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ria 의 영화리뷰 #터미널(Terminal, 2004) 그는 바보인가 천재인가

in #kr7 years ago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처참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마음가짐만 잘 정돈한다면 충분히 무사히 헤쳐 나올 수 있죠. 여기 공항에 갇혀 이도저도 못하게 된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요? 공항미아 나보스키의 이야기, 영화 <터미널>입니다.

[첫 장면은 곧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

보통 영화의 전반부, 즉 오프닝에서 등장하는 요소들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해줍니다. 이 영화는 어떨까요? 처음부터 공항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검색대’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혹시 이 영화는 무서운 사건을 다룬 범죄스릴러물일까요? 그런데 그 생각도 잠시, 한 여자가 출국이유를 묻는 말에 ‘쇼핑’이라고 대답합니다. 앞부분에 깔려있던 무거운 분위기는 사라져버린 걸까요. 그 때, 공항이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뭔가 수상한 사람들을 발견한 듯한데요. 역시 예상대로 이 영화는 공항에서 사건이 시작되는 범죄물이 분명한가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뭔가 이상합니다. 수상한 인물로 지목된 단체, 사실 단체라는 무거운 말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무려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심각한 상황에 무슨 우스운 일인가요. 이로써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오프닝에서 약간의 혼동을 주었지만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어떤 인물일까요. 보통 코미디 장르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 중 유일한 정상인이거나 같은 유머러스한 캐릭터거나 둘 중 하나인데요. 아, 이 때 주인공의 모습이 보입니다. 공항에서 면도를 하고 있네요. 이로써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비정상적인 주인공이 나오는 웃긴 코미디 영화’입니다.

[그는 어떤 돌연변이인가?]

앞부분에서 주인공, 나보스키가 비정상적인 캐릭터라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면이 비정상적일까요? 보통 코미디 영화에서 주인공의 성격은 영화의 유머코드를 결정합니다. 칠칠치 못하고 덜렁거리는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 슬랩스틱 코미디가, 주인공에게 거부감이 느껴지지만 왠지 웃기는 특성이 있는 경우 B급 코미디가 되는 거죠. 그렇다면 이 영화의 웃음코드는 무엇일까요? 공항에서의 대화 장면을 보면 나보스키에게는 독특한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거죠. 그래서 자신의 나라 크라코지아가 파멸했다는 말을 듣고도 그 단어만 듣고 ‘크라코지아!’라고 고국을 찬양하며 기뻐합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크라코지아의 상황을 설명해주면서 사과를 사용하는 직원에게 나보스키는 그냥 사과가 아니라 큰 사과라고 말하라고 지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전혀 엉뚱한 데 초점을 맞추고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나보스키의 이 두 가지 특성이 영화의 전체적인 유머코드를 좌우할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이 영화의 유머의 초점은 ‘심각한 상황과 맞지 않는 주인공의 말과 태도’가 될 겁니다.

[비정상인 건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 응? 하게 싶게 만드는 경우들이 종종 나오는데요. 공항 쓰레기통에서 식권을 찾으려는 나보스키에게 청소부가 쓰레기통을 뒤지려면 시간 약속을 잡아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ㅓ 자신은 화요일에 시간이 빈다고 말하죠. 그 뿐이 아닙니다. 공항의 최고 권위자가 항상 자신만의 배를 갖는 게 꿈이었다 합니다. 어딘가 이상하죠.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코미디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이죠. 현실에서는 우스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물론 주인공은 그 코미디 세상 속의 가장 코미디적인 인물이죠. 모두가 정상인인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세상 속 모든 인물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고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관객들은 여기서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를 얻게 되는 거죠.

[사건이 일어남을 알리는 신호!]

주인공은 음식을 사먹을 돈이 없어 가지고 있는 크래커를 조금씩 나눠먹곤 하는데 한 입 먹으려 할 때마다 무언가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의 본국 크라코지아에 관련된 뉴스가 나오는가 하면, 그가 첫 눈에 반했던 여자가 등장하기도 하죠.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무언가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 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면 주인공이 항상 식사를 하려 할 때마다 무언가 일이 생겼음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런 식으로 사건이 일어날 때와 인물이 어떠한 행동을 할 때가 겹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간 중간 관전 포인트를 안내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항상 주구장창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죠. 주인공의 평온한 일상이 진행되다 어느 순간, 갑작스레 사건이 발생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 예고 없이 일어나면 보는 사람은 혼란을 느끼게 되죠. 따라서 이렇게 특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것이다’라는 것을 미리 예고해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캐릭터에 특징을 부여하여 작품의 재미를 더 높여주는 역할도 하죠.

[로맨스, 뒤바뀌는 상황!]

처음 나보스키가 사랑에 빠진 여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그에게는 애인이 있었기 때문이죠. 나보스키는 멀리서 바라보지만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애인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상처를 받았을 때 다가오는 사람에게 약하죠. 나보스키는 실연을 당해 슬퍼하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네주고 위로해줍니다. 사랑을 잃은 시점에서, 자신에게 따스하게 대해주는 나보스키에게 그녀는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한 순간에 상황이 뒤바뀌어버린 것이죠. 로맨스가 주가 되는 영화가 아닐 경우, 주로 이렇게 반전이 있는 로맨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주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에게 점점 동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미 영화 속 세상과 주인공에게 익숙해져서 더 이상 그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 되는 거죠. 이 때부터 관객들은 주인공의 행동 하나 하나에 간절해집니다. 이는 사랑도 예외가 아니죠. 그 때, 주인공이 시작도 못하고 떠나보낸 사랑이 갑자기 주인공의 앞에 다가온다면 어떨까요? 주인공의 입장에 완전히 빠져든 시점에서 관객은 주인공을 마구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 원래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 더 기분 좋은 법이죠. 그렇게 예기치 못하게 시작된 로맨스는 관객이 더욱 영화에 흥미를 느끼고,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합니다. 어딘가 모자란 주인공과 완벽한 상대의 사랑이야기는 장르를 불문하고 보는 사람들을 희열에 빠지게 하는 법이니까요.

[적절한 우연은 더 큰 재미를 선사!]

나보스키의 생활력은 대단합니다. 고국에 돌아가지도, 목적지에 가지도 못하고 공항에 혼자 남게 됐음에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살아남습니다. 버려진 카트를 모아 그 안에서 나오는 동전을 찾아 햄버거를 사먹고, 그저 별 뜻 없이 벽에 페인트칠을 하던 중 관계자의 눈에 띄어 돈을 받고 일하게 되죠. 이 때 그의 생존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우연성’이라는 거죠.
처음에 카트로 돈을 버는 방법을 발견할 때 그는 우연히 카트를 옮기는 직원과 마주칩니다. 그리고 카트가 여러 개 모이면 동전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죠. 페인트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 관계자가, 그것도 뉴욕 시의 건설사 관계자가 그의 페인트칠을 보게 된 거죠. 이런 종류의 우연은 주로 코미디 영화에서 사용 되는데요.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도 영화의 톤을 맞추기 위해 종종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웃기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사 중간에 우스운 장면을 넣음으로써 관객이 영화에 다시 한 번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위기 극복은? 극적으로!]

어느 날 공항에 문제가 생깁니다. 러시아 사람이 위독한 아버지에게 줄 약을 가져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공항에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벌어진 거죠.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러시아의 옆 나라 크라코지아에 사는 나보스키였습니다. 나보스키는 공항 직원이 하는 말을 러시아인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 문제를 해결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 공항에서는 나보스키를 어떻게든 이곳에서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에게 크나큰 위기가 닥쳐있던 것이죠. 보통의 인물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요. 가슴 아픈 사연으로 공항 직원을 설득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폭력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보스키는 이와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위기를 해결해야 할까요? 코미디 영화에서는 인물이 순식간에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고 ‘영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좀 더 극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나보스키가 쫓겨날 위기에 직면하기 직전에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이렇게 극적인 위기 상황에서 극복을 하게 되면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 배가 됩니다. 똑같은 위기라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시시해질 것인지, 더 긴박감을 줄 것인지가 결정되니까요.

[답답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유]

나보스키는 상당히 답답한 인물입니다. 사람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툭하면 이상한 말을 해서 사람 속을 긁곤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누구보다 ‘인류애’가 투철한 인물이라는 거죠. 나보스키는 바보같아 보이긴 하지만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아버지에게 약을 주러 캐나다에 가야 하는 남자를 감싸줍니다. 그의 약이 사람이 먹는 약이 아닌 염소의 약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말이죠. 그의 이러한 마음씨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들에게까지 전달됩니다. 이것이 그가 무슨 일을 하든 그를 응원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죠. 그리고 이렇게 착한 성향을 가진 인물은 반드시 그에 대한 보상을 얻기 마련입니다. 나보스키 역시 그랬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감동받은 공항 직원들이 상사 몰래 그를 내보내주게 된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착한 일을 해도 칭찬을 듣긴 커녕 외면 받는 일이 더 많죠. 그러나 영화는, 특히 코미디 영화에서는 조금은 현실과 동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관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이상적 현실’을 원하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에서 변치 않고 사용되는 진리가 ‘권선징악’입니다.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 거죠. 이 영화 역시 그 이치에 따랐습니다. 이 영화에는 ‘악한 자’라고 할 만큼 부정적인 인물은 있지만 선한 사람은 있죠. 바로 주인공 나보스키입니다. 그래서 그의 선한 행동이 그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우리]

주인공이 밥 먹듯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I wait”. 바로 자신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죠. 그가 공항에서 만난 그녀 역시 이렇게 매일 기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호출기를 한 번도 손에서 놓지 못했죠. 자신을 버리고 떠난 그의, 그리고 지긋지긋한 직장의 연락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호출기를 멀리 던져버림으로써 기다림의 지옥에서 벗어나죠.
우리의 삶은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이 때의 기다림은 설렘이라기 보단 속박에 가깝죠. 나도 모르는 새에 현실 속에 나를 가두고 그 속에서 그것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줌에도 불구하고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다 잊고 제쳐두고 싶지만 아직 그럴 용기가 없으니까요. 항상 기다림 속에서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나보스키는 말합니다. 호출기를 꺼두라고. 우리는 언제나 어딘가로 호출되면서 살아왔죠. 그것은 나를 구속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장소 또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호출의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 휴식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나는 나를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이제 그만 속박에서 벗어나 나에게 온전한 휴식을 허용해 주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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