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이지 말아요.
9주간의 글쓰기 수업을 했다. 학생에게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라고 했다. “그럼 그만 둘 것처럼 다니라”고 했다. 그는 “네”라고 했다. 그렇게 수업은 끝이 났고, 시간이 한 참 흘렀다. 다급한 듯 통화하고 싶다는 문자가 왔다. 직감했다.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아니나 다를까.
내용인즉슨, 부조리한 동시에 과도한 업무 지시에 이견을 제시했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서 팀 내서 왕따가 되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차분히 말하려 했지만 그의 걱정과 불안을 알아 챌 수 있었다. 나 역시 그가 처한 시간이 있었으니까.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직장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노예로 살기를 강요하는 인간들이 직장에는 얼마나 많던가.
그는 주인으로 살기로 선택했고, 그로인해 노예로 머물기를 바라는 인간들과 피할 수 없는 마찰이 생겼던 게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답했다. 지금은 그냥 그 어색함,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예가 주인이 되는 과정이니까. 배려심 많고 내향적인 그가 걱정 되었다. 노예가 주인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을 겪었고 또 겪게 될까.
“그래 괜한 짓을 한 거였어”라고 말하며, 노예에서 주인으로 살고자했던 많은 이들 중 대부분 다시 편안한 노예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이유는 다 안다. 상처와 고통을 감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그저 지금 상황을 견디라고 말해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고개 숙이지 말아요. 당당하게 주인의 삶을 맞이해요” ‘철학흥신소의 기개를 보여 달라!’는 농담을 섞어가며 격려했다.
나는 그가 대견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주인된 삶에 채 이르지 못하고 노예의 삶에 머무르는지 알고 있는 까닭이다. 잠시 힘들어도, 고객 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 자리 남은 퍼즐로 기어들어가는 노예의 삶이 아닌, 가장 먼저 자리 잡은 퍼즐 조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배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과정에서 상처받고 고통스럽다면, 나는 기꺼이 AS해줄 준비가 되었다. 고개 숙이지 마시라. 당당해지시라. 그가 흔들릴 때 나는 다시 그에게 말해 줄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노예적인 강요하고 있는 것 같네요. 돈의 노예..
앞으로 더 나은 인간중심의 시스템으로 변화되어 나가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