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두 편의 흑백 영화를 본 하루
최근 어느 하루 우연히 흑백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았다. 하나는 길이가 2시간을 넘었고, 다른 하나는 1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나는 약 1년 동안 일어나는 일을 느슨히 다뤘고, 다른 하나는 시간 배경이 하루를 넘기지 않아 빼곡했다. 무엇보다 하나는 프레임 후면에 배치되는 배경이 깊은 심도를 이뤄 흑백임에도 생생했고, 다른 하나는 인물 뒤에 벽이 세워져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기분이었다. 전자의 심도는 생생한 것보다도 전경과 후경의 대비로 만들어지는 의미 작용이 인상적이었다. 여러모로 대조되는 두 영화였다.
색채 영화를 찍는 이유는 단지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해서가 아니다. 실제 모습을 담아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만약 그게 중요하지 않은 영화라면 색채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색채를 사용하면 역설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게 영화예술을 알려주신 이 모 교수님은 가급적 색채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낫고 도입하더라도 중립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색채가 유의미한 미장센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그건 색채가 상징성을 가질 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흑백이 유의미한 미장센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첫째, 영화 전체에서 색채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색채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와 둘째, 흑백 자체가 어떤 상징을 가질 때일 것이다.
두 편의 흑백 영화 중 전자(첫 번째 문단에서 언급한 순서 기준)는 첫째이고, 후자는 둘째라고 느꼈다. 그런데 전자가 흑백을 선택한 이유에는 충분히 공감했으나, 후자의 상징성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전자 영화가 훨씬 좋았는데, 그 차이에서 온 차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전자 영화는 정말 너무 좋아서 조만간 다시 보고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