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었던 이야기 @Redsign

in #kr7 years ago

야옹,

발 앞으로 스치는 소리였다.

냐앙,

누군가를 부르던 목소리였다.

'이리와.'

뒤돌며 손 뻗었을 때 그렇게 웃고 있던 한 마리였다.

때에 맞지 않게 아름답게 핀 낙엽잎이 밤빛을 가르고 반짝였다. 찬 바람을 온 몸으로 버텨낸 아슬아슬함이 이제 곧 겨울이라는 걸 말해주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떠나버린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땅에 묻힌 한 마리도, 어느 하나 그냥 남겨두지 않고서, 모두를 안고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디쯤까지 밀려와있는 걸까. 나는 힘빠지는 소리를 흥얼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너는 뒤에 남겨져 있었다. 나의 한 마리의 후회. 어디를 보던, 무엇을 보던 따라오는 친숙한 환영. 눈물로만 남은...

'잘 지내고 있어?'

한 마디의, 매일매일의 안부 인사로 기억될 이젠 지나간, 단 한 순간도 있은 적이 없던 행복.


달리는 고속버스. 너를 담은 이동장 가방은 흔들거리고, 너는 그 안에서 몸을 가득 웅크리고 있었다. 손을 넣었더니 너는 내 손에 제 얼굴을 비볐다. 인사를 건네듯이, 불안함을 나누려는 듯이. 나도 네 머리를 슥슥 쓸었다. 오랜만이라고 대신 인사를 건네듯이.

.

오랜만에 본 너는 예전 모습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크게 자라있었다. 그 때는 툭하면 내 손발을 깨물고 날 가만두질 않던 천방지축 꼬맹이였는데. 그래도 네 눈은 나를 알아보듯 반짝였다. - 미안해. 오랜만이야. 반가워. - 너를 끌어안고 네 귓가에 소근댔다.

.

집안을 온통 네 세상처럼 휘젓고 다니던 너에게 새로운 강적이 나타난 날. 눈 앞의 작고 어린 낯선 손님을 달가워 하지 않던 너는 그 큰 몸집에 그 어리고 작은 것이 무섭기라도 한 건지 내 품 안에서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잠깐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널 내려놓으려 하면 너는 발톱을 세우며 내 옷자락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몸집만 컸지, 겁 많은 애기였구나! 생각하며 웃었다. 우리 덩치 큰 아가. 나의 치즈고양이. 너무나 귀여운 내 아가.

.

이불이 얼룩덜룩, 꼬릿꼬릿. 너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부들부들하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댔다. 예상치도 못했던 일에 당황한 나와 동생과는 달리 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제 솜방망이를 그루밍하기 바빴다. 저 어리기만 한 게, 아직도 아깽이인줄로만 알았는데 너는 이만큼이나 자라 있었구나.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전화를 병원 여기저기에 돌렸다. 동생의 품안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안겨서 나온 너를 보며 동생은 킬킬대며 웃었고, 나는 네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일 너 땅콩 떼러 가는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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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앞. 불안초조 동생은 한 시도 앉아있질 못하고 제 자리를 빙빙 돌았다. 나도 그 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시선으로 너의 모습을 계속 찾았다. 그 때는 그거 하나에 왜 그렇게 마음 졸였던건지 지금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때는 마치 제 아이를 병원 수술실에 들여보낸 부모마냥 가슴이 콩닥콩닥 안절부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기다림의 끝에서 너는 의사선생님의 품에 안겨서 나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은 마취가 풀리지 않은 건지 배를 보인 채로 굳어있었다. 의사선생님은 웃으면서 진료실로 다시 들어가셨다. 나는 아직도 놀란 듯한 너를 품에 안았다. 동생은 손으로 너의 볼을 쓱쓱 문지르며 킬킬댔다. 너 이제 고자야. 고자. 큭큭. 놀리지 말라는데도 자꾸 놀리는 동생에 나는 네 귀를 막고 함께 웃었다. 울기라도 어떡하나. 걱정되면서도 자꾸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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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도 끝냈고, 합사도 시켰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했고. 눈을 뜬 아침에 너는 네 작은 친구와 함께 동생의 품에서 골골대며 자고 있었다. 햇빛이 베란다 창문을 통해 눈부시게 들어왔다. 집안은 고요했고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는 애기들의 코 고는 소리만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동생의 까만 머릿결을 쓰다듬고, 너를 보며 웃었다. 오랜만의, 아주 오랜만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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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갈 날짜 정해졌다!'
깜짝 선언에 동생의 눈은 휘둥그레 떠졌다. 이와중에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우다다 뛰어다니던 너와 네 작은 친구를 한 마리씩 품에 안았다. 안긴 품 안이 답답한 건지 너는 몸을 이리저리로 아둥바둥댔다. 발톱까지 세우는 통에 동생의 품으로 넘겼다. 이사 소식에 동생은 잔뜩 들떠 있었고 그만큼이나 나도 들떠있었다. 안그래도 고양이가 뛰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말도 안되는 아래아랫집의 궤변에 피곤하던 매일매일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지낼 보다 행복한 나날들이 벌써부터 눈 앞으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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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번째의 클레임이었다. 그럴거면 집에 가서 쭉 쉬라는 점주님의 말이 가슴에 푹푹 아프게 꽂혔다. 사실은 그 정도는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아픈 쪽은 다른 쪽이었다. 벌써 2일째 밥을 먹지 않는 힘 없는 모습의 네가 눈 앞에 자꾸 아른거렸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죄송하다며 고개를 연신 숙였다. 씩씩 대며 뒤돌아서 가신 점주님의 뒷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왜그러는거야.' 머릿속이 잔뜩 복잡했다. 빨리 병원이라도 데려가봐야하는데 시간은 아직도 일요일이다. 가지 않는 시계를 보며 속으로 욕짓거리를 했다. 온갖 나쁘고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열심히 아무렇지 않을거라 생각하려 애썼다. 가끔 아프고 그러다 금방 낫던 튼튼한 너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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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분홍색 이동장 가방을 샀으니까, 오늘따라 날씨도 선선하니 좋았으니까, 오늘은 어쩐지 네 표정이 좋아보였으니까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착각인줄도 모른 채. 상태를 확인한 후 곧바로 수술실에 들어간 너를 기다리며 나는 병원 의자에 주저앉았다. 네 상태가 안 좋다는, 그렇게까지나 아팠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웠던건 당장에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까 하는 걱정이었다.무너질 것 같은 하늘을 느끼며 수술실 앞에서 네가 나올 때까지 울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을까. 너는 보이지 않은 채 의사선생님만 수술실에서 나왔다. 바로 입원실로 들어갔다는 너. 입원실 안의 네 모습은 집에서 보았을 때보다 너무나 힘없이 늘어져있어 또 눈물이 툭 터졌다. 일단은 수술이 잘 되었으니 내일 데리러 오면 된다는 선생님의 말이 다행이라고 느끼며 너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고했어. 오늘은 여기서 쉬어. 내일 데리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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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데리고 오지 못했다. 너는 아직도 힘이 없이 차가운 입원실 안에 쭈그리고 누워있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느낌은 여태까지 느꼈던 어떤 감정들보다도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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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가 병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급성신부전으로 새벽에 사망했습니다.'


발 앞으로 단풍잎이 굴러가는 걸 손으로 잡았다. 오랜만에 보는 부서지지 않은 예쁜 단풍잎. 어쩐지 내일은 기분 좋은 날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의 은행나무가 예쁘다고 동생은 이래저래 난리였다. 사진을 찍어주며 피자나 사먹으러가자고 동생을 끌고 걸어갔다. 찬 바람이 오늘은 어쩐지 슬펐다. 단풍잎이 이쁜데도, 은행잎이 이쁜데도 어쩐지 슬펐다. 왜일까 돌아본 곳에 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리와.'

너는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계속 그 자리를 머물렀다. 제 솜방망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루밍하면서, 여전히 통실통실한 그 귀여운 모습으로, 너는 그 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나는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손에 든 단풍잎을 빙글빙글 돌리다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보냈다.

'이제 난 괜찮아'

사랑스러웠던 너에게 편지를 보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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