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오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이 말보다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거짓과 위선, 기만이 겹겹이 쌓여 그것이 자신의 거짓이며 위선이며 기만인지 모르는 이들만 쉽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노력하고 있다.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정직하게 나를 내보인다는 것이. 정직함이 언제나 환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때로 정직함은 떠남으로 돌아온다. 정직했기에 누군가는 떠나기도 한다. 서러운 일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이에게는 그토록 정직하기가 어려운 것일 테다. 동시에 사랑의 정서와 가장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는 너무 쉽게 잔인하리만치 정직할 수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한 여름, 38도가 넘는 더위에 살을 에는 듯한 오한을 느꼈던 날, 위액까지 다 토하고 나서도 이유를 몰랐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추위와 고통에 이유조차 물을 수 없었다. 알 수도 없었다. 이틑 날, 몸이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한 날, 미친 듯이 싸웠다. 살아보겠다고,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꼈지만, 체력이 허락하는 한 치고 받았다. 정직한 몸짓이었다. 너무 맞아서 느껴지는 어지러움과 뜨거운 코피는 정직한 몸짓의 흔적이었다.
언어만큼 거짓과 위선과 기만이 난무하는 게 있을까? 몸짓은 정직하다. 정직한 몸짓 뒤에서야, 무엇인지 문제인지 알게 되었다. 정직함이 문제였다. 누군가의 정직한 이야기를 가슴에 고스란히 담아내었고, 또 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면서 정직하게 이야기했다. 반복되었던 그 과정이 내 몸이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었던 게다. 비명을 지른 거였다. 한 여름의 오한과 구토는 그런 것이었다.
정직함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그냥 서 있다. 두려워하며 그냥 서 있다. 정직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정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모두 두려워하며 서 있다. 하지만 두려움이 두려워 거짓과 위선과 기만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않을 테다. 나는 떠남을 감당하며 그저 그렇게 여기에 서 있을 테다. 돌아오지 않을지 모를, 누군가를 기다릴 테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 애를 쓰며 살 테다.
정직하게 내게 말했고, 나의 정직함을 들었던 사람, 잘 살아내기를. 잘 살아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