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를 망치는 칠면조의 환상

in #kr7 years ago

누가 제게 바다에서의 근 40년 경험을 한 마디로 설명해 달라고 묻는다면 평온했다고 밖에 할말이 없습니다. 물론 겨울의 칼바람, 폭풍우와 안개 등도 경험했습니다만, 전반적인 경험상, 어떤 사고도 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할 말은 없습니다. 조난당한 적도 없고, 좌초당한 적도 없기 때문에 바다에서 어떤 위협이나 곤경에 처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말은 타이타닉호의 E.J. 스미스 선장이 한 말입니다. 이 배는 처녀 항해에 나서던 중 1912년 4월 15일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고, 2,200명 승객 중 단 700명 만이 구조되고, 나머지 1,500명은 바다에 빠져 숨졌습니다.

과거에 경험하지 않았으니까 미래에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미스 선장은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위험을 초래하는 가장 위험한 생각입니다. 스미스 선장의 실수는 빙산과의 충돌을 미리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앞날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의 실수는 미리 대비하지 않은 것입니다.

타이타닉호에는 승객 2,200명을 감당할 수 있는 구명 보트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실제 준비된 구명정의 수용 인원은 700명 분 이상이었지만, 혼란 속에서 어린이와 여성을 먼저 태우는 과정에서 구명 보트를 꽉 채우지 못했습니다. 선원들은 비상 대피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에서 일하던 이들 또한, 비록 금융 산업이라는 상이한 분야이긴 해도, 스미스 선장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 했습니다. LTCM의 팀은 두 명의 노벨 수상자 마이런 숄즈와 로버트 버튼을 포함해 많은 박사들과 전문 트레이더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LTCM은 복잡한 수학 모델을 통해 러시아 채권 가격의 단기 움직임 예측을 꾀했습니다. 이 모델은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며, 과거 러시아 채권이 채무 불이행에 처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1998년 8월 17일 러시아 정부는 디폴트를 선언하고, 자국 통화를 평가 절하시켰습니다.

LTCM은 진자가 다시 중립 위치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데 베팅했습니다. 그들은 진자가 극단에 있을 때, 진자를 묶고 있던 줄이 끊어질 수 있다는 점을 무시했습니다.

스미스 선장처럼, LTCM의 실수는 희소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무시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때 LTCM의 부채 비율은 100대 1까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빚을 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명정은 없었습니다.

스미스 선장과 LTCM은 나심 탈레브가 말한 "칠면조의 환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탈레브는 "블랙 스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인생의 보편적 규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예기치 않은 일이 이 칠면조에게 닥친다. 칠면조는 믿음의 수정을 강요받는다.​ (블랙스완 98쪽)

칠면조를 닭이나 양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기간 먹이를 먹여 키워져 결국 도살로 끝나는 모든 가축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칠면조는 도살장으로 끌려가기 직전까지, 주인이 나를 사랑하고 있으며, 자기 삶은 아주 평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칠면조는 추수 감사절을 몰랐으니까요. 칠면조의 과거에는 추수 감사절이 없었기 때문에, 앞날을 생각할 때도 추수 감사절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칠면조는 블랙스완 사건, 즉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으로 놀라 나가떨어진 이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빙산에 부딪힌 것과 러시아의 채권 디폴트가 바로 블랙스완 사건이었습니다.

칠면조처럼 우리도 과거에 대해 얼마나 정보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축적해 놓았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일이 100% 일어난다거나 일어나지 않는다고 절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칠면조의 환상은 아마 칠면조보다 사람에게 더 자주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2008년의 경제 위기는 주로 금융 기관들 사이에 널리 퍼진 칠면조 환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게르트 거거렌처는 "Risk Savvy(번역서: 지금 생각이 답이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재앙을 예상하지 못한 칠면조와 금융 위기를 예측할 수 없었던 전문가들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모두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재앙은 내다볼 수 없는 모델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칠면조의 경우처럼, 미국 주택 시장에 대한 위험 추정치는 과거 데이터 및 목적에 있어 후속 규칙(similar in spirit to)과 비슷한 모델 기반으로 한 것이다. 주택 가격이 계속해서 상승했기 때문에, 위험은 줄어들 것으로 보였다. 안정성에 대한 신뢰도는 서브 프라임 위기가 시작되기 직전 가장 높았다.

2008년 3월 말, 미국 재무장관 헨리 폴슨은 "우리의 금융 기관, 은행 및 투자 은행들은 강하다. 우리의 자본 시장은 탄력적이며, 효율적이고, 유연성이 있다."라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폴슨의 믿음에 영향을 주었더 위험 모델은 추수 감사절이란 개념을 예상하지 못한 칠면조와 마찬가지로 거품의 규모를 예측하지 못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은행들은 도살되지 않고, 납세자들에 의해 구제되었다는 점이다. 위험 측정 모델들이 확실성이란 잘못된 생각에 빠지게 되면, 재앙을 막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키울 수 있다.

세계 금융 위기가 주식 시장을 강타한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식 시장의 투자 대중 중 상당수가 2008년 이후에 계좌를 개설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장 급락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 경험은 하지 못했던 이들입니다.

그리고 금융 위기를 경험한 이들조차 이제는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음 번 누군가 경제 뉴스에 나와 "우리는 어떤 예상치 못한 일도 예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거든, 칠면조가 털을 뽑히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바랍니다.

빅 데이터의 가장 큰 위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빅 데이터는 확실성이라는 환상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정교한 컴퓨터와 AI를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을 사용해,페타 바이트 급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 말입니다.

기계 학습, 엄청난 역사적 데이터 및 인공 지능을 통해 인류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획기적인 통찰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를 무사안일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위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게 됩니다. 객관적 위험과 주관적 위험을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안전 벨트는 위험을 줄여주지만, 운전자가 더 과감하게 운전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사고를 유발합니다.

오크트리 캐피털의 회장 하워드 막스는 1998년 주주 서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장래의 일은 알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우리 결점이고, 이 때문에 재정적 곤란을 초래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수세기 동안 투자자들은 위험과 불확실성을 혼동함으로써 수많은 좌절을 겪어 왔습니다. 카지노에서는 다양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카지노에서는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가능한 결과의 확률도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결과의 범위도 불확실합니다.

막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릴적 아버지는 경주마 한 마리에 전 재산을 걸었다가 망한 도박사 이야기를 들려 주시곤 했다. 어느 날 그는 경주마가 한 마리만 출전하는 경마에 대해 들었다. 그래서 월세를 낼 돈으로 내기를 했는데, 그 경주마는 트랙을 절반쯤 돌더니 갑자기 담장 너머로 달아나 버렸다. 이렇게 세상에 확실한 것이란 없고, 더 나은 베팅과 더 나쁜 베팅만 있을 뿐이다. 잘못된 가능성을 예상하지 않고 투자하는 사람은 가장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피터 번스타인은 "Against the Gods(번역서: 리스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는 야생동물이 미래에 언제 뛰쳐나올지 알려주지 않는다. 전쟁, 경기침체, 주식 시장의 호황과 붕괴, 인종학살이 일어나곤 했지만, 항상 갑자기 찾아왔다... 이런 사건 자체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교한 정량적 위험 관리 도구로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지 않은,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는 개념을 컴퓨터에 프로그래밍할 수 있단 말인가?

미래에 대한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할 수는 없다. 그런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과거 데이터를 의사 결정에 차용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논리의 덪이 놓여 있다. 실생활의 과거 데이터는 확률 법칙이 요구하는 독립된 사건의 집합이 아니라, 연속된 사건들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는 경제와 자본 시장에 대해 수천 개의 개별적이고 무작위로 분산된 숫자가 아니라, 단 하나의 샘플만 보여준다.

비록 많은 경제 및 금융 변수들이 종형 곡선에 가까운 분포 안에 들어오지만, 완벽한 그림이리고는 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리와 닮았다고 해서 진리는 아니다. 극단적이고 불완전한 곳에 야생 동물이 숨어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칠면조의 환상에 담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워런 버핏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비를 예측하는 건 쳐주지 않아. 방주를 만든다면 쳐주겠지만.

예상만 하지 말고 행동에 옮기라는 말입니다.

늘~~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출처: SAFAL NIVESHAK, "The Turkey I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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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에 글 보면서 음.....피우스님이 배를 40년이나 타셨다고? 그럼 최소 60대는 되셨겠네.......라고 생각해다가 급 수정! ㅎㅎㅎ
칠면조의 착각을 저도 꽤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즐기는 것 같아요.
질량 높은 이런 글 참 좋아요.

결국은 한 번의 큰 사건으로 모든 보편적인 믿음이 부너진다는 것인데, 그 희박한 사건의 발생확률을 예측 할 수가 없다는 거네요.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높은 내공과 경륜에서 나오는 글에 매번 감탄합니다.

헐 어마어마한 내용이네요. 그러나 이 내용 또한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이들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얘기로만 들릴까봐 안타깝습니다. 단순 레퍼런스만하기에는 너무 주옥 같은 내용이네요. 풀보팅 리스팀합니다.

인간사 세옹지마라는 말이 딱이군요

역사를 단 하나의 샘플로 표현하는 것에 피터 벤스타인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ㅎ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 올려주신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투자에선 무언가를 맹신하지 말고 항상 리스크를 고려하겠습니다. 머신러닝에서도 항상 예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구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글이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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