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스타크가 없으면 이야기가 안 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할 예정인 분은 관람 후에 글을 읽을 것을 권합니다.
이 장면을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 : 다음 영화 <아이언 맨>(2008)
1. 토니 스타크가 없으면 이야기가 안 돼?
로다주의 기념비적 캐릭터, '토니 스타크'를 보기 위한 나의 여정은 <어벤져스 4 : 엔드 게임>(2018)을 마지막으로 끝났지만 그에 대한 향수는 여전했다.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이하 스파이더맨) 역시 같은 생각이었을까. 이번 <스파이더 맨> 역시 '토니 스타크'에 대한 향수로 가득했다. 물론 이것이 어떤 추모의 형태로 마블의 거성을 쌓는데 큰 몫 한 영웅에 대한 찬가 수준에서 그쳤다면 좋겠지만, <스파이더맨>은 추모를 넘어 토니 스타크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러웠다.
나는 샘 레이미 감독,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2002)을 보고 자란 세대여서 그런지 최근 마블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톰 홀랜드에게는 아직까지 이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그 비중에 비해서 너무 역할이 제한된 게 아닌가 싶다. '아이언맨'이 이룬 업적, '과학이 신화와 어깨를 겨룰 수 있다'는 메시지와 이를 영상으로 구현한 <아이언맨>은 정말 혁신적이었고 마블 시리즈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지만 '스파이더맨까지 꼭 그런 경향을 따라야만 했을까?' 라는 물음표는 지울 수가 없다.
뉴욕에서는 그런대로 스파이더맨이 먹어(?)준다 *사진 : 다음 영화 <스파이더맨 2>(2004)
마블 영화는 어떤 설정을 설명할 때 꼭 허구의 영역까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애쓴다. 물론 대부분은 이치에 맞지 않지만 영화적 상상력(혹은 SF적 상상력)의 수준에서 용인한다하더라도 '스파이더맨 특유의 능력이 과연 세계적인 위협을 방어하는데 적합한가' 의문이 들게 한다.
실로 극중 피터 파커도 자인했듯 '그저 좋은 이웃'에 불과한 스파이더맨은 '뉴욕'에서나 국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데 적합한 것처럼 보인다. 건물들이 빽빽한 뉴욕 도심에서는 거미줄을 활용한 빠른 이동과 건물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전술이동이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한 공수의 방법도 무궁무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였을까. 이번 '스파이더맨'은 토니 스타크의 나노 슈트를 집에 두고 온다는 설정으로 스파이더맨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기는 한다만, 사실 그의 힘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결국 모든 것이 허상에 불과해서 다행이었지, 만약 '엘리멘털'들이 진짜 괴물이었다고 한다면 스파이더맨이 혼자 제 역할을 할 수나 있었을까? 심지어 위기의 시작과 끝도 결국 '토니 스타크의 유산'으로 모두 마무리 된다. 결국 까놓고보면 이 영화는 위협도 해결도 죽은 토니 스타크의 손으로 모든 게 이뤄진 셈이고,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망자의 손아귀 위에서 뛰어 논 셈 밖에는 되질 않는 모양새다. 이 같은 결말 마무리는 마치 수많은 드론들과 함께 이억만리 졸작의 세계로 영면해버린 <킹스맨 2>(2017)를 보는 것도 같다.
토니 스타크와의 결별을 선언한 <어벤져스4 : 엔드 게임> 이후 첫 작품임을 감안해도 정말이지, 이 정도의 의존성을 보인다면 '아이언맨' 없는 앞으로의 마블 영화 세계관이 제대로 굴러가기나 할 지 의문이 든다. 아니, '토니 스타크' 없이는 이야기가 안 되나?
그나마 미스테리오의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사진 : 다음 영화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2019)
2. 무너지는 현실의 경계와 삶의 목적
이 영화에서 그나마 주목할 부분이 있다면 '기술이 극도로 발달했을 때 진실과 허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되묻는다는 점이다.
'환상 제조기'라는 영화 본연의 특성이 그래도 우리의 현실과 분리되고 있는 것은 스크린과 영사기라는 영화의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과 디스플레이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영화의 영역은 스크린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이제 PC 모니터 화면에서도 재생되고,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소형 단말기에서도 재생된다.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3D, 4D 화면에다 심지어 VR 기기를 이용한 가상현실 체험도 낯선 개념이 아니게 됐다.
그런데 <스파이더맨>에서 묘사된 것처럼 홀로그램과 특수 압력 장치까지 동원돼 아예 말초 감각까지 조작된 영상을 체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파이더맨>이 던지는 '가상 세뇌'라는 질문은 꽤 그럴싸하고 위협적이다. 물론 가상 현실을 마주한 인간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은 앞선 영화들에서 묘사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매트릭스>(1999)가 있고 <에반게리온>(1995) 시리즈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앞선 영화가 아직은 요원한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면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최근 작품들의 질문들은 잘 융합되면 지금도 가능할지도 모를, 근미래의 기술을 소재로 가상현실과 마주한 인간을 주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넷플릭스의 <블랙미러>시리즈를 들여다봐도 볼 수 있듯, 최근 콘텐츠 산업의 관심은 인간의 오감을 통제하는 '완벽한 콘텐츠'의 등장에 쏠려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 '완벽한 콘텐츠'는 단순히 현실 감각을 잊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부작용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사상과 생각 자체를 조작할 수 있다는 가장 위험한 수준의 부작용도 내포한다.
이전까지 정부의 세뇌수단은 통상적인 형태의 미디어였다. TV방송과 신문을 이용한 것이 주류였지만 그것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물리적 한계' 때문에 우리의 현실과 분리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오감이 완벽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사악한 술책이 미화되어 우리의 의식 속에 주입된다면 어떨까? 영화 <큐브>(1997)에서 데이빗이 말했듯 우리도 광기어린 사회의 피조물의 한 조각이 되어 의도치않게 헌신하게 되지는 않을까?
<스파이더 맨>은 MJ의 입을 빌려 끊임없이 정부를 비롯한 '빅브라더'에 대한 경계를 놓지 않고 미스테리오를 통해 '가상세뇌'의 악용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은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가운데 이 작품이 '보이는 것을 믿지 마라'는 대승적인 메시지를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녹여 자연스럽게 협주를 만들어낸 것은 제법 근사하다.
'사랑'이라는, 어떤 삶의 이유는, 그것의 겉모습에 혹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진실의 민낯을 밝히며 다가온다. 삶의 목적에 집중하면 허상도 분쇄할 수 있고, 둘러대느라 바라보지 못했던 상대의 속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것. 다소 진부한 결론이긴 해도 밑도 끝도 없이 대화해의 장으로 나아가 주인공끼리 키스를 퍼부어대는 것도 아니고, 까먹을만 하면 되새겨야할 만한 내용이기도 하니 썩 괜찮지 않은가. 그래서 전체적인 설정이 영화를 좀 먹기는 하지만 그런 점 하나 만큼은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에서 건질 수 있는 마지막 보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