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갑작스럽다, 경관 때문이다, 날씨 때문이다. 기억 때문이다...
우리가 날씨 얘기를 쉽게 꺼내고 주고받는 것은
날이 좋으면 좋은데로
날이 미우면 미운데로
날이 요상하면, 요상한데로 저마다
터에 시선을 두게 하기 때문이다.
터와 날씨는 그러면서 나무를 키우기도
꽃과 강아지를 키우기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키우기도 한다.
그렇게 날씨와 더불어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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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이 더해지고 녹색이 변화하며
터에는 이야기가 쌓이고
쌓인 것이 날씨와 뒤섞이며
자연이 되고 정원이 된다.
풍경은 그 사이 툭 뛰쳐 나오곤 한다.
우리 삶터의 모두는 그렇게 저마다의 지역성을 가지게 된다.
개성을 가지는 것에는 그렇게 날씨의 영향이 적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잊곤 한다.
쌓인 이야기는 소위 특이점을 지나면
기하급수적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쌓이게 된다.
경관은 이제 풍경을 쏟아내는 지경에 이른다.
날씨는 경관을 '쏘삭이며' 자꾸 자꾸 풍경을 쏟아내게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그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첫걸음인 사람에게마저 어필하는 풍경도 많아
그렇게 둘레길이 유행이고, 풍경유람이 선풍인 것이다.
꽃제비 자리 비운 터엔
하얀 두루미 몇이 논밭을 누비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저마다의 이야기를 쓰며
풍경을 즐기는 사이,
세상은 그렇게 또 변해갈 것이다.
날씨와 터는 풍경을 그려내며 그렇게 또 새로운 변화를 이끌 것이다.
그리고 또
새로운 세대를,
새로운 날씨를
준비할 것이다.
풍경을 두고, 이야기를 두고
날씨를 두고 돌아서며
언제나 그렇게 변해가야 할 길.
자연이 경관이 되고, 경관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이야기로 남으며
기억된 날씨는 새로운 터를 꿈꾸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