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영구평화론과 세계시민 사상의 모순

in #kr5 years ago (edited)

세계시민화의 모델인 유럽연합 (EU)의 분열

유럽연합의 설립 뿌리는 잔혹했던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 반성의 산물이다. 그들은 근대 국가의 산물, 국가가 최고의 이성이라는 헤겔의 사상이 과잉을 예방하려는 방편으로 보편적 유럽연합 모델을 구상해왔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국제관계에 기초한 전 세계적 평화를 위해 공법 이론적 체계를 세우고자 하였다. 칸트는 평화상태가 수립되지 않은 자연상태로부터 평화상태로의 이행, 평화상태를 영원히 보증하는 원리를 밝혔다. 칸트가 제시하는 정언명령의 판단에 따르면, 전쟁은 어떨 때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이다. 그래서 인간은 전쟁상태를 지양하고, ‘영원한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도덕적 의무 역시 부여 받게 된다. 내가 평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함은 극히 자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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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선의 의지-도덕법칙은 ‘자유’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 자유를 통해 ‘도덕’이라는 인간의 실천적 행위가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세계에 속해 있으며, 그의 행위 역시 자연의 세계 내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도덕적 행위를 가능케 하는 ‘자유로운 의지’를 갖고 있음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의 영역은 자연적인 세계 내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 영역 밖의, ‘초월적인’ 세계에 속한다. 자연의 세계와 구분되는 이 세계를, 우리는 ‘도덕의 세계’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칸트의 실천이성의 관점에서 평화란 인간이 의지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당위이자 의무이다. 역으로, 전쟁이란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양해야 하는 상태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맥락에 서 ‘인간이 영구평화를 추구하는 것’의 정당성과 그 가치가 확인될 수 있다.

세계시민 사상은 이런 칸트의 도덕의 정언명령을 실천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됐다. 국가의 경계를 허물어 인간이 의지적으로 영구평화를 추구하는 가치이다. 세계시민 사상 모델을 기반으로 한 국제연합(UN)보다 더 실천적인 모델이 EU이다. EU의 설립 과정을 본다면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서 출발했고, 1967년 유럽공동체(EC)로 개편하며, 이후 여러 유럽동맹이 참여로 1993년 유럽연합(EU)이 발족했다. 그 출발을 보면 경제의 통합 과정과 같다. 이후 EU를 운영하기 위한 정치체계와 법이 발효됐다. EU의 현재 문제는 통합화폐인 EURO화폐 사용에 따른 경제적 불균형과 이민자 문제에 따른 EU 탈퇴 문제이다.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브렉시트와 주요 국가의 탈퇴라는 EU 붕괴에 직면 중이다. 유럽시민이 아닌 사람들의 왕래는 솅겐조약에 따른 금지로 이민자 문제는 배타적 분위기를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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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 기반의 경제연합은 자본주의의 세계화이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니다. 물론, 유럽 연합은 기본적으로 자유 왕래를 보장하는 원칙을 갖고 있다. 솅겐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의 국가라고 해도 EU에만 가입했다면 자유롭게 EU 내 다른 국가를 왕래할 권리가 있다. 세계화를 외치는 자유민주주의는 실질적 인간의 이동은 제약했지만, 무형의 자본 이동은 자유롭게 허용한다. 이에 따라 자유의 주체는 세계시민이 아닌 기업일 것이다. EU의 불완전한 상태는 경제연합에서 시작했으며, 유로화라는 화폐 통합의 우선 절차 때문이다. Ross Douthat가 지적한 세계시민 사상가는 이런 세계자본주의자들이다. 물론 본인을 포함할 수도 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Ross는 보수주의자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보수주의자는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공화당 지지하면서 기업과 월가의 자본 확장에 동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교조주의적 진보주의자를 비판한다면 응당 이해한다. 그러나 단순히 세계시민 사상을 조롱하는 것이라면 공감하지 못하겠다.

세계 자본주의 신화 - 자본은 국경이 없다

실물 무역은 보호무역이 기본이다. 물론 지역별, 국가간 경제자유협정으로 무관세로 실물 무역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바로 자본이다. 경제자유협정은 있으나 시민자유협정은 왜 없을까? 물론 EU 내 시민은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으나, EU 시민이 아니면 비자승인이 필요하다. 이민자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위한 이민자는 국가의 통제를 받아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서구식 국가 경제 모델은 임금노동과 전통적 가족제도를 기반으로 하며, 일탈 된 소수를 다시 원래의 생산 대오로 되돌리기 위해 복지제도를 도입했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자본가와 국가의 관계였다면, 신자유주의는 가족 단위에서 미분화하여 개인을 기업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노동은 국가공동체의 범주에 있어야 하고, 글로벌 임금노동은 글로벌 기업의 범주에 제약받아야 한다. 내가 글로벌 기업에 종사하더라도 비자 없이 자유롭게 국가 간 이동이 불가하다. 국가를 넘는 이민자는 임금노동과 전통적 가족제도의 신화를 해체하므로 세계자본주의자는 철저히 이들을 보호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막으려 한다. 저임금노동자, 구걸, 앵벌이, 불법체류 등 생산에서 배제된 빈자들의 불안정한 생존전략은 ‘비공식 경제’의 기업가주의가 아니라, ‘사회적인 부’를 분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분배생계’의 시스템이다. 임금노동이나 동정에 호소하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나의 몫’을 달라고 요구하는 다양한 행위들이 진정한 세계시민사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나의 몫을 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는 세계자본주의자 처지에서 봤을 때 오이코노미아를 내면화하는 기업가주의를 배반하는 신자유주의 적이자 방해물이다.

정치적 몫이 없는 자가 자신의 몫을 요구할 때 세계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개인의 탓을 한다거나, 인종주의적 잣대를 들이밀거나, 경제적 차이를 내세운다. 우리는 좌표를 옮겨야 한다. 칸트의 세계보편 사상은 인간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것처럼, 자본주의적 자유주의가 아닌, 인간의 사상과 물리적 이동이 가능한 자유를 내세워야 한다. 그럴 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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