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면... 돈 줘요."

in #kr6 years ago


 난 요즘 저예산 영화들이 좋다. 독립 영화를 즐겨보는 나로서는 사람들이 마주하기 불편해하는 현실들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좋다. '미쓰백'도 그 중 하나다.

'미쓰백'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아동 학대 사건을 각색하여 제작했다고 한다. 한지민은 이 영화로 한국평론가협회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겪은 인생은 보통의 사람들이 겪을 확률이 희박한 사건들이 많았다. 매번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그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지 않는다. 차갑고 날이 서있는 말과 행동들을 일삼으며 남과 자신을 떨어뜨려놓고 싶어하는 경향이 짙은 사람이다.



그런 그녀의 눈에 밟힌 아이가 있었다. 늦은 밤, 허름한 옷에 맨발로 동네 슈퍼마켓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 몇 번을 마주쳐도 익숙해지지 않는 아이의 옷차림에 그녀는 왠지 모를 이상함을 느낀다.



하루는 그냥 지나치지 못해 아이를 포장마차에 데려간다.

음식을 먹던 아이가 물을 흘렸다. 미쓰백은 물통을 집어들려고 했고, 아이는 자신의 얼굴을 팔로 감쌌다. 그리고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던 와중, 아이의 계모가 포장마차에 방문하여 아이를 데려가려 하자, 아이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손가락 두개로 그녀의 손을 잡는다. 결국 계모는 아이를 데려가고, 미쓰백은 수상함을 느낀다.


아이는 그 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폭행을 당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생활을 했을 그 아이가 느낄 긴장감과 불안감을 누가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아이를 또 만났을 때, 아이는 여전한 모습이었다. 다리는 멍이 들어 있고, 손가락은 전보다 더 빨갰다.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에게서 그녀는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한 사람들에게 혼잣말로 화를 내며, 아이의 손을 잡고 옷가게에 데려가 옷을 사 입히고, 음식점에 데려가 음식도 먹인다.

음식을 먹는 아이의 눈에는 힘 없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음식점 다음으로 경찰서에 데려간다.


"왜?"

"저기 가면 다시 집 보내니까..."

미쓰백은 경찰서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아이는 예상 외의 답변을 했다.

아이는 주변의 사람들에 얼마나 많이 부딪혔을까 생각해본다. 아이의 세상에서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없고 자신을 울게 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들만 존재했을 것이다. 혼자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아프고 외로웠을까. 생각하는 것조차 오만같이 느껴진다.



아이는 가끔 집에서 내쫓아질 때면 미쓰백이 일하는 세차장에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준다. 그러다 미쓰백은 아이를 데리고 자신이 부모에게 버려졌던 놀이동산에 간다. 이때 아이와 많은 감정 교류를 하게 되고 미쓰백은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이후 미쓰백은 아이를 데리고 떠나려는 시도를 여러번 하게 되고, 한 번은 어느 모텔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다.


화장실에서 아이를 씻기려는데 아이가 화장실을 무서워 했다.(아이는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생활했고 화장실에서 잦은 폭행을 당했다)

그러자 그녀는 등 뒤의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도 모를만큼 일그러진 상처를 보여주며 아이의 마음을 연다.


"봐, 너나 나나."


이 장면은 단순히 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그녀와 씻는 장면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날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자 그녀와의 동질감을 명확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그녀의 상처를 작은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녀의 마음을 만졌다.

가진 게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신 네 옆에 있을게, 지켜줄게."


그에 아이는,

"나도 지켜줄게요." 라고 말한다. 아이는 자신만큼 그녀도 아팠을 거라 생각했을까.

서로 공감하는 감정선을 보여주며 섬세하게 다듬는 과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깊이 나 있었으면 서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치유받고 치유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러닝 타임이 반쯤 지났을까, 미쓰백이 어머니를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미쓰백의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한 날 그녀는 술을 마시고 자신이 딸을 폭행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죄책감에 딸을 보내주려 한다.


망가져 있는 자신의 모습이, 모나고 날카로운 자신에게 찔릴 아이가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아이를 놓아주는 장면은 생각보다 가슴 시렸다.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딸을 위해 하는 행동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언제 회복될지 언제 이런 고통이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식을 키울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그저 한 아이의 엄마였다. 다른 엄마들처럼 딸을 너무 사랑했던 엄마.

"나한테서 달아나. 멀리."


살아온 평생 엄마를 원망하며 살던 미쓰백은 자신의 엄마가 했던 선택을 비로소 용서했다. 그 희생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그녀는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엄마를 보내주었다.



영화의 끝자락, 아이의 인생에 얼룩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지나가고 아이의 밤에 불을 밝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았다. 미소 뒤에 슬픔이 있고 그 슬픔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두 사람은 인생의 길을 같이 걸어가겠지. 의외로 상처는 주기 쉬워서 누구나 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 어루만져주며 같이 손잡고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너무 이상적인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라도, 같이 갈래?"

"같이 가요.


영화가 끝났음을 알리는 엔딩크레딧이 내려올 때, 마음이 너무 무거웠고 숨이 차는 느낌까지 들었다. '박화영'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이랑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무거운 느낌이다.


너무 잘 봤다. 큰 울림을 받았고 1시간 30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늘 부로 '이지원'이라는 감독을 기억하고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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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있는 영화 한편 잘 봤습니다 ㆍㆍ
딸에게 나에게서 도망가라고 하다니

저예산 영화들이 뭐랄까. 감독의 철학을 잘 느낄수 있는 느낌인것 같습니다.

감정이입해서 글 보다가 울컥했네요ㅎㅎㅎㅎ
저예산 영화는 보통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퀄리티 좋은 저예산 영화도 많아서 좋은듯ㅎㅎ

약자를 도와주진 못해도 피해를 입히지 말아야 정상인데 기성세대의 주폭들을 포함하여 참 이상한 사람이 실제로도 많죠. 그리고 그 나쁜환경으로 인해 피해자는 돌이킬수 없는 사람이 되고..

이런 내용이었군요. 감정 때문에 보기 쉽지는 않겠어요..
잘 읽고 갑니다.

저도 꼭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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