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ria 의 영화리뷰 화차(Helpless)

in #kr7 years ago

그녀를 믿지 마세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있다고 착각한다. “내가 같이 보낸 세월이 몇 년인데”라며 자신은 그 사람을 꿰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성향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놀라며 묻는다. “너 이런 면도 있었어?” 그리고 너답지 않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그러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여기, 한 여자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가 크게 데여버린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장문호, 강선영이라는 애인을 둔 동물병원 원장이다.

오프닝에 이미 힌트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은 문호가 연인 선영과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문호와 선영은 서로 약혼한 사이이다. 선영이 문호에게 묻는다. 어머니(시어머니)가 스카프를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다고. 문호는 분명 좋아하실 거라 답한다. 선영이 다시 묻는다. 어머니께 직접 물어 본거냐고. 문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머니가 평소에 그러한 색을 좋아하니 괜찮을 것이라고 답한다.
이 다음 선영의 대사는 “왜 이렇게 대충 넘어가려고 해”이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지만 문호는 대충 넘어가려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착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가 어머니와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라고 생각하며 자신은 웬만한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연인 선영에 대한 태도도 같았다. 문호와 선영은 오랜 기간 연애를 했고, 따라서 문호는 자신이 선영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영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이러한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첫 등장이 인물의 행보를 좌우 한다

선영은 사라지기 전 문호의 친구에게 혹시 신용불량자가 아니냐고 묻는 전화를 받는다. 그 말을 들은 문호는 생각한다. 아, 결혼 직전에 신용불량자인 걸 들켜버려서 도망친 거구나. 이 때까지도 문호는 자신이 선영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완전히 깨져버리는 일이 생겨난다. 선영의 신분이 가짜였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주민등록증 속 실제 선영의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문호는 난감해졌다. 선영이지만 선영이 아닌 그녀의 진짜 신분을 몰라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그 때, 문호의 앞에 조력자가 나타난다.
그의 사촌형 종근의 등장은 나름 화려하다.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려던 중 종근은 젊은 남자가 캔 맥주를 훔치는 현장을 목격한다. 남자가 가게를 나간 순간, 종근은 남자를 불러 세운다. 종근은 자신이 경찰이라고 주장하며 남자를 마구 몰아세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첫 등장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이 인물의 특징과 성격을 최대한 간략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 영화는 그것을 매우 훌륭하게 해낸다. 앞서 말한 오프닝 장면에서도 선영과 문호의 대화만으로 두 사람의 성향을 한 번에 보여준다. 종근의 첫 등장 역시 인물의 특성을 잘 반영했다. 종근은 좀도둑에게 자신이 경찰이라고 큰소리친다. 이를 본 관객은 알 수 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근은 지금 경찰이 아니구나. 자신이 정말 경찰이라면 당당하게 형사증을 제시하면 된다. 그러나 종근은 말로만 경찰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근에게는 아직 ‘정의감’이 살아있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된다. 이렇게 짧은 등장으로 감독은 관객에게 종근이라는 인물에 대한 주요 정보를 모두 전달한 것이다.

반전은 스토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는 다소 독특하게 느껴지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동물병원 간호사 한나다. 앞서 말한 첫 등장의 역할이 한나에게도 적용된다. 한나가 영화에서 처음 하는 행동은, 선영의 행방을 찾기 위해 회사와 지인들을 찾는 문호에게 출신 고등학교에 연락을 해보라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객들은 의외성을 찾을 수 있다. 처음에 스크린에서 한나를 봤을 때 관객이 느끼는 ‘첫인상’은 약간의 경계심이다. 본격적인 액션을 취하기 전 한나의 모습은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수다 떨기 좋아하고 눈치 없는 평범한 간호사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대부분 주인공이 크고 작은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객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한나를 본다. 그러나 한나가 문호를 돕는 모습을 보고 이내 경계가 풀어진다. 이렇게 한나는 중간 중간 영화의 조력자 역할을 간다. 일반적인 작품에서 조력자들은 다소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영화 속 한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신이 치료하고 있는 동물들처럼 방방 뛰는 캐릭터에 가깝다. 그래서 이 인물이 더욱 신선한 것이다. 보이는 것과 다른 어쩌면 ‘반전’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극의 재미를 더욱 높여준다. 뿐만 아니라 한나는 영화의 톤을 조절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다소 어둡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높은 톤의 인물인 한나가 중간 중간 등장함으로써 영화의 느낌을 조절해준다.

누가 그녀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가

선영의 진짜 이름은 경선이다. 그녀에게는 이혼 경험이 있다. 전남편은 처음에는 경선을 감싸주었다. 빚을 진 게 경선의 잘못도 아니고, 아직 그녀를 사랑했기에 보듬어주려 노력했다. 그러나 빚쟁이들의 횡포는 날로 거세졌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남편은 거실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경선을 본다. 경선은 제발 아버지를 죽여서 자신의 앞에 데려다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선영을 더욱 비정상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공포스러운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인데 어떻게 그런 끔찍한 기도를 할 수 있냐는 비난과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이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경선의 행동이 비도덕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와 상관없이 시작된 빚의 시달림에 대해 경선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경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빠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다 해도 이 끔찍한 굴레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래서 차라리 그가 죄 값을 치렀으면 했다. 경선은 뼛속까지 악한 인물은 아니다. 그녀가 정말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었다면 직접 아버지를 찾아서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아빠가 자신을 이렇게 괴로운 상황에 몰아넣은 벌을 죽음으로 받는 것이, 그녀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었다.

마냥 정의로울 수 없는 세상

문호와 종근 뿐만이 아닌, 경찰이 본격적으로 경선을 쫓기 시작하는 계기가 생긴다. 바로 선영의 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그 전에 선영의 모친이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이 있었지만 증거가 전혀 없어 무산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경찰은 경선이 선영을 죽인 용의자라고 생각하고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이 드러난다. 경찰들은 명확한 ‘사건’이 생겨야 움직인다는 것. 스토킹을 당하거나 괴한에게 쫓긴 후 신고를 하고 나면 경찰들은 말한다.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 유명한 사건이 있다. 초임 경찰이 납치된 상태로 신고한 피해자에게 계속 정확한 장소를 말하라, 범인의 특징을 말하라 등의 부수적인 질문을 하며 시간을 허비한 탓에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 물론 이는 극단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애매한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경찰들은 그저 정의감만으로 움직일 수 없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기가 찰 정도로 가벼운 일이었거나 장난전화로 신고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심증’만으로는 움직이기가 힘들다. 그래서 뒤늦게 움직이는 경찰을 곱게 볼 수는 없지만 마냥 욕하기만 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원망보다 사랑이 우선이었던 남자

자신에게 신분을 속이고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연인과 처음 마주쳤을 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뭐라 말할까. 아마 “너 나한테 왜 그랬어?”라고 묻거나 “너 정말 끔찍하다”고 욕을 할 것이다. 그러나 문호가 경선과 처음 마주쳤을 때 했던 첫 대사는 “아니지?”였다. 경선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보다 문호는 그녀가 살인자라는 혐의를 받는 것이 더 싫었다. 그녀의 행동이 모두 가짜였다는 걸 알고 나서도 문호는 경선을 놓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경선의 전남편은 문호와 달리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내쳤다. 그러나 문호는 경선을 온전히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 문호가 경선에게 말하는 마지막 대사는 “너로 살아”이다. 문호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경선을 존재 그대로 사랑해준 유일한 남자였다.

신데렐라 언니에게도 사정이 있다

모든 창작물에는 악인이 등장하고 그들은 모두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그들도 선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그들에 대한 세상의 태도가 그들을 점점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 속의 경선이 그랬다. 사실 그녀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을 지도 모른다. 평생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살지 않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신분이 필요했고, 그렇게 다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결핍된 애정을 채우기 위해 연애도 해야 했다. 물론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옳지 못한 행동이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일이었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살아야했다.

누구나 ‘경선’이 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에게 선택권이라는 것은 없었다. 물론 신분을 바꾸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다 결국 발각되어 죽음을 맞이하거나, 아니면 운 좋게 적당한 장소를 골라 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해도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집 앞 편의점만 가도 주변을 살펴야 하는 숨 막히는 삶. 그것만으로는 ‘행복’을 얻기 힘들다. 그래서 그녀는 신분을 버리는 것을 택했다. 차경선으로 사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경선은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한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평범한 행복을 누릴 권리를 뺏겨버린 이상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다.악### 인을 이해하려면 완전한 악당이 필요하다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관객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사정을 갖고 있다. 앞서 말한 경선도 그렇고, 배신을 당하고도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 문호도 그렇다. 심지어 그저 경찰의 마음으로 경선을 수사하는 종근과 경선을 마냥 욕하기만 하는 문호의 친구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정을 알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경선의 아버지다. 경선의 아버지는 그저 ‘빚을 떠넘긴 사람’으로만 묘사된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채를 썼다거나 가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린 것 등 가슴 아픈 사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이 경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악인이 필요했다. 그녀를 악하게 만든 ‘악당’이 있어야 경선의 부적절한 행동을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감독은 경선의 아버지를 악당으로 택했다.

판타지가 아니어서 더 무섭다

이 영화 속 이야기는 결코 판타지가 아니다.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내부자들>을 본 관객들이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그것이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의 현실성이 극대화 될수록, 관객의 몰입도는 더욱 높아진다. <화차>는 이를 훌륭하게 해낸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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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를 아직 안보았지만 kr-movie 스티머로써 인사말 남깁니다. ^^ 제 스팀잇은 영화와 관련된 글을 포스팅하는 소소한 블로그입니다. ^^ 관심 있으시면 방문하셔서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소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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