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adria 의 영화리뷰 # 월플라워(Wallflower, 2013)

in #kr7 years ago

[사람은 사람에 의해 변화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한 사람이 변화하는데 가장 많은 동기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이 만나는 또 다른 사람이죠. 이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시기인 10대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10대들에게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된다는 것은 크나큰 변화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시기 때 만나는 사람들이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의해 삶이 달라진 소년 찰리의 이야기, 영화 <월플라워>입니다.

[오프닝에서 영화의 주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끝이 없는 터널을 자동차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찰리의 소개가 시작됩니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게 되지만 이 터널 장면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프닝 장면에서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나는 터널은 다양한 느낌을 주죠. 그 중에서도 주로 ‘열려있는’ 느낌이 듭니다. 답답하게 갇혀있는 느낌보단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느낌이 더 강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터널은 ‘자유’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터널처럼 자유롭게 사는 삶, 그것이 영화가 추구하는 목적인 것이죠.

[간단한 행동으로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다]

영화의 초반부를 보면 찰리의 성격을 추측할 수 있는 여러 행동들이 나옵니다. 학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긴장되고 누군가에겐 두려울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점심시간’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밥을 먹는가입니다. 그러나 찰리가 찾아가는 상대는 누나와 중학교 때 잠시 친했던 친구뿐입니다. 따라서 찰리에게는 밥을 같이 먹을 ‘새로운’ 친구가 없습니다. 여기서 관객은 찰리가 사교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할 때 찰리는 답을 알면서 책에 적어놓기만 하고 손을 들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자주 답을 하면 자연스레 잘난 척을 한다는 인상을 주어 아이들의 미움을 사죠. 그리고 동시에 답을 맞히면서 모든 학생들의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이로써 관객은 찰리가 예상했던 대로 남의 관심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아이들 틈에 묻어가려하는 소극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전달하는 법]

찰리는 상대를 알 수 없는 대상에게 자신의 일과를 전달하는 ‘편지’를 씁니다. 영화 중간 중간 이러한 편지의 내용이 내레이션으로 설명됩니다.
청춘, 특히 10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대사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길고 복잡합니다. 일반적으로 소극적이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은 남을 ‘관찰’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남에게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욱 상대를 파악하려 하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지고 그것에 대한 감정이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이를 전부 일반적인 내레이션으로 표현해버리면 영화가 너무 가벼워집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선택한 방법은 ‘편지’였습니다. 이것이 가장 탁월한 선택인 이유는 영화에서 편지의 역할이 단순히 감정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영화에서는 편지의 수신 대상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일기를 쓰듯 계속해서 할 말을 적을 뿐이죠. 이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밝혀질 때까지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영화에 깊이 몰입하게 되는 것이죠.

[인물의 위치가 곧 마음의 위치이다]

처음 샘과 패트릭의 친구들을 만나러 갔을 때, 찰리는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그들은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찰리는 자존감이 많이 하락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다른 친구들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찰리는 파티에 온 인기쟁이 브래드를 보고 저 애는 인기가 많은 애가 아니냐며 의아해합니다. 이게 찰리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인기가 많은 애’는 대단하고 그게 아닌 애들, 즉 자신은 하찮다는 것이죠. 그 말을 하는 찰리에게 샘과 패트릭의 친구 중 하나인 메리가 묻습니다. “그럼 나는?” 그들은 찰리와 다릅니다. 그러나 찰리는 이런 생각조차 그들이 자신처럼 별 볼일 없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하대하죠. 그러나 찰리는 그들 사이에 끼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동시에 자신은 그들과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자에 있는 그들과 달리 바닥에 앉아서 마음껏 이야기를 한 것이죠. 그들은 높은 의자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자신은 바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찰리가 생각하는 심리적 위치였습니다.

[닮은 모습은 마음을 이끄는 법]

찰리가 가장 좋아했던 헬렌 이모는 매번 별로인 남자만 만났고, 누나의 남자친구 데렉은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샘은 자꾸만 자신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남자만 만나죠.
이들은 찰리에게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남자들만 만납니. 찰리는 누나와 이모의 모습을 보며 오랜 시간 불만을 느꼈죠. 그러던 중 같은 행동을 하는 샘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이끌린 것입니다. 그러나 샘을 만난 후 찰리에게 전과 다른 면이 생겼습니다. 바로 ‘행동’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죠. 찰리는 앤더슨 선생님에게 왜 좋은 사람들은 항상 안 좋은 사람들만 만나려하는 거냐고 묻습니다. 선생님은 사람들은 ‘자신의 크기에 맞는 사랑’을 선택하기 때문이라 답합니다. 그 말을 들은 찰리는 샘에게 네가 좋아하는 크레이그는 너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해주죠. 헬렌 이모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고 누나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샘뿐이었습니다. 찰리는 그렇게 샘에게 계속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갔던 것이죠.

[인물의 변화는 극적일수록 좋다]

샘과 패트릭은 공연장에서 <록키호러픽쳐쇼>를 패러디하는 공연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록키 역을 맡은 배우가 불참하면서 찰리가 대신 무대에 오르게 되죠.
처음 공연을 볼 때 찰리는 관객석에 있었습니다. 샘과 패트릭은 친밀감의 표시로 찰리를 맨 앞자리에 앉게 했지만 찰리는 아직 그들 사이에 완벽하게 동화되진 않았죠. 자신 앞에서 춤을 추며 공연을 하는 패트릭을 어색해하고 낯설어했습니다. 그러나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 찰리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관심을 피하려고 아는 답도 말하지 않던 찰리는 온데간데없고, 무대 위에서 자유로움을 뽐내는 배우만 남아있었죠. <록키호러픽쳐쇼>는 자유를 노래하는 뮤지컬입니다. ‘꿈만 꾸지 말고 저질러버려’라는 노래 가사를 보면 알 수 있죠.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낯설어하던 분장을 직접 하고 자유를 외치는 찰리의 모습을 보고 그가 완벽하게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찰리는 샘이 자꾸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안 좋은 상대를 만난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신이 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샘 대신 메리와 사귀었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함께 있는 경우 그 사람의 단점이 먼저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단점이 내가 좋게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될 경우 마음은 더욱 악화되죠. 샘은 찰리와 음악 취향이 비슷하여 그에게 직접 CD를 선물하기도 했지만, 메리는 함께 있을 때 찰리가 음악을 선곡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샘은 찰리와 일치하는 사상을 가지고 대화를 나눴지만 메리는 찰리가 아끼는 스승인 앤더슨에게 받은 책을 무시했죠. 이 때부터 이미 찰리는 메리에게 마음이 떠나고 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찰리도 알지 못했던 내면에 숨은 생각이 있었죠. 바로 ‘나는 샘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앤더슨의 말대로 사람들은 자신이 맞는 크기의 사랑을 찾았고 찰리는 그 상대로 메리를 고른 것입니다. 그러나 찰리는 이것이 자신이 스스로를 과소평가한 것임을 알지 못했죠. 샘이 자신을 낮게 본다고 걱정했지만, 사실은 찰리 자신도 샘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작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사건이 필요하다]

찰리는 자신의 진짜 마음을 들키고 난 후 친구들과 멀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패트릭이 연인 브래드의 친구들에게 맞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구해주죠.
일반적으로 어떠한 일로 관계가 틀어진 경우에는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해 어떠한 ‘사건’이 필요합니다. 보통 친구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 뭔가 오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진심을 드러내면서 풀어지죠. 일상에서는 미안하다 사과를 하며 진심을 드러내지만 영화는 일상과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모든 걸 동사, 즉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 필요할까요. 이 영화가 선택한 방법은 ‘위기에서 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극복해내면서까지 상대를 구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찰리는 평소 겁이 많고 소심했죠. 그래서 힘이 센 아이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패트릭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찰리는 그 아이들에게 주먹을 날립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진심을 보여준 것이죠. 찰리의 진심은 친구들 모두에게 통했고 결국 그들은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돌아가는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 전보다 조금 더 ‘가까운’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패트릭은 찰리가 자신을 구해준 이후로 그와 단 둘이 드라이브를 떠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의 관계가 전보다 훨씬 친밀해진 것이죠.

[모든 관계에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대학에 합격한 후 떠나기 전, 샘은 찰리에게 왜 자신에게 고백하지 않았냐 묻고 찰리는 너를 배려한 것이라 대답합니다.
모든 관계, 특히 사랑이라는 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그저 일방적인 관계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때 확신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진심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샘은 찰리에게 자신의 겉모습이 아닌 진짜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샘은 찰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느꼈으나 그가 확신을 주지 않아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찰리에게 너를 배려해서 그런 것이었다는 대답을 듣고 그의 진심을 얻게 됩니다. 물론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극적인 느낌을 주지만, 찰리와 샘처럼 여러 번 꼬아진 관계의 경우 직접적인 말로 풀어내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진심어린 대화를 통해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신하고 일방적인 것이 아닌 쌍방적인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벽에서 피어나는 꽃, 월플라워]

이 영화에서 ‘월플라워’라는 이름은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벽에서 피는 꽃’이라는 기본 뜻도 있지만 영화에 나오는 ‘파트너가 없어 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죠. 처음에 ‘불량품들의 섬’에 사는 아이들은 찰리에게 월플라워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그 의미가 본래 의미인 꽃보다는 영화 속에서 사용되는 의미에 가깝죠.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찰리는 점차 기본 의미인 ‘꽃’에 가까워집니다. 찰리의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은 바로 그 꽃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 찰리의 씨앗을 발견해주었고 그것에 물을 주고 햇볕을 쏘게 해주었죠. 그렇게 찰리는 차디찬 벽 속에서 친구들의 보살핌을 받고 마침내 꽃을 피워낸 ‘월플라워’가 된 것입니다. 찰리뿐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친구들이 ‘월플라워’입니다. 사랑의 아픔을 딛고 일어난 패트릭도, 자신이 생각만큼 작은 사람이 아닌 걸 깨닫게 된 샘도, 그들의 곁에 늘 함께한 메리, 앨리스, 밥 모두가 월플라워인 것이죠. 이들은 자신의 세계를 ‘불량품들의 섬’이라 불렀지만 사실 그들의 세상은 아름다운 꽃들이 새겨져있는 벽화였습니다. 그들 모두가 자유로운 터널을 달리며 멋지게 피워낸 한 송이의 빛나는 꽃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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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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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저도 해 보고 싶었는데 솜씨가 없어서… 되게 정성들여 써주신 것 같군요.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잘 보고 팔맺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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