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세계 (3/3: 현대 미술과 시계 미감)

in #kr7 years ago

현대 미술과 시계 미감

뒤샹, 워홀, 백남준은 포스트모던 내, 사조 일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다. 이후 동시대 미술(요즘 미술)은 포스트 모던보다는 다시 모던에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제 예술가들은 누가 누구를 계승한다기보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그것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모던 이후 예술가들은 하나의 사조(-ism)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역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던진 물음과 자신만의 답을 찾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해괴한 것, 새로운 것, 또는 논쟁 거리가 되는 것 속으로 기꺼이 감상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동시대 미술 세계로 들어서면서부터 예술의 정의가 확장됐기 때문이고, 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인물이 되는 것이 기존의 것을 반복하는 예술가보다 오래 기억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요즘 미술, 그러니까 동시대 미술은 모던 아트(Modern Art)도 포스트 모던 아트(Post Modern Art)도 될 수 있다. 이것은 예술이 하나의 시대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그 줄기가 갈렸으며, 예술가는 이 길에서 자신의 표현 방식을 발굴하고 물음을 던지는 예술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라는 영어 표현인 ‘모던(modern)’이 이미 모던 아트라는 용어로 선점되어 있으므로, 예술계에선 요즘 예술에 대하여 모던 아트라는 말 대신, 동시대 예술(Contemporary)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damienhirstshark-58d535a43df78c51622afa88 동시대 미술가 중 슈퍼스타급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

앞서 이야기했듯, 새로운 예술 세계는 당대에 논란거리가 되거나 조롱을 받고, 그게 아니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던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평론가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를 하기엔 경험과 이론적 근거를 확보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음 발췌글은 비평가가 최신의 미술에 대하여 오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비유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1980년대 한 비평가가 최신의 미술사를 쓴다 해도 반 고흐와 세잔, 고갱을 언급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 비평가가 적극적이지 않거나 이론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 고흐는 중년의 미친 네덜란드인이었고, 세잔은 중년이 지나서야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지만 전람회에 그림 보내는 일을 오래전에 그만둔 신사였다. 마지막으로 고갱은 뒤늦게 화가가 되어 남태평양으로 떠나버린 주식 중개인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당시 비평가가 이 세 존재의 작업 세계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오늘날 미술 평론가들이 작업을 논평하면서도 결론을 자꾸만 열어두는 것은 후대에 재평가될 수 있는 예술가의 이름에 오판을 한 사람이라 기억되고 싶지 않은 바람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 서양미술사, 에른스트 곰브리치

동시대 예술가는 평론가뿐 아니라 미술 관계자들(큐레이터, 갤러리 관계자, 컬렉터 등)에게 인정받으며 몸집을 불린다. 그들은 마치 팝 스타와 같아서, 데미안 허스트(Demian Hirst, 1965-), 뱅크시(Banksy, 1974-), 제프 쿤스(Jeff Koons, 1955-) 같은 문제적 인물들은 현재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슈퍼스타다. 그렇지만 곰브리치의 예를 상기한다면, 먼 훗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예술가가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기억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46-jeffkoons-rex 풍선 개, 제프 쿤스, 1994-2000

정리하면, 동시대 미술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예술로써 모든 표현이 잠정적인 상태에 있는 예술이다. 우리는 대중으로 남아 자신의 미적 기준을 가지고 예술을 느끼고 즐기면 된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예술가, 혹은 추후에 좋아하게 될 수도 있는 근대 예술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본인의 취향 세계를 넓힐 수 있는 우아하면서도 안전한 방법이다.

시계 미감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 공부했던 미학사에 주관을 부여하여 시계를 이야기할 것이다. 걔 중에는 '아름답다'고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시계가 있을 것이고, 어떤 시계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또 어떤 시계는 설명에도 아름다움이 쉬이 납득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mg_6144 파네라이 시계

이에 필자는 모든 해석이 옳다는 전제를 먼저 던져둔다. 결국, 현대에서 추구하는 미감이란 취향의 합의(consensus of a taste)를 거부하고 표상(signifier)이 드러내는 것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 것이 경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특정 양식을 이어받은 시계라고 하여 이것이 아름다움의 기준, 혹은 평가 척도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어떤 이가 특정 스타일, 혹은 사조(-ism)를 진리로 여기고 절대적 아름다움을 설파한다면, 그것은 폭력적인 것이라고 평가해도 좋다. 그것은 취향이라는 구획을 무시하고 최종적 합의를 이루려 하는 것이다. 다분히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양식은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양식, 혹은 사조는 우등과 열등을 가르는 척도가 아니며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설명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제 먼지 묻은 루페를 닦을 때가 됐다.

시즌 3을 닫습니다.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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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시즌 4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팔로우하고 갈게요. 앞으로도 좋은 글을 통해 현대 미술에 대해 많이 알려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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