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상 #1 - 정규직 조세호
고3 때 우연히 본 TV에서 한 무리 연예인들이 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리다 기합을 넣고 황소와 힘싸움을 했지만 결과는 물웅덩이 직행. 이름대로『무모한 도전』을 하던 이들은 다음 해 '무한도전'으로 간판을 바꾸고 목욕탕에서 물을 빼내곤 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성들의 도전기'라는 주제에서 시작된 무한도전. 햇수로 13년 차를 맡으며 많은 멤버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로 나갔던 멤버도 있었고 건강 상의 이유로 하차한 이도 있었지만 토요일 오후 6시를 십 년 넘게 지켜오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시청자로서, 팬으로서 근래 가장 크게 대두되었던 문제가 제6의 멤버였다. 길과 노홍철의 하차 이후 프로그램 전체의 짜임새가 느슨해졌고 팀 대결을 위해서라도 수혈이 필요했다. 2015년에 공개 오디션 형식으로 진행한 '식스맨 프로젝트'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미 알다시피 강력한 후보로 꼽히던 코미디언 장동민이 여성 비하 발언 등 구설수에 오르며 자진 사퇴했고 기존 5인 투표를 통해 제국의 아이들 멤버 광희가 낙점되었다.
하지만 빈자리가 컸던 탓일까. 광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예전 같지 않았다. 양세형이 합류해 반등했지만 새 멤버 광희 군입대 공백이 예상되었다. 무한도전은 프로 봇짐러 조세호를 불러들였다.
단발성이라는 우려와 달리 수월하게 적응했고 한동안 정체해 있던 시청률도 반등했다. 중간에 수많은 멤버들이 오고 갔지만 특히 그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SBS에서 방송을 시작해 MBC로 옮겨가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에 잠깐 나왔다. 다양한 토크·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연했지만 딱히 기억나는 프로그램은 없다. 근래에 격투기 선수 최홍만과 가수 휘성 모창으로 간간히 화제가 되었던 게 기억에 남는 정도.
'대표작이 없다',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는 것은 그에게 아킬레스 건이었다. 그런 모습은 인턴과 계약직을 전전하는 우리 모습과 닮았다. 이직이 흔한 요즘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갖고 있는 고민을 표현하고 있다. 연예인 2세들이 별다른 능력이나 활약 없이 쉽게 캐스팅된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이와 대비돼 엄청난 노력에도 전파 한 번 타기 힘든 것이 대부분의 무명 연예인 생활이다.
그런 그가 메이저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단순히 대기업에 입사한 것 자체가 화제가 된 것이 아니라 기회를 얻었을 때 만개한 능력과 성실함에 환호했다. 공정한 시험을 자처했던 식스맨 때보다 2회에 걸쳐 이뤄진 청문회가 더 공정했다는 평도 있다.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2030에게 식스맨은 그 자체로 예능이 아닌 시험 연장선으로 느껴졌다. '역시 남을 딛고 일어서는 캐릭터가 합격하는구나'하는 마음에 실망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낙점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조세호는 공채가 아닌 특채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더 깊게 이뤄진 면접과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미생이 완생이 되는 무한도전 원래 모토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과거 실패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한 제작진의 영리함이 돋보였다.
나처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며칠 전 나온 집을 보니 '역시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그를 응원하고 싶다. 무한도전이 종영한 지금 그에겐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