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비트코인 마피아”가 탄생하기까지..

in #kr7 years ago (edited)

2013년 겨울 학기, 스탠퍼드 대학 관리소는 100인 실 기숙사에서 사용한 전기 중 10%가 한 방에서 사용된 것을 보곤 당혹스러웠습니다. 곧 직원들이 그 방을 찾아가 문을 두들기고 들어가 보니, 사우나보다 더 후끈했고, 각종 기계와 장비들이 윙윙 거리며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이 방에서 공동으로 비트코인 채굴 설비를 돌리고 있던 겁니다. 첫 번째 비트코인 열풍이 스탠퍼드를 휩쓸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스탠퍼드 비트코인 그룹이었던 매트 라이알스, 라이언 브레스로우, 팻 브릭스 및 존 배커스가 윙클보스 형제와 저녁을 마치고 찍은 사진>

비트코인 얼리어답터이자 벤처 투자자인 팀 드래퍼(Tim Draper)는 그 해 말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띤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로선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필기를 하는 대신 비트코인 매매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비트코인 열풍이 심하지 않긴 했지만, 이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현재로 돌아와 보면, 당시 신입생이거나 2학년이었던 학생들은 이제 암호화폐 관련 기업의 CEO가 되어 있습니다. 스탠퍼드 비트코인 마피아가 세워진 것입니다.

2013년 스탠퍼드 대학에 들이닥친 비트코인 열풍의 핵심에는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파트너 발라지 스리니비산(Balaji Srinivisan)과 비자이 판데(Vijay Pande)가 담당했던 CS 184 강의 때문이었습니다.

스리니비산은 이후 이메일과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조달한 1억 1,500만 달러의 자금으로 비트코인 스타트업 ‘언’을 세웠습니다. 2013년 초청 강사로 스리니비산의 첫 번째 강의는 실리콘 밸리의 주요 업체들 사용하는 스타트업의 이론과 실무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수업의 주제는 아니었지만, 비트코인에 대해서도 집고 넘어갔는데, 이 주제가 격주로 열리던 해커톤에서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해커톤을 통해 스탠퍼드 비트코인 그룹이 탄생했고, 스리니비산과 판데의 도움으로 비트코인을 연구 조사해 나갔습니다.

‘엔젤리스트’에서 분사한 ‘코인리스트’의 CEO 앤드 브롬버그(Andy Bromberg)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CS 184 수업에서는 목요일 오후 6시 누구나 공대 강의실에 참석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스탠퍼드 비트코인 그룹이 된 학생들은 오전 6시까지 밤새도록 함께 연구했습니다. 수업에서 함께한 프로젝트와 토론은 별개로 이뤄졌고, 비트코인이나 다른 미래지향적 프로젝트도 심도 있게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유대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늦은 밤이든, 이른 아침이든 말이죠."

'다르마 프로토콜'의 나다브 홀랜더(Nadav Hollander) 같은 다른 암호화폐 관련 기업 설립자들도 이 수업에 참여한 학생이었지만, 스탠퍼드 비트코인 그룹은 7명이 핵심이었습니다. 브롬버그 외에도, '블룸 앤 코그니토'의 설립자 존 배커스(John Backus)와 알랭 마이어(Alain Meier), '볼트'의 설립자 라이언 브레스로우(Ryan Breslow), 투자자 크리스 바버(Chris Barber), '코인베이스'와 '넷플릭스'를 거친 개발자 팻 브릭스(Pat Briggs), 구글의 개발자 매트 라이알스(Matt Rials)가 그들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비트코인 관련 프로젝트에서 스리니바산과 판데의 조언을 받았습니다. 비트코인의 추세와 거래량, 비트코인 프로토콜 분석, 심지어 그리스 같은 국가의 경제 위기에 비트코인이 미칠 수 있는 영향까지도 연구 조사했습니다.

또한 비트코인을 대중에서 알리는 측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사람들에게 비트코인 사용 방법과 중요성을 알렸습니다. 브레스로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많은 포크가 일어나고 있고, 많은 다양한 진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비트코인을 대중화시키는데 더 중점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이타적인 시기였죠."

브레스로우는 비트코인 대중화 노력의 일환으로 스탠퍼드에 비트코인을 기부하고자 했습니다. 학부생들에게 당시 50만 달러 상당(지금으로 보면 수백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나눠주었던 MIT 비트코인 클럽의 사례를 따라하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탠퍼드의 복잡한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혀 이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스탠퍼드 비트코인 그룹은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연구 결과를 공개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중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브레스로우에 따르면, "100명 중 99명이 비트코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이듬해가 되자, 바버는 스탠퍼드 비트코인 그룹 회원들과 힘을 합해 기숙사 방에서 창업을 모토로한 모임을 준비했고, 연구 그룹에서 배커스, 마이어 및 브레스로우를 뽑아 기존 제시 레임그루버와 대니얼 마렌과 함께 6인 용 기숙사 방에 창업 준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추후 레임그루버와 마렌은 배커스, 마이어와 함께 암호화폐 스타트업 '블룸'을 설립하고, 최초의 탈중앙화 신용평가 방식을 만드는데 뛰어들었습니다. 이렇게 스탠퍼드 캠퍼스 가장 자리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그리핀 304가 태어났습니다. 브롬버그 또한 옆방에 살았습니다. 바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스타트업을 시작할 운명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하고 싶은 녀석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거의 10명이 스탠퍼드를 중퇴한 채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10명 중 5명이 그리핀 304 출신이었습니다.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

2013년 가을 2학년이 시작될 무렵, 마렌은 이미 학교를 그만두고 (나중에 '선파워'에 인수되는) 태양광 발전 관련 스타트업 '디플라이'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마렌은 '블룸'의 고문이면서, 유휴 컴퓨터를 모아 상당한 연산력이 필요한 문제를 푸는데 주력하는 '하이퍼넷'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제시 레임그루버가 그리핀 304에서 노트북을 만지고 있음. 이 기숙사 방이 여러 기업가를 배출해 낸 곳임>

학년이 끝날 무렵, 바버만 남게 되었고, 나머지는 스타트업을 만들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핀 304의 분위기는 경쟁하면서도 항상 협력했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가장 많이 토론한 주제가 비트코인이었습니다. 레임그루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방에서 모니터로 비트코인 가격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비트코인이 많았으니까요. 약간 거래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냥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가격을 쳐다보면서 '얘들아, 지금 가격이 좀 높은 거 같은 데, 지금 팔아야겠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가격 변화를 보면서, '야, 지금은 사야할 때야. 그러면 돈 좀 만지게 될 껄.'이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비트코인 최고주의자였고, 당시 도지코인 같은 다른 코인도 나와 있었고, 이듬해 이더리움이 나왔습니다. 비트코인 말고는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레임그루버는 이더리움 최고주의자가 되었고, 이더리움 플랫폼으로 스타트업을 만들었으며, 상당량의 이더리움을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핀 304는 비트코인을 연구하고 관련 스타트업을 준비하면서 학교 수업을 듣지 못했지만, 어찌되었든 CS 수업은 빼먹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밤을 새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새벽 4시까지 덥스탭을 틀어놓았습니다.

레임그루버는 주로 트레일 믹스를 먹었는데, 아래층 식당에서 통째로 가져다 놓고 먹었습니다. 모두가 자연스런 장난꾸러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해가 지나면서 하나 둘씩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브레스로우는 마렌 다음으로 학교를 떠나, 비트코인 지갑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남은 기간 동안 그리핀 304에서는 떠나지 않았고, 이후에도 담요와 배낭을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는 봄 학기에 스탠퍼드에 있었는데, 수업은 하나도 듣지 않고, 하루 12시간을 코딩하면서, 스탠퍼드의 체육관과 식당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지금 회사 '볼트'는 양단간의 결제 회사입니다.

그 뒤를 레임그루버가 이었습니다. 레임그루버는 학교를 그만두고,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몇 곳의 비트코인 스타트업에서 일했습니다. 이후 레임그루버는 '알케미스트 액셀러레이터'에 참여했고, 영향력 있는 이들과 브랜드를 연결해 주는 데이터 분석 회사 '네오리치'를 설립했습니다.

레임그루버는 여전히 '네오리치'와 함께 일하지만, 최우선 순위는 '블룸'입니다. '블룸'은 2018년 1월 1일 7,000명의 개인 투자자로부터 4천만 달러 상당의 이더리움을 조달하는 ICO를 마쳤습니다.

브롬베르그가 다음으로 학교를 나와, 존 맥케인 대선 캠페인의 전 대변인 터커 바운즈(Tucker Bounds)와 함께 '사이드와이어'를 세웠습니다. '사이드와이어'는 독자들에게 정치 전문가의 얘기를 직접 들려줌으로써, 주류 매체를 거칠 때 생기는 노이즈를 없애주는 업체입니다.

하지만 '사이드와이어'는 목적하는 만큼의 위치에 오르지는 못했고, 2017년 중반에 문을 닫았습니다. 현재 브롬버그는 '엔젤리스트'에서 분사된 '코인리스트'의 CEO로 일하고 있습니다. '코인리스트'는 '파일코인'이 ICO로 2억 500만 달러를 조달하는데 일조한 업체입니다.

브롬버그 다음으로 마이어와 배커스가 학교를 나와 '코그니토'를 세웠습니다. '코그니토'는 '와이 콤비네이터'를 거쳐 자금 조달에 성공했으며, 신원 확인 및 사기 방지 업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코그니토'는 많은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와 협력하고 있으며, 현재 이 둘은 레임그루버와 함께 '블룸'의 창립팀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숙사에 마지막으로 남은 바버는 스타트업을 세우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레임그루버가 말한 것처럼 "스탠퍼드의 미니 벤처 캐피탈"이 되었습니다. 바버는 엔젤 투자자 매트 모차리(Matt Mochary)와 계약을 맺고, 자금을 스탠퍼드에 투자했으며, 모든 수익 중 10%를 가져갔습니다.

바버의 초기 투자 몇 건은 간단했습니다. 마이어와 배커스의 '코그니토', 레임그루버의 '네오리치' 그리고 브롬버그의 '사이드와이어'였으니까요. 바버는 졸업 후 '브레이크아웃 리스트'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소프트웨어 엔지지어를 업체와 연결해 주는 스타트업으로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해 말 이 그룹은 어느 정도 주목을 받게 되었고, 2014년 로이터 통신에 프로필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레임그루버와 배커스는 업계 거물 피터 티엘(Peter Thiel)이 주는 티엘 펠로우쉽과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기도 했습니다. 매년 20 ~ 25명이 티엘 펠로우로 선정되며, 어떤 조건이나 의무 없이 부상이 주어집니다. 레임그루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재 우리 모두는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거나, 세운 회사를 다른 곳에 팔았거나,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두 번씩은 훌륭한 휴양지에 모이곤 합니다. 마음이 열려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 있어도 서로 잘 돕고 있습니다. 자기 회사가 아니라 우리 그룹이 중심인 셈이죠. 회사에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 개인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영향력 있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티엘 펠로우였으며, 이더리움 설립자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 '어거'의 조이 크루그(Joey Krug), '아라곤'의 설립자 호르헤 이즈퀘르도(Jorge Izquierdo), 스테이트 채널 개발자 리암 혼(Liam Horne) 및 '젬스'의 설립자 오레일리 형제(Rory and Kieran O'Reilly) 등이 있습니다.

티엘 펠로우와 스탠퍼드 비트코인 마피아는 연관이 많습니다. 따라서 기술과 관련된 상당한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업스타트, 신행 암호화폐 포크들이 견인력을 얻고 있으며, 엄청난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레임그루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1년 전만에도 친구들은 소파에서 잤습니다. 많은 이들이 돈 때문에 암호화폐 연구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5백만 내지 2천만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암호화폐 시장은 경천동지할 곳입니다. 실리콘 밸리의 문화는 언제나 젊다고 해도, 암호화폐 시장은 그보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콘퍼런스에 가보아도, 거의 모든 이들이 30세 이하입니다."

"그리고 현재 수많은 젊은이들이 프로젝트 초기에 투자하고 자금을 지원하면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부터 프로젝트들을 시리즈 B, 시리즈 C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이유입니다. 수백만 달러짜리 거래가 저녁 식사 동안 악수 한 번으로 성사되곤 합니다."

지난해 12월 12일 비탈릭 부테린은 "현재 암호화폐 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은 단 0.5조 달러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었습니다."라고 트위터에 밝히기도 했습니다. 암호화폐 업스타트에 일찍부터 참여한 아주 젊은이들이 이제 장부상이긴 하지만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그렇게 창출한 자산으로 오래도록 살아남을 기업을 만들고,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출처: Forbes, "The Stanford Bitcoin M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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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것을요...

미국은 역시 앞서가는능력은 한수위네요

재미난 스토리 잘 읽고 갑니다 !!

똑똑한 사람들이 먼저 그 가치를 알아냈군요...

역시 괜히 기업가가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재미있네요
직접 번역하셨나요?
감사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막연히 스탠포드 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런 문화가 부럽네요.

우연과 필연이 모여 엄청난 결과를 낳았네요.
부러워! ㅎㅎ

성공하는 사람들에겐 신내림이 오듯 확신이 찾아오나봅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들을 덜컥 그만두고 꿈 꾸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정진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가격이 치솟아서 코인 광풍이 분 한국의 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르구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0년 전 비트코인이 나왔을 때 지갑만 만들어 본 기억이 떠올라 다시 또~!! 후회를 하는..ㅋㅋ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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