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uple Time #3] 그럼 왜 우리는 지금

in #kr7 years ago (edited)


사랑이 있나요, 라고 K는 물었다.
당신 같은 사람을 보면 꼭 묻고 싶어진다고 했다. 사랑을 믿나요, 가 아니라 사랑이 있나요, 라고.

나는 있을 수도 있겠죠, 라고 대답했다. 없을 수도 있구요. 세상에 사랑이라는 말이 있으니 사랑도 어딘가 있겠죠. 아니면 사랑이라는 말이 있어서 사랑도 있는 건지도 모르고.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 사랑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사랑이 있다고 믿게 만든 걸 수도 있고. 용이라는 말이 있다고 세상에 용이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만 전언어적 조건에 놓인 생경한 무언가에 이름을 붙여서 길들이고 통제하고 싶은 거죠. 따스한 총천연색의 허구라고 할까, 혹은 한순간의 변덕이 필수불가결한 영원성을 갖게 됐다고 할까. 어쨌든 한번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 인생이 사정없이 허무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잠깐의 침묵이 들어서고 K는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우리는 지금 함께 있죠.

그녀는 잠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물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4
TRX 0.24
JST 0.032
BTC 89978.22
ETH 2202.49
SBD 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