, 이곳은 기독교계 학교니까 그런 일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들어왔다고 했다.
그 역시 표지 디자이너 일도 겸직해야 했고, 그의 책상엔 최신 윈도 컴퓨터와 최신 맥 컴퓨터가 동시에 놓였다. 그는 오래돼서 다 잊어버린 것 같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첫 작품으로 신학과 교수의 책 표지를 그럴 듯하게 디자인해냈다.
문제는 신학과 교수가 “마음에 든다”면서도, 딱 하나, 전체적인 소용돌이무늬 가운데에 마침, 조금만 조절하면 십자가 비슷하게 보일 만한 부분이 있으니 거기를 조금 강조해달라고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영업자 겸 표지 디자이너는 이상하게 고집 비슷한 걸 부리며, 교수의 요구를 속 시원히 들어주지 않았다. 표지 시안이 계속 퇴짜를 맞길 며칠째, 몇 주째, 영업자 겸 디자이너는 결국 ‘조금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흉측할 정도로 강조된 십자가 무늬를 한가운데 떡 박아넣은 표지를 내놓았다. 결국 그게 결재를 받았다.
그렇게 편집자와 영업자가 어설픈 디자이너를 겸직하게 되었지만, ‘진짜’ 디자인이 필요할 때는 학교의 디자인 센터에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 신설된 대학 디자인 센터에도 새로 들어온 직원이 사실상 혼자 일하고 있었다.
그녀도 내 또래로 보였다. 그리고 나처럼 경력직 채용이었지만 유사점은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나와 달리 정규직이었고 센터장이었다. 하지만 출판부에서 일할 당시에는 그녀와 별 에피소드가 없었다. 인상적인 조우는 내가 이 대학 출판부를 그만두고 나서 몇 달 후, 전시기획사에 입사했을 때, 그녀를 다시 만나서 경험했다. 이 대학의 개교 기념 전시회에, 우리 전시기획사가 기획과 운영을 맡았던 것이다.
전 직장에서 개최한 행사에 하청을 맡은 업체의 직원으로 참여하게 되는 경우는 어쩌면 꽤 많을 것 같다. 그래도 나의 경우엔 담당 직원은 아니었고, 하루만 지원을 나간 거였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디자인 센터장은 나를 보더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다시 오기 싫었을 전 직장에 이렇게 일하러 오게 돼서 많이 불편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너처럼 1-2년, 일 때문에 다닌 곳이 아니라, 가장 꽃다운 나이에 7년 이상을 보내며 사랑하고 공부하고 우정을 쌓고 일을 했던 모교이기도 하다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모교와 나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감정들이 얼룩진 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