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이야기] 당신이 강사로 성공하지 못하는 다섯 번째 이유
이유 #5 이것저것 욕심내기
강의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욕심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는 잘 만든 강의 자료를 보면 욕심이 난다. 파워포인트로 깔끔하고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정리한 강의 자료를 보면 정말 욕심이 난다.
사실 남이 만든 강의 자료는 참고 자료 이상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설령 그 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강의를 한다고 해도 자료의 원래 주인만큼 강의를 잘 할 수 없다. 강의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강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말을 정리하며 중요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과정 없이 멋진 강의 자료만 달랑 가져온다고 해서 멋지게 강의를 해낼 수는 없는 이유가 다 있다.
그런데도 잘 만든 강의 자료는 항상 욕심이 난다.
언젠가 경기도 소재 모 대학에서 여름방학 기간 동안 지역 내 초중고 교사 연수 과정에서 강의를 했던 적 있다.
강의를 듣는 분들이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게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를 갖게 했다.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 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소위 “같은 선수끼리...”라는 그런 기분 말이다.
강의는 하루 종일 나 혼자 담당해야 했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강의용 자료를 만들고 활용하는 부분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동안 짬짬이 모아 두었던 “욕심나는 강의 자료”들을 참고 자료로 소개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실습을 겸해서 강의가 이루어졌다.
재미있는 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들도 수업을 듣는 입장이 되니 똑같아지더라는 것.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옆 사람과 수군거리기도 하며, 쉬는 시간 끝나고 수업 시작하고도 한참이 지나서 슬그머니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천태만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내 생각만큼 까다롭지 않았다. 더 수월하기까지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의 준비하며 스트레스 받았던 게 억울할 정도로 말이다.
그 강의가 오래도록 기억나는 건 강의를 마치고 난 뒤 그들이 보인 반응 때문이다. 교사들 명단과 이메일 주소가 적힌 종이를 한 장 내게 건네며 그들은 이렇게 말을 했다. “강사님, 수업 중에 보여주신 참고 자료를 메일로 보내주세요. 꼭 좀 보내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담당 과목과 관계없이 모두들 내가 수업 중에 보여주었던 참고 자료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웃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 “그 자료들은 이 수업과 크게 관계도 없고, 별로 써먹을 데도 없으실 텐데요? 그 자료 뒤져보실 시간에 차라리 직접 자료를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자료를 보내주지 않겠다고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들에게 (몇 개는 빼고) 자료를 보내주었다. 그들이 과연 그 자료를 얼마나 잘 써먹었을지는 도통 모르겠다.
그때 알았다.
강의 자료에 대한 욕심은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초보 강사 시절에는 강의 자료를 많이 보아야 하고 많이 만들어 보아야 한다. 그렇게 몇 년 경험이 쌓이면 사실 다른 자료 없이도 자신의 강의 분야에 대한 강의 자료를 만드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자신의 방법과 너무 다르게 만들어진 자료를 참고하는 건 오히려 작업만 더딜 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다른 강사들의 강의 자료는 욕심이 난다.
그뿐만 아니다.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재미있는 사진이나 기사, 에피소드를 있는 대로 모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긁어모은 자료들은 여전히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 어느 폴더 안에서 고스란히 용량만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여 년 전, 십 년 가까이 강의를 하며 모아둔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꽤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외장 하드디스크를 샀다. 그 하드디스크는 오로지 내가 만들거나 어디선가 구한 자료들만 꽉꽉 채워서 보관하는 용도였다.
내가 직접 만든 자료들은 강의를 위해 계속 써먹어야 하므로 컴퓨터 내장 하드디스크에도 담겨 있었고, 자료 백업용 하드에만 들어 있던 자료들은 대부분 어디선가 구한 자료들이었다. 그 하드디스크를 보고 있으면 안 먹어도 뿌듯하고 배부른 그런 기분이었다.
그 하드디스크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느냐면, 별도의 가방을 하나 장만해서 들고 다닐 정도였다. 혹시 충격을 받거나 해서 자료가 날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스펀지가 꽉 들어찬 충격방지용 가방에 넣어서 갖고 다닐 정도로 소중하게 보관을 했었다.
그날도 그 안전한 가방에 하드디스크를 넣어서 강의를 하러 갔었다. 강의가 끝난 뒤 여직원이 이전 강의에 대한 강사료를 입금했으니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때야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거나 컴퓨터로 인터넷 뱅킹을 하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입금내역 확인을 하려면 은행에 가서 통장 정리를 해봐야만 했었다.
가까운 은행에 가서 통장을 찾아보니 그 안전한 가방 안에 넣어 두었던 생각이 났다. 은행 창구에서 가방을 열고 통장을 꺼내 창구 여직원에게 건넸다. 통장 정리가 끝나면 도로 가방에 넣어야 하니 가방은 열어둔 상태였는데, 엄마를 따라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꼬마 아이의 손에 그 가방끈이 걸렸던 모양이다. 가방이 툭 떨어지며 그 안에 들어 있던 외장하드가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팽개쳐졌다. 은행은 왜 그리 반짝이는 인조대리석을 깔아 둔 건지...
큰소리를 내며 떨어진 외장하드는 케이스가 분리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손쓸 틈도 없이 박살 난 외장하드는 그렇게 십여 년 동안 모아 두었던 내 소중한 자료들을 되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며칠 동안은 정말 엄청난 상실감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난다. 당장 필요한 자료들은 컴퓨터에 들어 있지만 정말 중요한 자료들을 모두 날렸으니 그 기분을 어떻게 말로 하겠는가?
당장 강의를 못할 것 같은 불안감, 왜 하필 그 가방에 통장을 넣어 두었던가 하는 자책감, 그 꼬마 아이가 뛰어다니도록 방치한 아이엄마와 은행 직원들에 대한 원망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외장하드가 그렇게 박살이 나버렸는데도 막상 강의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 엉망이 되어 버릴 줄 알았던 강의는 하던 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고, 새로 강의를 진행하는 상황에서도 필요한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컴퓨터 내장 하드디스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없는 자료를 만드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그 외장하드는 비싼 돈만 잡아먹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별 필요도 없었던 셈이다.
그때 내린 결론.
언젠가 써먹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모아둔 자료는 언제까지고 써먹을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할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그리고 없는 자료를 만드는 건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다는 것.
그런 데 욕심낼 시간에 지금 하고 있는 강의에 집중할 것.
남의 손에 떡이 커 보인다고, 다른 사람이 만든 멋진 자료는 탐나지만, 그 자료는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거다.
특히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더더욱 욕심내지 말 것. 그야말로 시간과 돈과 자리만 낭비하는 셈이니 말이다.
지금 보니 내 컴퓨터 속 강의자료 폴더에는 어느새 별 희한한 자료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필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이것저것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날 발견한다.
공감합니다 버려야 좋은 강의가 나오더라고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강의 들어가기 직전에는 절대 배가 부르게 먹지 않습니다.
물론 강의 중에 트림이 나오거나 냄새가 풍기는 것도 신경쓰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배가 적당히 가벼워야 말도 편하게 나오더라고요.
배도, 머리도, 자료도... 적당히 가벼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동의합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