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와 연대
“예술가들은 서로 연대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질투나 시기심을 잘 제어해야 한다.”
언제나 어느 예술가가 했던 말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비웃었다. 예술가를 자처하는 인간들이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나 하고 있다니. 지금은 조금 그 말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긴 시간 함께 내 수업을 들었던 친구에게 이러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회피해나가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긴이야기를 하고 난 이유 오늘 아침까지 기묘한 찜찜함이 남았다. 그것이 석연치가 않았다. ‘내가 그 친구를 잘 못 읽어 냈었나?’ ‘너무 과도하게 해석했나?’ 하지만 아무리 묻고 또 다시 고민해보아도 아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잘 읽어내었고, 그 친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 찜찜함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해석의 문제도, 이론의 문제도 아니었다. 커피한잔을 내려 마시고 정신을 차렸을 때 알게 되었다. 그건 질투심이었다. 나는 그에게 옳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옳은 이야기를 하게했던 내 마음속 의지는 질투심으로 인해 촉발된 것이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네가 주인공이 되는 것 같아서 생기는 질투심. 나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네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같다. “넌 아직 나한테는 안 돼! 내 자리를 함부로 탐내지 마!”
왜 안 그럴까. 내게 배웠던 그 많은 사람들 중, 그 친구만큼 그 배움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또 그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밀어나간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이 얼마나 찌질하고 옹졸한가. 찜찜함 이유를 쉬이 찾을 수 없었던 이유도 알겠다. 그 찜찜함의 이유를 알게 되면,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찌질함과 옹졸함을 정면으로 마주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다. "너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진정으로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속에 아직 다 털어내지 못한 그 질투심에 기인한 거였다"라고 사과하고 싶다.
이제야, 비로소 그 예술가의 말을 알겠다. 예술가들이 서로 연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질투와 시기 때문이라는 말. 예술가들은 다들 감정과 욕망을 표현하려는 이들이다. 거기에 누구보다 섬세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 아다. 그러니 옆에 조금이라도 반짝거리는 감정과 욕망이 있다면 너무 쉽게 질투하고 시기하게 되는 것이겠지. 나는 그의 반짝거림을 본 것일 테다. 그래서 잠시나마, 그것에 질투하고 시기했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을 테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내 속에 있는 그 질투심과 시기심까지도 털어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쓴다. 이 옹졸함과 찌질함에 대해 쓴다. 그렇게 그 아니, 더 나아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반짝거림을 기꺼이 찾아주고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그렇게 어제보다 더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함께 나아가고 싶다. 그렇게 나 역시 어제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