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가상화폐 정보를 드립니다. - 03 [완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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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정보를 드립니다. -01편
https://steemit.com/kr-newbie/@sts16/01


가상화폐 정보를 드립니다. -02편
https://steemit.com/kr-newbie/@sts16/02





- 본문


상기는 연신 손에 쥔 볼펜을 돌리며 생각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가상화폐 시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 그 자체를 움직이는 큰 손, 이른바 세력이라는 자들조차도 다수가 존재하기에 서로의 밥그릇을 걸고 싸움을 벌이는 곳이 거래시장이다.

그런데 그런 가상화폐 시장에서 100% 적중률이라니. Natas라는 스트리머가 과연 실존하는 사람일까? 상기는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우성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한참을 침묵했다. 고뇌에 가득 찬 얼굴이 마치 고해성사를 앞둔 죄인이 자신의 치부를 고백하기 전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인터뷰 도중 침묵하는 사람에게 섣부르게 입 열기를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알기에 박상기 기자는 함께 침묵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우성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투자금이 슬슬 억 단위에 다가갈 무렵, 상민이에게 연락이 왔어요. 거의 한 달만이었죠. 주말에 자신의 생일 겸 집들이 파티 할건데 꼭 참석하라는 내용이었어요. 벌써 생일인가 싶었는데 집들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상민이는 그런 타입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데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에요. 집은 그저 잠자고 컴퓨터만 할 수 있으면 되는 타입이죠. 귀찮아서 이사 같은 거 잘 안 하는 녀석인데 갑자기 집들이라니? 회사도 그만 뒀겠다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참석하겠다고 했어요. 만약 그 파티를 참석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요. 결과는 뭐…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 같다는 결론을 내리지만요.

상민이는 이사를 갔어요. 예전의 작고 음침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반지하 원룸에서 대로변의 오피스텔 7층으로요. 눈대중으로 봐도 20평은 충분했어요. 창 밖으로는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멋진 집이었죠. 지금까지 대학교 동기나 고등학교 친구들 누구를 봐도 그런 집에 사는 친구는 없었어요. 일반적인 월급쟁이의 돈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곳이니까요.


푸짐하게 음식을 시켜 생일 잔치를 벌이면서 자랑하듯 거만하게 얘기하더군요. 전에 투자하던 가상화폐 ICO가 초 대박이 나면서 1000%정도의 수익을 냈고 2억 5천짜리 오피스텔에 입주했다는 거였죠. ICO라니. ICO는 아직 거래소에 상장하지 않은 코인을 아이디어와 비전만 가지고 가치를 판단해서 저렴하게 구매하는 투자 방식이에요. 코인이 거래소에 상장되면 가치가 폭등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상장에 실패하면 모든 돈을 잃어버리는, 말 그대로 도박이죠.

근데 상민이는 그 ICO에 전재산을 투자한 거에요.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말이 안 되는 짓이에요. 그렇게 무식하게 하는 투자자는 없어요. 정말…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죠. 그리고 그 결과는 100% 적중률의 완벽한 정보를 가진 저보다 더 큰 수익을 냈죠. 지금껏 작은 소득을 여러 번 올린 제 투자 방식이 하찮게 느껴졌어요. 마음이 요동쳤죠. 참을 수 없는 시기와 분노가 솟아올랐어요. 어떻게든 녀석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서 더 큰 집에서 더 화려한 파티를 준비하고 녀석을 초대하고 싶었어요. 좃나게 화려한 초대장을 보내서 말이죠.

전 상민이의 사진을 찍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나구요? 예상하는 그대로에요. 상민이의 정보는 Natas에게 굉장한 평가를 받았어요. 지금껏 받은 정보 중에 최고이고 앞으로도 이런 정보를 계속 주면 좋겠다고 했죠. 그 대가로 받은 가상화폐 정보는 저에게 1000%의 수익을 줬어요.

물론 저도 전 재산을 투자한 상태에서 낸 수익이었기 때문에 지금껏 만져보지 못한 수십억 단위의 돈을 벌었어요. 그 돈으로 폭 6미터의 통유리 너머로 한강이 보이는 오피스텔로 이사갔죠. 정말 끝내줬어요. TV에서나 보던 연예인들이 사는 집 같았어요. 양 팔을 벌려도 끝이 닿지 않는 벽걸이 TV에 호텔에나 있을법한 킹사이즈 침대, 전에 살던 원룸보다 더 큰 욕실까지. 너무 행복했어요. 이제 인생의 모든 목표를 이룬 것 같았죠. 친한 친구의 정보를 팔았다는 사실이 가끔 저를 찜찜하게 만들었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나중에 듣기로는 상민이가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새로운 ICO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봐서 큰 빚을 졌다는 거였죠. 제가 제공한 정보 덕분인가 싶어 확인차 백반집을 찾아갔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멀쩡했죠. 그걸로 안심했어요. 제 나름의 규칙이죠. 백반집 아저씨가 무사하면 내가 제공한 정보 때문이 아니다라는 규칙.

따라서, 상민이의 실패는 내 탓이 아니라 여겼어요. 그저 운이 없었을 뿐. 그렇게 상민이의 정보로 큰 수익을 내고 나니 더 이상 예전의 작은 정보로 얻는 수익은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전 점점 가까운 관계의 사람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았어요. 예전에는 약속 한번 잡으려고 하면 바빠서 보기 힘든 사람들도 굉장히 쉽게 만날 수 있었어요. 돈이 좋긴 좋더라구요. 예전보다 정보 수집이 쉬웠어요. 부자와의 약속을 피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45만원짜리 스시 코스 요리를 주문하는 식당에서 만나서 근황 얘기를 나누고 가상화폐에 대해서 물어오면 그냥 운이 좋았다고 말하면서 겸손한 미소를 짓고, 같이 셀카를 찍은 뒤 마지막에 헤어지기 전에는 얼마 전에 선물 들어온 게 있는데 양이 많아서 나눠주고 싶다. 주소 좀 알려달라고 하면 끝이었죠. 가까운 사람들의 정보는 더욱 큰 돈을 저에게 가져다 줬고 점점 더 부자가 됐어요.

기자님은 혹시 도박 같은 거 해보셨어요? 꼭 카지노가 아니라 학생 때 친구들하고 홀짝으로 동전 개수 맞추는 정도는 해봤죠? 하다못해 명절 때 고스톱이라도 해보셨을 텐데. 고스톱을 예로 들어볼까요? 패가 좋으면 1고를 달성하고 나서 곧바로 2고를 외치죠. 경우에 따라 3고도 괜찮아요. 그런데 4고?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아무리 패가 좋아도 갑자기 내가 쌀 수도 있고 상대방의 패에 맞는 카드가 나와서 판이 뒤집힐 수 있으니까요.


그 당시의 제가 그랬어요. 계속해서 성공이 이어지니까 슬슬 불안해지더군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희망 없는 하루를 보내던 내가 이렇게까지 성공해도 괜찮은 걸까? 여기서 4고를 외치고 5고를 외치다가 단번에 역전 당하면서 판이 뒤집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거래하고 그만 두기로 결심했어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요. 60평짜리 오피스텔에 살면서 고급 외제차도 주차장에 세워져 있고 어느 정도 자리는 잡았으니 목돈만 마련해놓고 남은 인생을 그것만 쓰면서 조용히 지내면 되겠다 싶었죠.


미리 작성해놨던 리스트 중에 Natas에게 제공하지 않은 정보는 단 두 명뿐이었어요. 제 부모님이었죠. 미친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이 거래에 더 이상 위험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Natas와 거래를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백반집 아저씨는 무사했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의 정보를 제공하자 Natas에게 곧바로 답장이 왔어요.


제목: Re: 가상화폐 정보를 드립니다.

내용: 정보 감사합니다.



정보

  • 종목: 가상화폐 ICO 참여 - Lived 코인

  • 참여 시각: 2018년 2월 22일 오후 10시 00분

  • 매도 시각: 2018년 6월 6일 오후 6시 00분

  • 기대 수익: BitPinex, Vinence 거래소 상장되면서 ICO 구입 가격 대비 3000% 상승.



평소와 달리 ICO 참여 정보였어요. 처음이었죠. 코인 거래와 달리 ICO는 준비할게 많아요. ICO를주관하는 기업은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비전을 강조하고 투자자들에게 경쟁심을 부추기기 위해 지정된 기간 동안 한정된 수량의 코인을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투자자 입장에서는 피 말리는 시간 싸움인 거죠.

구매 방법도 좀 다른데 원화로 구매하는 게 아니라 코인 중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코인이 있어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코인이 그렇죠. 그런 기축통화 코인을 구매해서 ICO코인을 구매하는 거죠. 코인으로 코인을 사는 거에요.


문제는 기툭통화 코인의 시세도 계속 변동하기 때문에 2중으로 변동성이 있는 위험한 거래에요. ICO 코인이 성공해서 가격이 올라도 기축통화 코인의 시세가 떨어지면 본전인 거죠. Natas이 정보였기 때문에 수익이 나는 건 걱정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100% 정확한 정보니까요.

한 가지 위험요소는 제 시간에 ICO 코인을 구매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Lived 코인 ICO 정보를 검색해보니 2월 22일 10시부터 판매를 시작해서 준비한 수량이 모두 소진되면 종료되는 방식이었어요. 이미 몇몇 블로거나 분석가들에 의해 가치를 인정받은 코인이었고 사람들이 몰려들게 뻔했어요. 저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고 철저하게 준비했어요. 기축통화 코인인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가장 빠른 전송속도를 가진 지갑에 보관해두었죠.


판매가 시작되면 Lived ICO의 지갑 주소가 공개되고 그 주소로 내가 구매한 비트코인을 전송하면 되는 방식이예요. 전송 시 수수료도 최고로 설정했어요. 기존의 다른 ICO가 아무리 빨리 종료되어도 1시간 정도는 걸리는 걸 알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대비는 꼼꼼할수록 좋잖아요. 그렇게 집에서 조용히 2월 22일을 기다렸어요. 친절하게도 Lived 코인 홈페이지에는 카운트 다운을 초 단위로 알려줬어요. 숫자가 줄어들수록 가슴이 두근거렸죠. 방해 받지 않기 위해 핸드폰도 꺼두고 모니터 화면만 바라봤어요.

1분이 남았을 때는 F5버튼을 연타하며 웹 페이지를 계속 갱신했죠. 마침내 10시가 되는 순간, 웹 페이지가 다운됐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서버가 트래픽을 처리하지 못한 거죠. 사람이 몰릴 줄은 알았지만 웹 페이지가 다운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적잖아 당황했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1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사람이 몰리면 더 일찍 판매가 종료되는 건 아닐까 불안했어요. 계속해서 F5버튼을 누르면서 웹 페이지를 갱신하고 또 누르고..


마침내 Lived ICO의 지갑 주소가 웹 페이지에 출력됐고 전 곧바로 비싼 수수료를 내고 프리미엄 전송을 시작했어요. 전송에는 대략 10분에서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진행도를 바라보면서 쉼 없이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어요. 그러면서 다른 웹 페이지 창을 띄워서 각종 코인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를 모니터링 하는데 벌써 Lived ICO 판매가 종료되었다는 글이 보였어요.

믿을 수가 없어서 링크된 Lived ICO 트위터에 가보니 역대 최단기록 판매 종료라는 큼직한 문구와 함께 투자자 분들의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 것입니다. 라는 축하 글이 올라와있었죠.
제가 전송한 비트코인은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출력됐고 전 크게 실망했어요.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죠.


ICO에 참여하기 위해 어머니의 정보까지 사용했는데 결과는 실패였으니까요. 키보드를 주먹으로 내려치고 모니터를 집어 던지고 괴성을 지르면서 컴퓨터 데스크를 엎어버렸어요. 7억을 투자해 3000%의 수익을 내고 210억을 벌 수 있는 거래를 날려버렸는데 실감이 나질 않았어요.

그렇게 30분 정도를 날뛰다가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으로 코인 거래소에 접속했어요. ICO 참여를 위해 구매한 비트코인을 다시 판매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화면에는 파란 막대와 파란 숫자가 가득했어요. 불과 30분 사이에 25%가 하락한 거죠. 갑작스러운 폭락이었어요. 손이 덜덜 떨렸지만 침착하려고 애썼어요. 갑작스러운 폭락 뒤에는 반드시 반등해서 다시 상승한다는 법칙이 있으니까요. 패닉에 빠져 지금 팔아버리면 원금을 복구할 수 없으니 기다렸다가 상승하면 그때 팔 생각이었어요.


잠시 후에 빨간색 막대가 생성되면서 반등을 알리는 차트가 그려졌죠. 전 그럼 그렇지, 좀더 기다렸다가 원금의 90% 정도 수준이 되면 판매하려고 했어요. 큰 욕심은 아니라고 판단했죠. 그런데 반등은 금방 끝나고 다시 거대한 파란색 막대가 연이어 이어지면서 더욱 큰 하락이 시작됐어요. 수익률은 -30%, -36%, -41% 계속 떨어졌죠. 이해할 수 없었어요. 흐름상 지금은 상승하는 게 맞는데 계속 하락이 이어졌으니까요.

결국 원금의 50%를 손해 보는 상황에서 판매할 수 밖에 없었어요. 7억이 3억 5천이 됐는데 제정신일 리가 없죠. 곧바로 Natas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은 칼 같았어요. 정보만 알려줄 뿐 그 정보를 활용하는 건 전적으로 당신의 역량이라는 거죠. 3억 5천으로 몇 년이나 살 수 있을까요? 끽해야 3년에서 5년? 이미 제 씀씀이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마지막 거래를 이런 식으로 망칠 수는 없었어요.

어떻게든 7억을 복구하고 그 이상의 수익을 내서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이 필요했어요. 전… Natas에게 아버지의 정보를 보냈어요. 언제나 그렇듯 답장이 왔어요.


제목: Re: 가상화폐 정보를 드립니다.

내용: 정보 감사합니다. 이번엔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정보

  • 종목: 가상화폐 Lived 코인

  • 참여 시각: 2018년 12월 15일 오후 11시 23분

  • 매도 시각: 2018년 12월 16일 오후 6시 00분



Natas에게 받은 정보는 당시 시점에서 10개월 뒤의 정보였어요. 굉장히 늦은 감이 있지만 확실한 정보니까 괜찮겠다 싶었어요. 마음이 놓였죠. 천천히 마음을 추스리고 박살 난 컴퓨터를 정리한 뒤 와인을 한잔 마시면서 침대에 누웠어요. 잠에 들었어요.

새벽 4시쯤 됐을까?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대학교 동기였는데 상민이가 죽었다는 거에요. 잠이 싹 달아나더군요. 잘난 척 부를 과시하던 녀석이 짜증나고 거슬리는 건 사실이지만 죽음을 바랄 정도는 아니었어요.


다음 날 상민이의 장례식에 참석해 영정사진을 보는데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불안감이 들었어요. 내가 죽인 것도 아닌데 말이죠. 친구들의 얘기로는 는 갑작스러운 사고였다고 했어요. 술을 잔뜩 마시고 야경이 훤히 보이는 7층 오피스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다가 추락했다는 거죠. 아무리 만취상태에도 난간이 설치된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재정이 어려워서 자살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런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경찰은 자살이 의심되지만 타살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한다고 했어요. 기분이 찜찜했어요. 굉장히.

그쯤 되니 Natas가 누구인지 다시 궁금해 졌어요. 난 지금까지 어떤 사람한테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보낸 걸까? 비밀 범죄 조직? 가상화폐 시장을 주도하는 거대한 투자 세력? 정체가 무엇이던 알아낼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에게 화재 사고가 일어나 직원들 대부분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머리가 뎅 하고 울렸어요.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제가 Natas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고 있었죠.

고급 가죽 쇼파에 누워 TV를 보던 저는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에서 새로 구입한 3억 5천만원짜리 람보르기니를 타고 예전에 살던 동네의 백반집으로 달렸어요. 우라지게 빨랐죠. 비싼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에 놀랐는지 백반집 아저씨는 놀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여전히 멍청해 보이는 생기 없는 눈이었어요. 이럴 리가 없는데. 혼란스러운 제 머리속에 한가지 가설이 떠올랐어요. Natas는 과연 정보를 받은 순서대로 사용할까? 그저 자신이 끌리는 순서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왜 나는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백반집 아저씨가 꼭 첫 번째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Natas에게 보낸 정보 리스트를 확인했어요. 리스트에 <사건 발생 유무> 항목을 추가한 뒤에 일일이 연락하면서 체크했죠. 결과는 끔찍했어요.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사고를 당했어요. 경미한 부상이나 재산 손실부터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 화재 및 사망까지. 그리고 그 순서는 제가 정보를 제공한 순서와 관계없이 완전히 무작위였어요. 아찔했어요. 마지막으로 보낸 정보는 제 부모님의 정보였거든요.

다시 밖으로 나가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 댁으로 질주했어요. 비싼 차라 빠르긴 더럽게 빨랐죠. 평소엔 1시간 40분쯤 걸리는 거리를 1시간만에 도달해서 새벽 3시에 부모님 집 문을 두드리자 잠에 취한 아버지가 무슨 일이냐며 나타나는데 정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 않고는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


영문도 모른 채 오열하는 아들에게 안긴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제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셨어요.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천천히 물어볼 테니 일단 진정하라는 의미였죠. 어느새 어머니도 안방에서 나오셔서 조용히 차를 한잔 내왔어요.

전 안정을 되찾고 말했죠. 구체적으로 설명 드리기는 어렵지만 심각한 위협이 우리 가족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당분간 아무데도 가지 말고 집에서 조용히 계셨으면 좋겠다고.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저도 함께 있겠다고요. 어머니는 놀라셔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진정시키고는 설명하기 어렵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난 너를 믿는다고 하셨죠.


아버지는 공무원을 30여년간 근무하시고 퇴직하셨기 때문에 가끔 집 정원을 가꾸는 일 말고는 나갈 일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친구분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셨지만 워낙 분위기가 심각해서 수긍하시는 눈치였어요.
그때부터는 정말 거북이 껍질 속에 숨은 것처럼 조용히 집에서만 지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장기간 해외여행을 갔다고 알리고 문을 걸어 잠근 채 숨어 지냈죠.

언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 지 알 수 없었기에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어요. 정보제공 리스트도 계속 체크했는데 하나같이 모두들 사고를 당하더군요. 죄책감이 엄청난 무게로 절 짓눌렀어요. 감당하기 힘들었죠. 내 욕심 때문에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우성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한층 더 초췌해진 눈을 내리깔았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살인자가 아니다. 김상민의 오피스텔 CCTV 확인결과 사건발생 시각에 우성호가 김상민의 집에 방문한 것이 발견되면서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지목됐는데 그게 아니란 걸까? 의문에 가득 찬 내 시선을 인식했는지 우성호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제가 CCTV에 찍혔죠. 친구 집이니 제 지문이 찍혀있는 거야 그렇다 쳐도 CCTV 증거를 반박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제가 한 짓이 아니에요. 전 분명 그때 집에 있었다구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악마에게 홀린 기분이에요.”


구속수사 당시 철저하게 범행을 부인하던 우성호는 검찰 측에서 제시한 CCTV증거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후부터는 모든 변호를 중단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변호사 홀로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다 그마저도 실패하고 현재는 무기징역으로 복역 중이다. 그랬던 그가 이제서야 입을 연 것이다. 믿을 수 있는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그는 잔뜩 쉰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믿어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진실을 토해놓고 싶어요. 상민이를 죽인 건 제가 아니고 저희 부모님도… 제 짓이 아니에요. 경찰이 상민이의 추락사건 용의자로 절 지목하고 추적해서 부모님 댁에 도착했을 때 그 날카롭고 절대 부러지지 않는… 독일제 과도를 들고 부모님을 난도질하고 있었던 건… 제가 아니에요. 전 분명… 방 침대에서 잠들어있었어요. 지독한 몽유병일까요? 세상에 부모님을 살해하는 몽유병 환자도 있나요?

형사들에게 저지당해 바닥에 얼굴이 처박히면서 수갑이 채워지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어요. 과음한 다음 날 머리를 찌르며 찾아오는 숙취처럼 온 몸이 어지럽고 역겨웠어요. 온통 피범벅인 제 손과 옷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해 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런 증언이 먹힐 리가 없으니 제 변호를 포기한 거에요.


하지만 기자님은 알아주셨으면 해요. 부모님과 상민이를 죽인 건 제가 아니라 Natas 그 놈이에요. 그 빌어먹을 자식이 제가 준 정보를 가지고 저지른 짓이라구요. 어떻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놈의 정체도 모르겠어요. 꼭 악마에게 홀린 것 같다니까요?

애초에 가상화폐가 오를지 내릴지 100% 맞추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그 비싼 정보를 사람 얼굴이랑 주소만 받고 파는 미친 놈이 어디 있겠어요? 믿음이 안 가시겠지만 거짓말이 아니에요. Natas는 분명 실존해요. 제가 증거를 드릴게요.

오늘이 2018년 12월 15일이죠? 오늘 집에 가시거든 당장 컴퓨터 키고 가상화폐 거래소에 접속하세요. 그리고 밤 11시 23분에 빌어먹을 Lived 코인을 구매해요. 얼마나 사든 상관없어요. 다음날 오후 6시까지 존나게 떡상할거니까! 꼭 확인해봐요. 아버지의 목숨을 대가로 Natas 그 악마같은 개새끼에게 받은 정보에요. 이게 맞는다면 제 말을 믿어 주세요. 놈은 분명히 존재해요.”


면회실이 계속 소란스럽자 교도관이 나타나 우성호를 진정시켰다. 시계를 보니 면회시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며 면회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생각에 잠겼다. 믿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이제서야 왜 우성호가 내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는지 깨달았다. 우성호는 그저 Natas가 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날짜에 잡힌 인터뷰를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난 집에 도착하자 마자 무언가에 홀린 듯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사이트에 가입하고 개설된 가상 계좌에 100만원을 입금했다. 그 정도면 최악의 경우에 모든 돈을 잃어도 큰 부담이 없다고 판단했다. 마치 우성호처럼.


11시 23분이 되자 우성호가 말한 Lived 코인을 모두 구매하고 가만히 차트를 바라봤다. 봐도 무슨 상황인지 잘 몰랐지만 시뻘건 막대가 생성되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상승했다. 믿을 수 없는 대 상승이었다. 시뻘건 글씨로 수익률과 보유 금액이 늘어나 순식간에 3000만원 이상을 벌어들인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Natas라는 이름을 검색 창에 입력했다.

그리고 엔터 키를 눌렀다.
Natas의 스트리밍 제목이 화면에 출력됐다.



123.jpg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제목을 클릭했다.
스피커 너머로 거슬리는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좀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후기


스팀에 올리는 첫 단편소설이 완결됐습니다. 짝짝짝!

탐욕에 빠진 주인공이 결국 화를 입는다는 이야기를
가상화폐라는 소재와 결합시키고 Natas라는 미지의 존재를 추가해서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내 보려고 했습니다.

읽어주신 스티머 분들이 약간이라도 흥미나 재미를 느꼈다면
대 성공이겠네요.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엔 더 좋은 단편 소설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




-후기 2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겠지만 Natas는 Satan을 반대로 입력한 단어입니다.
Lived 코인도 반대로 하면 Devil이 됩니다.

인간의 탐욕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가 악마라 생각해서
이런 네이밍을 했는데 혹시 눈치 채셨나요?!
맞추신 분이 계시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보팅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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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기자는 이제 큰일났지만(저의 예상과 다르게 백반집 아저씨가 멀쩡했던 것처럼 또 틀린 건 아니겠죠ㅜㅜ)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정말 만족스러운 결말이네요! 마치 헐리웃 공포 영화처럼 이렇게 여운이 남는 결말(2탄이 있을 듯 말 듯한 결말)이 좋더라고요. 저는 헬로우 스펠링도 모르는 영어 무식자라 전혀 몰랐어요(제 댓글에 보팅하시면 안 됩니다! ㅎㅎㅎ) 그동안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족스러운 결말이라니 다행이네요. :^)
(박상기 기자는 큰일난게 맞습니다 흐흐)

마지막까지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outis410님의 댓글 덕분에 의욕이 솟네요!

박상민 기자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취할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단숨에 읽어내려갔어요. 즐거운 소설 감사합니다~

등장인물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는 것도 독자의 즐거움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즐거우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 다음 소설도 기대해주세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1편부터 정주행했네요 ㅎㅎ

정주행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기대해주세요!

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단편이 가지는 장점을 정말 잘 살리신 것 같아요. 이번이 마지막 편이라는 것을 알고 읽어 내려가면서 어떻게 수습을 하실까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미드 브레이킹 배드의 마지막 시즌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멋진 결말이네요.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미드 브레이킹 배드, 제 인생 미드 중 하나인데
제 결말에서 떠올리셨다니 저로서는 황송하네요.

재미있게 즐겨주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좋은 단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인터뷰 형식으로, 독백만으로 이런 흥미진진한 상황을 묘사하신 필력이 대단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피가 모자라..' 분위기의 작명센스ㅋㅋ쓰신 것 보고 알았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ㅎㅎㅎ 나름 고민해서 작명했는데 알아봐주시니 다행이네요.
하지만 정작 미리 알아채신 분이 없어서 아쉽네요 흑...

redrum이면 알아봤을텐데.. 그건 너무 흔해서 안하셨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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