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반추反芻 (13)

in #kr7 years ago



반추反芻 (13) - 문석의 죽음과 불행의 시작

다행히 병원에 도착하기 전 문희의 어머니는 의식이 돌아왔다. 눈을 뜨며 자신의 얼굴에 붙어있는 알 수 없는 물체를 손으로 만지자 구급요원이 잠깐 호흡기를 떼어 주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문희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옆 자리에 누워 있는 아들 문석을 바라보았다. 문석은 아직 의식이 없었다.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던 구급요원이 문석을 돌아보며 목덜미를 만져 보았다. 순간 구급요원은 깜짝 놀라는 기색을 하며 일어나더니 양 손을 문석의 가슴에 포개고 누르며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문석아!”
구급요원의 행동에 놀란 문희의 어머니가 자리에서 힘겹게 머리를 들고 문석을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환자의 호흡이 멈췄어요. 어머니 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구급요원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가운을 붙잡고 매달리고 있는 어머니를 자제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괜찮을 거예요.”
태식은 문희 어머니의 손을 때내어 붙잡고 괜찮을 거라고 위로 했지만 자신 또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문석의 모습을 보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떻습니까?”
태식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구급요원에게 물었다. 그러나 구급요원은 대꾸하지 않고 운전석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가!”
집에서 출발한 시간이 채 10분도 되지 않았음에도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사거리를 앞두고 차가 정체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구급차는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5분쯤 지나자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구급요원의 등에 어느새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차가 멈추어 서고 이내 뒷문이 열리더니 의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응급실에서 뛰어 나왔다.
우선 구급요원은 문석을 먼저 실어 내렸다.
“호흡이 거의 잡히지 않아요. 빨리빨리!”
의사들은 황급히 문석을 들것에 들고 응급실로 뛰어갔고 구급요원들은 문희의 어머니를 뒤늦게 응급실로 옮겼다.
태식은 응급실로 함께 뛰어 들어갔다.
의사는 문희의 어머니를 고압산소실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빨리 'CPR(심폐소생술)' 실시해!”
문석을 내려놓자마자 의사가 소리치고 이내 두 세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문석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태식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그들의 뒤에 서서 지켜 볼 뿐이었다.
간호사가 호흡기로 보이는 물건을 들어 의사들에게 내밀었다.
“벤틸레이션(ventilation, 환기-공기주입) 필요 없어 보면 몰라”
의사는 매우 신경질적으로 간호사에게 말했고 지켜보던 의사 한 명이 다른 의사를 보며 소리쳤다.
“안되겠어! ‘디프브릴레이션’합시다.”
이내 모니터가 달린 기계의 전원이 켜지고 양 손으로 전극을 붙들고 다시 소리쳤다.
"200줄 부터..."
문석의 가슴에 대고 있던 전극에서 ‘펑’소리가 나자 문석의 가슴이 울컥 솟아올랐다. 그러나 심전도 상황을 알려주는 계기판에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안되겠어! 300줄로…"
다시 전극을 문석의 가슴에 대고 반복했으나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했다. 전극을 떼어 놓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의사 한명이 양 손을 모아 문석의 가슴대고 누르기를 반복했다.
“형, 안 돼! 죽으면 안 돼!”
뒤에서 지켜보던 태식은 울부짖었다.
“안 돌아오는데…"에피(에피네프린)1mg 3분마다 주세요..." 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수액 줄에 약물을 투입했다.
“360줄…”
다시 ‘펑’하는 소리가 들리고 문석의 가슴은 심하게 울컥거리며 솟아올랐고 그것은 서 너 번 계속 반복 되었다.
“……”
얼마쯤 지나자 갑자기 의사들이 조용해 졌다.
태식은 문석을 둘러 싼 의사들 쪽으로 다가가 의사의 팔을 붙들었다.
“안돼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주세요.”
“……”
그러나 의사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태식은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형! 문석이 형!”
응급실에 있던 많은 환자들이 웅성거렸다.
“죄송합니다. 이미…”
주저앉아 있는 태식을 보며 의사 한 명이 조용히 말을 하더니 돌아 섰다.
간호사들의 의해 문석의 얼굴은 하얀 가운으로 덮여지고 있었다. 태식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문희의 모습이 순간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문석의 시신은 어디론가 옮겨져 가고 잠시 후, 일어설 줄 모르고 멍하니 응급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태식을 간호사가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고 따라오라는 듯 태식을 잡아끌었다. 간호사에 이끌려 태식이 간 곳은 문희 어머니가 고압산소 치료를 받고 누워있는 병실이었다.
문희 어머니는 태식을 보자마자 미간을 심하게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키더니 문석의 소식을 물었다.
“우리 문석이… 우리 문석이는?”
“어머니…”
태식은 문희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손을 붙들고 울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태식의 울음에서 문석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문희 어머니는 태식의 팔을 붙들고 울부짖었다.
“문석아! 문석아! 아이고 이놈아…”
태식은 계속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문희의 어머니를 진정시켜야 했다. 이내 태식은 소매로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고 문희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거의 제 정신이 아닌 듯 문희 어머니의 눈엔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울음소리조차 없이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태식은 우선 문희 어머니를 자리에 눕혔다.
문희 어머니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너무 눈물을 쏟아내어 생명에 지장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그러나 문희 어머니는 간헐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 마실 뿐 누운 채로 태식의 팔을 움켜쥔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진정제를 맞고 한참 지난 후에야 문희 어머니는 잠이 들었다.
태식은 시계를 보았다. 벌써 시계바늘은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희를 데리러 가야 했다. 문희의 집 앞에 차를 두고 왔기에 태식은 일단 문희의 집으로 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H병원 앞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에 올라탄 태식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어디로 가느냐는 기사의 물음이 몇 번 반복되고서야 입을 열었다.
“화안동 백악산 아랫동네요.”
택시는 거침없이 내달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퍼 골목 앞에 택시가 멈추어 섰다.
문희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방문은 열려진 채 찬바람에 덜컹거리고 있었고 방문으로 들어 간 바람이 좁은 부엌문으로 빠져 나오며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직 문희가 돌아오려면 30분 정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방문과 부엌문을 닫은 태식은 잠시 차를 끌고 S전자 앞으로 갈까 생각하다 혹 길이 엇갈리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대로 마루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태…식…띠, 우리…무니… 마니…사랑해조.’
마루에 홀로 걸터앉은 태식의 귓가에 문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바로 이 자리, 태식이 처음 인사 가던 날 문석이 형이 힘겹게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난 후 일그러진 표정으로 겨우 뱉어내던 그 말이 태식의 가슴을 짓눌러 댔다.
“형… 문석이 형…”
태식은 마루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2월 초순, 얼마 있으면 설날이었다. 태식은 그날 문석이 형의 전동 휠체어를 차에 싣고 와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이었다. 겨울바람이 뒤편 백악산에서 몰려와 윙윙 소리를 내며 전동휠체어 소리처럼 태식의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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