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ria 의 영화 리뷰 # 세븐데이즈(7 days, 2007)

in #kr7 years ago

[선에 대하여]

범죄자의 편에 서서 그를 옹호해야 하는 변호사.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선은 무엇일까요. 재판에서 승소하여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 아니면 말 그대로 ‘도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 여기 변호사가 된 후 처음으로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 여자 지연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 영화 <세븐데이즈>입니다.

[사건이 일어날만한 적절한 상황]

주인공 지연은 딸 은영의 운동회에서 학부모 달리기 시합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딸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되죠.
이 영화의 메인 플롯은 아이의 ‘유괴’입니다. 이렇게 유괴가 일어날 만한 적절한 상황이 뭐가 있을까요?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부모가 그 자리에 없을 때, 놀이터나 한적한 하굣길에 주로 사건이 발생하죠. 그러나 이번에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이 영화의 서사를 위해서는 부모인 주인공이 아이의 실종 사실을 즉시 알아야합니다. 그러려면 어떤 상황이 필요할까요?
먼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유괴를 당하는 순간을 보지 못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가 다른 일에 집중해있어야 하죠. ‘달리기’는 운동 특성상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지연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데에만 몰입한 상태라 은영의 상황을 보지 못하게 되죠. 이뿐 아니라 현장에서 즉시 유괴가 일어나기 때문에 범인을 쉽게 찾지 못하도록 인파가 많은 상황이어야 합니다. 아이와 엄마가 한 곳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곳. 그래서 사건이 운동회 날, 은영의 학교 운동장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죠.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지연은 바쁜 일 때문에 딸과 자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주말에 딸과 놀이동산에 가기로 한 약속도 어기고 말죠.
일에 바쁜 워킹맘이 자식에 대한 소홀함을 깨닫기 위해서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바쁜 일상을 중단하고 자신의 지난 행동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리고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내 아이와의 관계를 얼마나 가볍게 생각했는지를.
대부분의 유괴, 납치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죠. 주인공은 언제나 사라진 상대에게 소홀했고, 소중하게 대해주지 못했습니다. 본인의 일이 워낙 바빴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인공은 사라진 상대를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일들을 모두 중단하고, 오로지 그들만의 관계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가까이 있는 상대의 소중함을 깨닫는 때는 그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뿐입니다. 이는 부모와 불화가 생긴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곁에 없어봐야, 있을 때 잘해야 했었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모든 인간은 감정에 약하다]

지연은 은영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흉악한 살인범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변호를 위해서는 죽은 피해자의 유가족을 만나야 했죠. 하지만 그녀는 살인범의 형량을 낮춰야하는 변호사의 신분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유가족을 만나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요? 지연은 유가족 중 엄마에게 자신이 또 다른 피해자의 언니라 말합니다. 자신 또한 그들과 같은 유가족의 입장이라는 걸 강조한 것이죠. 그 말을 들은 피해자 혜진의 엄마는 대화를 승낙하고 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딸의 죽음이라는 참사를 겪은 상황에서 유가족은 많은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감정에도 쉽게 동요하게 되죠. 이 때 그에게 다가가려면 위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걸 넘어서서 그와 같은 입장이라는 ‘동질감’을 주어야하는 것이죠. 이렇게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모든 상황에서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움직여야 합니다.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

지연의 신분은 변호사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은영을 찾고, 유괴범의 의뢰를 해결하는 것을 동시에 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그래서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이 때, 조력자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주인공과 함께 움직이고, 주인공이 원하는 정보를 주어야 하죠.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형사 성열입니다.
형사라고 해도 현직에 있는 경우에는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경찰서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은영을 구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열이 어떠한 사건으로 잠시 현직에서 내려온 상황이 되는 것이죠. 이것 또한 이야기에서 형사가 조력자로 등장할 경우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특징입니다. 조력자는 능력이 있어야하지만, 상사나 단체의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그는 현직에 있을 때 이름을 날렸던 ‘전직’ 형사가 되는 것이죠.

[진정한 동질감]

지연이 변호를 맡은 사건의 피해자 혜진의 엄마는 딸을 잃고 말았죠. 지연은 지금 딸 은영을 잃을 위기에 놓인 상태입니다.
“목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떠나보내야 한다” 혜진의 엄마가 한 말로, 영국 동요 중 한 구절입니다. 은영과 혜진 모두 목요일에 태어난 아이죠. 혜진의 엄마는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자신과 지연이 같은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연과 혜진의 엄마의 진정한 동질감, 둘 다 사랑하는 딸이 있고 그 딸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변호사,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을 옹호하고 도움을 주는 직업이죠. 지연은 승률 99%의 유능한 변호사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가 감형해주고, 무죄를 만든 범죄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소리죠. 이것은 지연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도 되지만, 동시에 그녀가 도덕성이 어느 정도 결여되어있는 인물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녀는 큰 딜레마 없이 오직 프로의 마음으로 재판에 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맡게 된 사건은, 피해자가 자신처럼 딸을 가진 엄마라는 변수가 있죠.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딸 은영을 살리기 위해서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혜진의 엄마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어야합니다. 여태껏 그녀의 사건은 자신과 관계없는 그저 업무일 뿐인 ‘남의 일’이었죠. 그러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아마 그녀는 이번 사건을 통해 공공의 선과 개인의 가치 사이에서 그간 겪어보지 못했던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 같습니다.

[부도덕적인 인물의 행동을 납득시킬 것]

지연의 행동은 분명히 도덕에 어긋납니다. 딸을 구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이미 처벌을 받게 된 살인범을 형량을 낮추는 것도 모자라 무죄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지연과 함께 딜레마를 느낍니다. 그러다가 관객이 자신의 선택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지연이 검사 측 증인인 살인범의 애인의 증언으로 패소 위기에 처했을 때죠.
이렇게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 등장할 때는, 관객들에게 그의 행동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물론 관객들이 처음부터 모든 사연을 알고 시작하기 때문에 지연의 입장을 더 쉽게 납득할 수 있지만, 이렇게 배경만을 전달하는 것으로는 인물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서사에서는 인물이 딜레마를 겪으며 갈등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선과 악의 경계, 그리고 자신과 같은 ‘어머니’인 피해자의 엄마에 대한 죄책감. 지연은 재판에서 피해자 엄마의 차분한 태도를 보고 후처가 아니냐며 막말을 하는 살인범에게 따귀를 날립니다. 이것이 그녀의 ‘본심’입니다. 악착같이 승소를 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 지연을 보며 관객은 불편함을 느끼다가도 이렇게 중간 중간 등장하는 그녀의 진짜 마음을 보고 비로소 다시 납득할 수 있게 되죠. 인물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고, 사실 본심은 그와 다르다는 것을 관객이 계속해서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기와 체념]

진범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빼앗긴 지연은 재판에서 승소하기가 힘들 거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딸 은영 역시 찾기 힘들 거라고 결정을 짓죠.
사방을 돌아다니며 은영을 찾던 때와 달리 지연의 태도는 차분합니다. 밥을 차려서 식사를 하고, 더 이상 미친 듯이 불안해하지도 않죠. 대신 눈물을 흘리며 은영의 흔적을 느끼고, 딸의 사진과 남아있는 문자메시지를 봅니다. 꼭 작별 인사를 나누는 사람처럼 말이죠.
재판이 한 번 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은영을 구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안 순간, 지연은 체념한 것이죠. 이렇게 인물은 자신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오히려 차분해집니다. 그리고 헛된 희망을 쫓는 일을 그만 두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죠. 그것은 바로 포기와 체념입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닙니다. 지연은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 재판에 임하죠. 그렇지만 처음 재판처럼 치밀하지도, 승소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지도 않습니다. 지연은 이미 마음속으로 딸을 보내준 것이죠.

[진실만이 답을 줄 수 있다]

지연은 법정에서 자신이 조사하면서 알게 된 모든 진실을 한 치의 보탬도 없이 모두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피해자인 혜진의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죠.
그 전의 주인공은 사실을 조작하면서까지 재판에서 승소하려 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딸인 은영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 그러나 혜진의 엄마처럼 딸을 잃기 바로 직전에 처한 순간, 지연은 깨달았습니다. 누구보다 딸을 잃은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이 그런 식으로 같은 ‘어머니’를 배신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걸 말이죠. 그래서 지연은 거짓말로 꾸며내는 것을 그만두고 오직 진실로만 맞서기로 합니다.
바르지 못한 행동을 그만두고, 진실을 택하기로 결정한 후 지연은 비로소 재판에서 승소합니다. 지난 재판에서는 사실을 왜곡하고, 최대한 피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꾸며내려 거짓을 만들어내면서 계속해서 위기를 맞이했죠. 그러나 모든 걸 버리고 오직 진실만을 남겨놓은 후, 마침내 원하던 결과를 얻게 된 것이죠.
지연이 증거를 찾으면서 ‘이기는 데 필요한’이 아닌 ‘진실’에 주력했다면 딸을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늦게라도 이 사실을 깨달아서, 마침내 지연은 사랑하는 딸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됐죠.
변호사라면 누구나 겪는 도덕적 딜레마죠. 없는 사실을 꾸며내서라도 의뢰인의 편에 설 것인가,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진실만을 볼 것인가. 이 영화가 제시하는 답은 이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거짓이 아닌 ‘진실’에 입각하여 판단할 것. 진실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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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ria
멋진 리뷰였습니다, 체계적으로 잘 분석해주셨군요. 팔로우 보팅하고 갑니다!
다음 글도 기대가 되네요 ㅎㅎㅎ

잘 봤어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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