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강의(3)]넘버2를 무시하지 마라!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7 years ago


1. 형만 한 아우도 가끔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천재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이 있다.

특히 요절한 천재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삼국지의 수많은 캐릭터 중 요절한 천재의 대표주자는 '손책'이다.

손책은 손권의 형이다.

소설 삼국연의와 정사 삼국지에 묘사된 손책은 완벽한 군인이다.

그는 대범하고 총명하다.

성격은 호탕하고, 잘 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

돈/권력/외모를 모두 갖춘 남자였기 때문이었을까?

당시 강동 최고의 미녀였던 '대교'와 혼인하게 되었다.

주유와 결혼했던 '소교'와 '대교'는 교씨 자매라고 불렸는데, 당시 강동 최고의 미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물론 알 길은 없다.


굳이 따진다면, 그 많은 걸 가졌던 주유보다 1~2단계는 더 윗급일 정도로 손책은 많은 걸 가졌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기본 특성은 오만함이다.

뭐..생각해보면 오만함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가진 게 많은 상황에서 남에게 굽실굽실 거릴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사회구조나 계급구조를 감안하면, 가진 사람들의 오만함은 기본 옵션이었을 가능성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현대에도 그 오만함은 그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

돈 좀 있다고 신분제 사회에서나 가능한 행동들을 하는 재벌들을 보고 있으면, 손책의 오만함은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아쉽게도 그런 손책은 26살에 삶을 마감한다.

나는 손책이 아주 총명한 사람이었다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후계자 선정에 남다른 혜안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손책이 죽은 후, 손권 말고도 후계자에 오를 동생이 있었다.

심지어 손책과 아주 비슷한 성향의 동생도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었다.

하지만 손책의 결정은 손권이었다.

결과적으로 손권은 동오를 마치 우량주처럼 성장시켰다.

"동오의 많은 인재들의 역할이 지대했고, 손권은 부수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싶다면, 조조도 같은 이유로 패권을 가졌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삼국지강의를 저술한 이중텐과 조조를 보는 입장이 유사하기 때문에 조조의 위대함에 동의한다.

그러나 조조는 손권보다 훨씬 많은 인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당시 의사결정구조는 지금처럼 민주적이었을 리도 없지 않은가?

군주의 결정이 법보다 위에 있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의 성장에 군주의 역할은 크다고 봐야 한다.

동오의 수많은 인재의 존재를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손권의 인재관리능력이 없었다면 동오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었을까?

나는 손책이 이런 손권의 성향과 능력을 잘 간파했기 때문에 후계자로 낙점했던 거라 생각한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손책이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판세가 달라질 수 있었을 거라 예상하곤 한다.

나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손책은 항우처럼 강하지만, 항우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손책이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조조였다.

조조는 강함으로 손책을 압도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졌다. 

거기에 유연함으로 손책을 농락시킬 수 있는 지략도 가졌다.

주유와 노숙은 훌륭한 지략가지만, 곽가/순욱/정욱/가후/순유 등 수많은 지략가를 동시다발적으로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손책의 동오는 손권의 동오보다 더 빨리 삼국지에서 퇴장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2.유표는 무능했을까?


<삼국지강의>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난 생각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유표에 대한 입장도 소설 삼국연의와 매우 다르다.

삼국연의에서의 유표는 거의 까메오 역할에 가깝다.

물론 그보다는 많은 분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삼국연의에서의 유표는 무능하고 병약하며 금방 죽기까지 한다.

이건 마치 유명 드라마 작가가 등장인물 죽이는 방식과 비슷해보인다.

유표에 대해서는 그 흔한 전사조차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 서글플 정도다.



유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가 지배했던 형주를 통해 그의 능력을 분석해봐야 한다.

그는 군사적으로 자신이 손책과 조조처럼 유능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호족/군벌을 이용해 형주지역을 평정했다.

"그럼 지방호족의 꼭두각시 아니야?"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형주를 어떻게 다스렸는가를 살펴보면, 꼭두각시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형주를 교육지대로 변모시켰다.

삼국연의와 삼국지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형주에는 인재가 넘쳐나고..."

왜 형주에 인재가 넘쳐났을까?

물론 북방에서 이주해온 사람도 많았겠지만, 기본적으로 형주가 학문하기 좋은 지역이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전국이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유표는 형주에서 학문발전을 지원하고 장려했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그의 성향과 맞물려, 형주는 인재가 넘치는 도시로 발전했다.

이런 유표의 능력도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그런 유표의 성향과 능력도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바로 욕심/욕망의 크기다.

유표는 굳이 일을 크게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쟁이 일상화된 시기는 항상 일이 커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도움을 청하러 온 유비는 항상 일을 크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삼국연의에서는 유표가 유비를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유표는 일을 크게 만드는 유비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이중텐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과연 유표는 유비에게 형주를 맡길 생각이 있었을까?"

이중텐은 이 부분에서 삼국연의가 야무지게 뻥을 쳤다고 말하고 있다.

나관중이 소설적 상상력으로 유표를 무능의 아이콘으로 표현한 것만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중텐은 유종의 투항도 나관중과 다르게 해석한다.

유종의 투항이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유비가 조조를 막는다면, 형주는 유비에게 굴욕적으로 빼앗기게 된다. 
만약 유비가 조조를 막지 못한다면, 형주는 조조에게 빼앗기고 덤빈 대가로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

유종이 이렇게 생각하면서 조조에게 투항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나관중은 소설 삼국연의에서 나쁜 습관을 자꾸 드러낸다.

소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인물을 좋게 포장하기 위해, 주변 인물을 왜곡시키는 못된 버릇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물론 소설이라고 변명하면, 할 말은 없다.



3. 적벽대전보다 형주쟁탈전?



조조는 형주에서 유비를 물리치고, 동오로 내려가 손권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조의 예상대로라면, 적벽대전 대신 형주쟁탈전이 되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손권은 정치적/군사적 이해관계 때문에 끌려들어간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손권이 조조에 투항하지 않고 싸운다는 전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중텐은 적벽대전 결정 과정에서 손권의 현명한 군주임을 입증했다고 주장한다.

손권은 이미 조조와 싸우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손권은 조조와 언젠가는 싸워야 한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손권 입장에선 신하들의 충성도를 확인해볼 필요도 있었던 것이다.

"나를 위해 일해줄 사람이 누구인가?"

어린 손권 입장에서 내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하는 계기로 삼았다는 얘기다.

굉장히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게다가 예상보다 조조는 빨리 내려왔다.

심지어 유종의 투항으로 조조는 아무 손실없이 형주를 장악했다.

손권 입장에서 형주를 차지하고 싶어도, 동오의 단독 전력만으로 조조에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에 노숙의 천하삼분지계와 제갈량/유비의 이해관계도 잘 맞아 떨어졌다.

결국 동오와 유비는 연합하여 조조와 전쟁하게 된다.

적벽대전 이후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사실 적벽대전보다 형주쟁탈전이라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해보인다.

나관중은 삼국연의에서 의도적으로 적벽대전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많은 분량만큼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이 추가된다.

소설에서 지나치게 자세하다는 의미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만큼 소설가의 상상력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어쩌면 그동안 무적에 가까웠던 조조가 처절하게 패배하는 모습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나관중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 아니었을까?


<삼국지강의>1권에 대한 리뷰를 마치면서, 뭔가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중텐의 주장에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소설 삼국연의와 정사 삼국지의 차이점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500페이지를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minsky 블로그 책 포스팅

"[삼국지강의(2)]유비VS제갈량,나관중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나?"

"[삼국지강의(1)]조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책-사피엔스(4)]누구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

"[책-사피엔스(3)]모순은 문화와 질서를 변화시킨다."

"[책-사피엔스(2)]역사상 최대의 사기, 그리고 덫"

"[책-사피엔스(1)]'모르겠다'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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