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도 저녁이면 노을이 진다 day2

in #kr7 years ago (edited)

컴컴했다. 마치 어둠속에 나만 남겨져 있는 것같이. 빠르지만 느리게, 내가 지금 우리집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작은 빛이라도 내 보려고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소리가 났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손을 뻗거나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는 방 안을 울렸고, 내가 그 이층침대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올 즈음에는 아래층의 앙뚜앙까지 꺠어 있었다.


사실 나 때문에 일어난 것 같아 좀 미안했다. 그리고 이 소란스러운 기상은 한국에 가기 전까지 매일 계속되었다.
샤워를 하고 간단히 아침으로 씨리얼과 우유를 먹자 앙뚜앙이 제과점에 가자고 한다. 새벽에 제과점을 가서 파리의 명물 크로와상을 사 오니 내가 진정 파리에 있구나 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당연 그 맛은 일품이었고 얼마 안 있어 나와 앙뚜앙은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향했다. 어색할 것도 같았으나 계속해서 영어로 대화를 하려하니 조금은 친해지며 학교에 도착했다. 먼저 와 있던 한국 친구놈들과 하나하나 차례로 오는 아이들의 눈과 마주치자 우리는 서로 알던 사이던 모르던 사이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간밤에 색다른 경험을 했겠지.

파트너들은 학교에서 작은 환영회가 끝난 뒤에 수업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학교를 잠깐 둘러보았다. 사실 우리나라의 학교들과 이렇다 할 차이는 없었다. 교실, 복도, 학생들. 단지 학생들이 너무도 잘생기거나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의 미적 기준이 서양에 맞추어져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옥상에서는 에펠탑을 조그맣게 볼 수 있었다. 난 전날 밤에 보았기에 에펠탑을 보며 놀라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나도 어제 저랬으려나. 다음 일정은 오르세 미술관으로의 견학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오르세 미술관 展을 보고 감명 깊었던 기억이 있어서 매우 기대를 하고 찾아갔다.

반 고흐와 폴 고갱, 르누아르와 마네 등 이름만 들어도 알 것 같은 화가들의 작품이 일층에서부터 나열되어 있었다. 가이드 누나께서도 열심히 영어 설명을 계속하시며 우리들의 주목을 끌어 주셨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보고 싶은 작품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가이드의 설명만을 따라 다녀야 했고,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로만 설명이 계속되자 의자를 찾아서 앉기에 바빴다. 꿈에 그리던 오르세 미술관 관람이 아니라 그냥 수만 점의 그림들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은 그런 허망한 꿈. 뭔가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나름 어렸을 때는 즐겁게 관람했던 기억이 났는데도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미술관 관람이 끝나고는 다시 학교에 모여 파트너들을 만났다. 모두는 오르세 ‘대’ 미술관 관람으로 지쳐있어 또 다른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 했지만 몇몇씩 그룹을 짜서 흩어지며 우리 그룹은 지하철을 조금 타고 거대한 돔 형태의 축구 경기장에 견학을 갔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듯한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을 하며 투어를 해주었고, 사실상 앙뚜앙을 비롯한 다른 프랑스 학생들도 그곳에 많이 가보거나 많이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울의 모든 궁궐이나 조선시대 유적들에 가보지는 못한 것처럼. 얼마간의 투어가 끝나고 지하철로 향하자 이제야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학원에 앉아 있다가 집에서 숙제 하는 것과는 스케일부터가 다른 날을 보내니 힘들었다. 지하철을 통해 앙뚜앙의 집으로 가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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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한국에서 단골 여행코스인 경주에 사는 사람도 근처에 뭐가있는지 관심없는 경우도 많으니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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