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보다연애] 자존감이 낮은 이유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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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행한 이유, 자존감

글 쓰는 삶을 살게 된 이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수업이든, 상담이든, 혹은 사적인 만남이든,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불행한 삶을 호소했다. 쇼핑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 폭식으로 건강에 이상이 온 사람, 직장을 그만두고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 여자 친구의 이별 통보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 이혼 뒤에 찾아온 불안장애로 병원을 다니고 있는 사람 등등. 각자의 불행한 삶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네들의 ‘앞으로 어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대체로 같았다. “연애하세요!” 어떤 이는 당황했고 어떤 이는 황당해했다. 저 마다의 사연에 ‘연애하세요!’라는 같은 처방을 내린 이유는 분명하다. 저마다의 불행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 불행의 근본 원인은 모두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자존감이다. 불행한 삶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다는 사실이다. 쇼핑 중독, 폭식증에 빠지는 이유도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이유 역시 자존감이 낮아서다. 그들에게 튼튼한 자존감이 있었다면,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불행한 삶을 극복했을 게다. 물론 이 말이 자존감만 있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란 의미는 아니다. 고되지 않은 삶도 없고, 사연 없는 삶도 없다. 하지만 어떤 이는 그 고됨과 사연에도 의연하게 삶을 헤쳐 나가고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린다.

불행이란 건 삶의 고됨과 굴곡진 사연 때문에 발행하는 게 아니다. 그 고됨과 사연에 직면하지 못하고 외면하고 도망치려 할 때 발생한다. 그래서 구슬픈 사연과 고된 삶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다. 힘들다고 다 불행한 게 아니다. 튼튼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삶도 힘들고 고되다. 하지만 불행하지 않다. 그저 힘들고 고된 일을 묵묵히 심지어 때로는 유쾌하게 견디며 헤쳐 나간다. 불행의 근본 원인은 힘든 삶이 아니라 낮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불행한 삶으로부터 구원해줄 그 자존감이란 건 도대체 무엇일까? 자존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자존감이란 것이 쉽지 않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모습만 자신이라고 받아들이고, 자신의 나쁜 모습은 자신이 아니라고 외면해버리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두 가지 대표적 특징이 있다. 불안과 콤플렉스.

먼저 불안부터 말해보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이유 모를 깊은 불안감 때문에 힘들어 한다. 이 불안감의 정체는 뭘까? 내가 외면하고자 했던,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는 부정적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그 불안의 정체다. 불안의 원인은 빈약한 자존감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또 하나의 특징인 콤플렉스도 이해할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유능한 팀장이 있었다. 그는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업무를 수차례 성공시킬 정도로 유능했다. 하지만 그의 자존감은 상당히 빈약했다. 그에게는 심각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학벌 콤플렉스’였다.

지방대를 나온 팀장은 자신의 입으로 결코 자신이 지방대를 나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며, 다른 이가 그 사실을 말하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팀장은 긍정적인 자기인식(유능한 팀장)은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였지만, 부정적인 자기인식(지방대 출신)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자존감이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긴 시간 동안 학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다양한 종류의 콤플렉스도 다 마찬가지다. 긍정적 자기인식만 받아들이고 부정적 자기인식을 은폐하려 했기에 일어난 사달이다. 원인은 빈약한 자존감이다.

혹여 자신이 은폐해 놓았던 부정적 자기인식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노심초사(불안)하기에,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콤플렉스와 불안은 붙어 있다. 요컨대, 불안과 콤플렉스는 허약한 자존감이 낳은 샴쌍둥이다. 자존감이 빈약한 사람들은 불안과 콤플렉스를 모두 갖고 있다.

우리가 자존감이 낮은 이유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자존감 있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단단한 자존감을 갖기 위한 방법론은 간단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면 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그 모든 모습을 자신이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분명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가끔은 옳은 이야기는 우리를 좌절시키고, 또 분노케 한다. 옳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속에서 “다 안다고! 아는 데 안 되는 걸 어쩌라고!”라는 말이 터져 나온다. 그렇다. 말이 쉽지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인정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한동안 나 역시 그랬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서 자존감을 높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몇 없는 긍정적 자기인식(근육질 몸매, 좋은 직장, 일을 잘한다는 평판)을 부여잡고 겨우 살아가고 있는데, 부정적 자기인식(대범한척 했지만 사실은 겁쟁이고, 돈에 연연하지 않은 체 했지만 한없이 쪼짠하고, 쿨한 척했지만 한없이 찌질한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 부정적 자기인식을 긍정하며 내 모습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겁 많고, 쪼짠하고, 찌질한 내 모습을 인정했다가는 그마나 있는 알량한 자신감마저 다 날아 가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나와 비슷할 테다. 장점을 날조하고 단점을 은폐하느라 급급해서 자존감이 낮아진 것일 테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된 걸까?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 자기인식, 예컨대 자신의 나쁜 점, 단점마저 사람들 앞에서 턱 턱 꺼내놓는데 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 그러니까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긍정하고 꺼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건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확신이다.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는 경우가 있다. 오해다.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시선을 쓰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꺼내놓았다가는 결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치명적 단점이나 나쁜 점도 긍정하며 사람들 앞에 턱턱 꺼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갖고 싶은, 하지만 누구도 쉽게 갖기 힘든 자존감은 결국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확신은 어디서 오는지 물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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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말씀감사합니다
요즘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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