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띠 해를 맞아
태어나서 처음 배운 노래가 <송아지>였던 것 같습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엄마 닮았네 아빠 닮았네 하면서 부모님 앞에서 까르르 웃던 제 모습이 마치 기억의 우물 깊은 곳 이끼처럼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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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의 작사자는 청록파 중 1인인 박목월, 작곡가는 손대업이죠. 손대업 선생은 습작처럼 이 노래를 지었는데 교과서에 실리는 등 대히트를 치면서 동요 작곡에 힘을 쏟았다고 하지요. “새 신을 신고 뛰어고자 팔딱.....” 노래 역시 이 양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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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국정 음악교과서에 실린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노래는 동심의 세계를 지배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새롭게 태어난 자신의 아이들에게 주문처럼 불러 주며 전수했습니다. 그런데 80년대 말 묘한 얘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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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는 젖소고 서양에서 들어온 외래종이다. 우리 고유의 소가 아니다. 우리 소는 누렁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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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동요에까지 침투한 외세의 그림자’라는 얘기였죠. 미제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빗나간 민족주의가 위세를 떨칠 때였으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습니다. 정태춘 선생도 <송아지 누렁 송아지> 공연을 통해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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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는 얼룩소가 우리 소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룩’이 꼭 하얀 색과 검정 색이 섞인 홀스타인 종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는 자체가 일종의 고정관념일 수 있으니까요. 젊은 날의 황희 정승이 농부가 누런 소와 검정 소를 몰고 밭일을 하는 걸 보고 농삼아 “어느 소가 일을 잘하오?”라고 묻자 농부가 일껏 논두렁을 나와 귓속말로 “누렁소가 잘합니다.”라고 속삭입니다. 황희 정승이 뭐 이런 걸 귓속말로 하시오 하니 소도 귀가 있는데 자기 흉을 보는 걸 좋아하겠습니까 하고 대답해서 황희 정승이 크게 깨달았다는 고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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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리 소는 누렁소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검정소도 있고 칡소도 있었죠. 정지용의 <향수>에도 ‘얼룩백이 황소’가 등장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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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속의 <얼룩소>는 박목월이 밝힌 바, “「송아지」에 나오는 송아지는 바로 나 자신이며 나의 아우들”이며 “뒷산에는 목장의 얼룩박이 젖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옥천신문 2018년 6월 7일)고 하니 젖소가 분명합니다만 아니 젖소가 무슨 죄라고 외세의 혐의를 갖다 붙이겠습니까. 신토불이라고 우리 풀 먹으면 우리 소가 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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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가 때였고 당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있었던 만큼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의 노랫말도 웃으며 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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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선생의 <송아지 누렁 송아지> 공연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노래는 <아가야 가자>라는 노래였습니다. ‘송아지 누렁 송아지’의 가사가 직접 들어간 노래이기도 하거니와 그 가사가 ‘우리 누렁소’에 앞서 다른 의미로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노래는 아버지 (어머니)가 점차 커 가는 아이에 대한 당부 같은 내용으로 꾸려져 있습니다. 1절은 아직 여물지 못하고 불안한, 하지만 한 발 한 발이 다 희망처럼 쿵쾅거릴 어린아이에게 건네는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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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걸어라 두발로 서서 아장아장
할매손도 어매손도 놓고 가슴펴고 걸어라
흰 고무신 아니 꽃신신고 저 넒은 땅이 네 땅이다
삼천리 강산 거칠데 없이 아가야 걸어라.”
올 한해 참 위태롭게 걸었습니다. 옆 사람이 위험해 보였고 땅만 보고 걸어야 간신히 넘어지지 않을 만큼 웅덩이 칡넝쿨투성이의 길을 2020년 우리 모두가 걸었던 것 같습니다. 가슴을 조이고 다리는 떨리고 뭐라도 부여잡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길은 멀지만 펼쳐진 세상은 넓은데 도시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려웠으니까요 삼천리 강산 거칠 데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럴 때 정태춘 선생의 목소리로 듣는 노래 2절이 힘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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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걸아라 두다리에 힘주고 겅중겅중
옆으로 뒤로 두리번거리지 말고 앞을보고 걸어라
한발자국 그래 두발자국 저 앞길이 환하잖니
가슴에 닿는 바람을 이겨야지 아가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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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람이 아장아장 걸어서야 되겠습니까. 불안불안 살금살금 걷다가는 십리도 못가 발병나서 엉금엉금 기기 십상이지요. 몸은 움츠려들고 마음은 불안해도 두 팔 90도로 휘두르며 하늘을 찌르고 다리에 힘주고 속보(速步)로 걷다 보면 이마에 땀도 나고 멀던 길도 가까워지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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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따로 할 길이 없는 요즘 자주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 보는데 처음에는 까마득하고 영하 십몇도가 무섭기도 했는데 걷다보니 별 것이 아니더라고요. 걷기 시작하는 게 문제지 다리에 힘 주고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하면 축지법이 따로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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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걸어라 어깨를 펴고 섬큼성큼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동무하여 걸어라
봄햇살에 온누리로 북소리처럼 뛰는 맥박
삼천리라더냐 그뿐이라더냐 아가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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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虎視牛行) 이라는 말이 있죠.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바라보고 판단하되, 행동은 소처럼 조심 조심 끈기 있게 하라.’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시호행(牛視虎行)이 유행인 것 같습니다. 꿈벅꿈벅 띄엄띄엄 세상을 보다가 뭔가 걸린다 싶으면 호랑이처럼 좌충우돌 사방을 질주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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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랑이는 수이 지치고 소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급할수록 넘어지지 않는 게 중요하고 해가 진 뒤 어두운 길 재촉하다가는 밝을 때 몸져 누울 일이 많겠죠. 새해에는 소처럼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룩 송아지건 누렁 송아지건 동무하여 걸으면서 어둡고 찬 겨울 보내고 따뜻하고 밝은 봄을 향해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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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신축년은 한 달도 더 넘았지만 그래도 법치국가에서 공식적인 해가 바뀌니 소띠 해로 치고..... 새해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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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서로 소 닭보듯 하지 말고 곰살맞게 챙겨 주고, 가끔 뒷걸음치다가 쥐잡는 행운도 누리며, 소 잃는 슬픔 없이, 하지만 소 잃으면 반드시 외양간은 고치는 지혜를 가지면서, 행여나 소도둑될까 바늘조차 탐하지 않는 마음으로, 고집을 부릴 때는 황소고집도 부리지만 맘 먹으면 쇠뿔도 단숨에 빼는 기백으로, 그러면서도 경우없이 설치다가 엉덩이에 뿔나는 못된 송아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한 해 '느릿느릿해도 황소걸음'으로 걸어가 보십시다. '새신을 신고' 하늘까지 뛰어보기도 하면서.
정태춘 선생의 <아가야 가자>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
항상 포스팅을 즐겨 읽곤 했습니다. 비록 소량이지만 @support-kr을 통해 꾸준히 보팅해드리려고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