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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프레데릭 바스티아 연재(6)] 교환 VS 고립 - 교환의 성질
저는 경제학에 식견은 없지만 재밌게 읽고 갑니다. 자연과 인간의 연결이 자본을 통해 이루어지는군요. 개인적으로 인간이 도구나 기술을 통해 어떻게 자연과 관계를 맺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꾸 이런 부문에 꽂히네요.) 다음 편도 기대가 되네요. ^^
저는 경제학에 식견은 없지만 재밌게 읽고 갑니다. 자연과 인간의 연결이 자본을 통해 이루어지는군요. 개인적으로 인간이 도구나 기술을 통해 어떻게 자연과 관계를 맺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꾸 이런 부문에 꽂히네요.) 다음 편도 기대가 되네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시적인 수준에서는 범선의 돛이 제일 대표적인 예시가 될 것입니다. 바람의 원리와 돛이라는 자본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작동하는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면 할 수록 사람은 노를 젓는 노력 없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하겠죠..
현대에는 과학이 엄청 발전해 양자세계부터 먼 우주의 사안까지 예측을 하고,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습니까. 또한 물질이 냉각되는 원리를 알아내서 냉장고도 만들고요.
처음에는 단지 자연이 주는 것을 받아내고, 그 다음엔 자연이 일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자연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원자 단위의 자연까지 일하게 만들고 있죠.
소위 친환경 태양에너지 발전도 실은 막대한 자본 축적 없이는 가동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자본(도구와 재료, 지혜와 기술 그리고 훌륭한 품성 에 더불어 및 작업 수행 동안 먹을 여분의 식량의 축적) 은 / 우리로 하여금 신의 무상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을 구석구석 끝까지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해줍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범선은 참 재미있는 예시입니다. 대학교에서 제일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에 나온 소재거든요. 오스만과 베네치아를 피해야 했던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대서양'과 타협하기 위해 다급히 끌어들였던 존재가 '바람'을 길들일 수 있는 범선이었죠. '갤리'와 동맹한 항해사들은 대서양에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동맹'이라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극단적으로 기술에 더 큰 '행위력'을 부여하는 견해도 있죠. 예를 들면 노동시간을 측정하는 '지문인식 시스템'은 사업자에겐 편리하겠지만 고용된 사람에겐 고대 노예를 관리하던 상인과도 같은 역할을 할겁니다.
제가 너무 삼천포로 빠졌는지 모르겠네요. ^3^ 어떤 내용이 나올지 예상은 할 수 없지만 제 식견을 넓혀줄 좋은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구독하겠습니다! 아는 것이 적지만 읽다가 질문이나 소감 있으면 댓글로 '사족' 달아보겠습니다.노동시간 측정 시스템의 경우는 역으로 노동자가 계약상에 합의한 임금에 비해 과잉 노동을 강요받고, 보상은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경우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 고용자는 계약의 내용대로 값을 지불하라" 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예관계란 결국 노력을 쏟는 사람과 만족을 가져가는 사람이 별개로 완전히 분리된 것을 뜻하니... 말씀하신 '노동자는 노예부림 당하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하는 걱정은.. 그 노동자가 태업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딱히 마음에 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다른 진영의 견해를 보충해주셨군요. 동일한 기술에 대해 사람들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런 다양성을 분석해보는 것도 재미있죠. 또한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기술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저로서는 불가지론의 영역이라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쪽 해석이든 존중하고 가급적이면 주관은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초기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말장난을 좀 하자면 "어차피 문제가 안 생길꺼야" 했다가 "어차피" 문제가 생겨버렸다면 대응해야하니까요. 반대로 문제가 "어차피" 생길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피해야 하구요.
원자폭탄 무서워서 핵물리학과를 통째로 폐지할 수는 없는 것이고 바다이야기 무서워서 블락체인 기술을 일체 폐기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그것들을 방치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기술을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제 포지션입니다. 혹여 제가 관련분야에 몸을 담게 되면 전략이 될테구요.
노예제도 이야기는 교환의 자연적 한계와 이어져 더 나가서 '서비스 의 값어치' 이야기를 할때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담론의 힌트를 드리자면 "교환이 인간의 자연상태라면 , 최소한 인간 종 전체는 교환 그 자체에서는 피해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 자기가 실수를 했거나 남이 억압 폭력 공격해서 교환이 아닌 행위를 한게 아닌 이상" ... 이 결론을 가지고.... 일상의 경험들이나 세상의 의견에 대입하면서 오해와 논란 혹은 난제를 풀어가는 것이
서비스의 값어치 이론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군요. 해당 부분도 연재되면 재미있게 읽어보겠습니다.
물론 유명한 블리자드 실력 게임 "하스스톤"의 프로 경기에서 나온 명언 "아는 만큼 보인다" 는 것 처럼... 이런 것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덤비거나 하면...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겠죠. // 반대로 너무 안 덤비면 고통받으며 가난을 못 면하거나요.
아무튼 이런 관계 맺기가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