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잼
친한 동생에게 잼을 선물 받았어요. 선물 받은 다음 날이 주말이니, 간편식을 만들어 먹기 좋은 날이었죠. 주말 첫 끼니는 직접 만들어 먹어요. 아침에 늦게 일어나더라도요. 대단한 건 아니고 볶음밥이나, 달걀 프라이, 커피 한 잔에 과일 몇 조각을 냅니다. 가끔은 금요일 저녁에 먹고 덮었던 음식을 덥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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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잼?""선물이에요." 동생이 말했다.
"잼을?" 나는 아이 손바닥만 한 잼 통을 조물조물하며 물었다.
"네, 제가 최근에 도산공원에 있는 식부관 이라는 빵집을 갔는데요. 거기서 잼을 파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되게 비쌌어요. 200g? 정도인데도요. 프리미엄 빵집이라 맛있어서 그런가, 먹어보니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직접 만들면 어떤 맛이 날까 싶어서. 직접 만들었어요."
동생은 계속 말을 이었다.
"네 병을 만들었어요. 하나는 집에 있고, 하나는 친한 친구에게 선물하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나는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았다. 새콤한 베리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우와, 블루베리?"
"아니요. 아사이베리예요."
역시나. 나는 음식에 조예가 없다. 다시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았다. 이 향은 포도류라기보다는 딸기알맹이의 그것과 비슷했다. 블루베리가 아니다.
"그러네, 신기하다! 대단해. 어떻게 만들었어요?"
동생이 말했다.
"아사이베리랑, 샴페인이랑 같이 섞어서 만들었어요. 식부관에서 재료를 외웠어요. 그리곤 집에서 따라 해봤죠."
이제 저는 회상을 멈추고 아침을 준비합니다. 찬장에서 커피 원두와 핸드밀을 꺼냈습니다. 커피를 직접 내려마신지는 1년이 넘었네요.
무게도 달지 않고 원두를 채웁니다. 아침이라 손도, 눈도 느립니다. 핸드밀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알갱이의 질감이 느껴집니다. 나무 상자 틈 사이에선 원두 향이 올라오네요.
원두가 잘 갈렸어요. 드립을 할 때 원두는 두껍게 갑니다. 추출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드리퍼에 갈린 원두를 올리고, 커피메이커의 전원을 켭니다.
빵을 굽습니다. 1인 가구엔 1구 토스터.
엘살바도르 원두로 내린 커피입니다. 산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긴 했지만, 아예 맛을 잃지는 않았어요. 초콜릿의 신맛과 쓴맛이 옅게나마 남아 있습니다.
커피를 따르고,
잼을 바릅니다. 한 입 베어 뭅니다.
베리의 두툼한 질감과 샴페인의 미끄러지는 식감이 산뜻합니다. 붉고 생기있는 잼의 빛깔이 먹는 느낌을 더합니다. 겉이 바삭하게 익은 빵 사이로 상큼한 잼이 밀려듭니다. 턱이 상 하로 움직일 때마다, 베리 즙을 머금은 샴페인이 기포가 되어 올라와 코끝을 간질입니다.
맛있었어요. 상식상의 잼이 질고 설탕 맛이 강한 느낌이라면, 동생의 잼은 가볍고, 향긋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잼을 선물한 동생은 제가 아침 식사를 마칠 무렵 시즈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제때 못 했네요.
잘 먹을게, 잘 다녀와.
그리고 돌아오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 P.S. : 아사히 베리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 음식 평가를 믿지 마세요
이 글과 사진을 보니 식빵 한 봉지를 다 비워버리고 싶어지는데요... 한 조각만 드셨나 봐요... 이럴수가. 어쩔 수 없이 내일은 김진환 제과점에 가야겠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이미 사라지고 없겠지만...
식빵을 몹시 좋아하시나 보군요.
퐁당님 대댓글에 제가 쓴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되게 식탐꾸러기 같네요. 이 포스팅을 배고픈 새벽에 읽어서 그랬나 봐요... 소고님이 너무 맛있어 보이게 사진을 찍어놓기도 하셨고요. 제가 사실 내로라 하는 빵순이는 아니지만, 김진환 제과점의 우유 식빵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우유에 퐁당 적셔먹어도 맛있습니당.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roundyround 헉! 빵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맛있는 빵을 사랑해요. 빵돌이(?) 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빵 이라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손을 뻗는 새럼이예요. 김진환 제과점을 처음 들었어요. 학교가 근방이었음에도 왜 몰랐을까요 ㅜㅜ (뜻밖의 배움) 다음에 학교 갈 일이 생기면 꼭 들르고, 후기 남겨볼게요 😇 친절한 댓글 고마워요
저도 맛있는 빵을 사랑합니다! 예전에 유럽 갔을 때, 지하철 역이나 빵집을 지나며 맡았던 빵 냄새랑 커피 향기가 너무 강렬하게 좋았어서(뿅 간다고 해야 할까요...), 맛도 맛이지만 그 냄새를 정말 좋아합니다. 김진환 제과점 가시면 그 골목 입구부터 빵 굽는 냄새가 솔솔~ 제과점이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막 걸음이 빨라지고요! 꼭 들러 보시길요!
잼이 결국 사람의 취향과 성향을 반영한는 것일까요-
저도 (눈으로)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홍보해
@qrwerq 님! 으앙 ㅠㅠ 홍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식이란 사람의 손이 닿아야 하는 일이니, 결국 그 이의 취향과 마음이 담기는 것 같아요. 함께 해 주셔서 고마워요. :)
표현이 정말 맛있네요. 배고파요... 밥파 인데도 빵이 먹고싶어지네요. 샴페인을 넣어 잼을 만들다니 신기합니다.
@sunny1124 님 :) 밥파 라는 분파가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군요! 빵 파와 밥 파 :) 재밌어요. 굳이 따진다면 저도 밥 파 이지만, 이렇게 사이드로 먹는 식사에 즐거움이 있어서 더욱 특별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샴페인이 들어간 잼이라니ㅎ 왠지 로맨틱한데여ㅎㅎ
@kyunga 님. :) 로맨틱하다는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해봤어요.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마워요.
와... 잼에 샴페인이 들어갔다니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합니다. 원래 그렇게 먹는거 좋아하지 않는데 사진을 보며 글을 읽는데 갑자기 보드라운 우유식빵에 딸기쨈 두둑히 발라 흰우유와 함께 먹고싶다 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까 식빵 사둘걸... 이렇게까지 구미를 당기게 만들다니 어마어마한 사진과 글 실력입니다. ㅋㅋ
@shimss 님 안녕하세요!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끼니는 배고플때 채운다는 느낌으로 오래 살았(?)는데요, 요즘들어 좋아하는 사람이 선물해 준 음식이나 함께 먹는 밥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식사 하시길, 하셨길 바라요. 😊댓글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선물해 준 동생이 좋아하겠어요
맛있겠습니다 ㅠㅠ 간단하지만 정성이 담겨있네요
(맛있으면 그걸로 된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해당 글을 보니
식빵에 발라 먹고 싶은 욕구가 졸로 샘솟네요 ㅎㅎ
동생분..
무시히 잘 다녀오기를...
함께 마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D
아사히 베리가 아니라 트리플 베리어도 맛만 있음 최고죠.
집인가요 카페인가요~~
집에 저런 기구들을 다 가지고 계시네요
@greenswell 1인 가구엔 자신을 보온할 수 있는 여러 도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하하. 매 해 이것저것 구매하다 보니 이렇게 살림이 차려졌네요 ☺️
달콤쌉싸름한 글과 사진입니다.
김작가님의 리스팀으로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