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도리탕이 웬말이니
마침 개교기념일이라 오늘 영화제에 올 수 있었어요. 라며 유하은 감독은 해맑게 답했다. 나는 툭하면 조퇴하고 공원에서 담배나 피고 있을 나이였다. 이렇게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이른 나이에 필드에 진입한 어린 감독에게 무한한 응원을 해주고 싶어 자꾸 말을 걸었다. 영화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감사합니다. 영화제에 뽑히면 보통 2회 상영을 하기 때문에 같은 섹션에 속한 우리는 서로의 영화를 본 상태였다. 곁에 있던 감독의 어머니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유하은 감독의 어머니는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류미례 감독이었다. 대기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동안 유하은 감독은 옆에서 수줍은 미소만 띄고 있을 뿐이었다. 감독이라는 직함을 이어받은 딸이 엄마는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상영 시간이 끝나자 우리는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극장으로 들어갔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이 모이는 영화제의 특성상, 대개 관객과의 대화에서 내밀하고 깊은 이야기는 잘 오가지 않는다. 예상했던 질문과 예상했던 답이 오갔다. 유하은 감독이 귀엽고 재치있는 답을 할 때마다 어머니는 앞쪽 객석에 앉아 딸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기에 바빴다. 객석에서 유하은 감독에게 질문이 이어졌다. 영화 감독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지는 않으셨나요? 영화를 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딸은 이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아왔을까. 감독은 의식하듯 선을 그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엄마와 나는 달라요. 영화적인 스타일은 아주 달라요. 여전히 귀여운 대답에 모두는 웃었다. 그때였다. 유하은 감독은 갑자기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엄마가, 우리 엄마가, 나를 키우느라 지난 10년간 본인의 영화를 못 만든 것을 생각하면 너무 슬퍼요. 그리고 엄마에게 고마워요. 극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객석에 있던 류미례 감독도 울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리없이 닦고 있었다. 같은 감독 입장으로 앞에 나와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장면이었다. 가눌 수 없는 먹먹함이 몰려왔다. 마이크를 든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사이, 무대에 선 또다른 여성 감독은 자신이 지향해야 할 페미니즘에 관한 묵직한 멘트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뿅 하고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내용도 없이 헛소리나 지껄인 7분짜리 농담거리, <모스크바 닭도리탕>이나 만들어 이런 감독들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쌩뚱맞게 느껴졌다. 아니, 닭도리탕이라니, 이런 자리에서 닭도리탕이 웬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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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 읽어도 먹먹함이 전해지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