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섭-국사교과서 논쟁과 민족정체성의 투쟁을 읽고

in #kr7 years ago

인간은 이데올로기 때문에 항상 갈등을 빚어 왔다.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를 살 펴 보면 쟁점들의 중심엔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이는 기득권층 혹은 지배자들의 통치 질서를 정 당화시키고 피지배층에게 납득시키는 강력한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가 바뀌거나 무너 질 때는 대부분 지배층이 바뀌었고, 한 국가의 멸망을 이끄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지배 계 급은 그들의 의견을 절대화했고,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는 세력은 기존과 대립되는 사상을 전파하 였다. 우리 나라 현대사도 이념 갈등의 예외에 속하지는 않는다. 한국 현대사에서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라는 사상은 지식인들 간 분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집권층은 실제로 자신의 오점을 미 화하기 위해서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활용했다. 최근에 일었던 국사 국정 교과서 논쟁은 표면적으 로는 좌파와 우파 간의 싸움일 뿐이지만, 그 이면엔 서로의 사상과 이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 는 것이다. 현재 한국 현대사에서의 논란이 되는 부분 중에 고대사와 현대사가 포함되어 있다. 민 족주의 사관과 국가주의 사관의 고대사와 현대사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르다. 그리고 그 당시에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국가주의 사학자들의 계보가 현재 현대사 논쟁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계보 는 우익과 좌익 간 대립과 연관성이 있다. 1940년대 후반에 우익 세력은 독립운동가들과 친일파 로 구성되어 있었다.

좌익 세력은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해방 직후에 친일파 청산 문제는 원활히 해결되지 않았다. 6·25 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진 이후에는 그 갈등의 골은 심해 지기만 했다. 군부정권 이후에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갈리고 있다. 김 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제1공화국부터 있었던 일을 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 이다. 현재 ‘건국절’이라는 단어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사학자들이 등장한 후 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일련의 사건들과 각 측의 주장을 읽어보고 ‘올바른’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양측이 협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 아시아 국가들 간의 협력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두 사학 중 승자는 국가주의 사학이다. 그들의 사관은 지금까지 서술된 한국사 교 과서 중 고대사 부분과 일치한다. 민족주의 사학연구보다는 국가주의 사학의 주장이 더 고대사학 의 주류에 가까운 것이다. 현대사에 대한 논쟁은 아직 진행중이다. 민족문제연구사 측은 전 이승 만 대통령을 국부로 인정하지 않고, 1960~1970년대에 우리나라가 이뤄낸 경제발전은 전 박정희 대통령이 이뤄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고평가하지는 않는 것이다. 반면, 박근혜 정권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고평가하는 역사 교과서를 저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 고 일제 강점기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고, 그 당시에 있었던 발전에 주목하고 있다. 동시에 독립운 동의 가치보다 이념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특히 1920년에 설립된 대한민 국 임시 정부는 국가의 정의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을 저평가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바라보는 고대사에 정체성 혼란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사 교과서의 논쟁, 그리고 민족 정체성의 투쟁은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지식인의 분 열이 낳은 페해라 할 수 있다. 1920년부터 일제의 문화통치 이후로 지식인들 중 일부는 일제에 협력했고, 일부는 그들의 신념을 굳게 지켰다. 역사를 보는 관점도 정말 다양했다. 민족주의 사관 도 있었고, 실증주의 사학도 있었고, 사회·경제사학도 있었다. 이 중에서 남한에서 계보가 이어진 사학은 민족주의와 실증주의다. 사회·경제사학은 해방 후 남한에서 인정받을 수 없었다. 이 때문 에 수많은 사학자들이 월북하게 된다. 그리고 6.25 전쟁 이후 정인보, 안재홍, 손진태 등 저명한 민족주의와 신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납북됨으로써 남한에는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의 다수를 이루 게 되었다. 그 결과 실증주의 사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후진들에게 전파하고 양성하면서 현재 한국 역사학계는 실증사학이 주도하고 있다.

즉 국가주의와 실증사학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증사학은 표면적으로는 가치 중립을 내세웠지만, 『조선사』를 발행했던 청구협회의 구성원에 실 증주의 역사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식민 사관을 다룬 책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사의 주류의 의견만 받아들여서 역사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은 편향된 교과서를 저술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의 한국사는 친일 세력과 연관성이 없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민족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국가주의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 주류인 민족주의의 주장은 그 자체로 혼란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단점이 있다. 민족주의 측은 지 나치게 상대방의 단점만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약점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또한, 한국인의 민족 성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정의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 논쟁을 벌이는 두 중심 축 모 두 보완해야 할 부분이 명확하다. 즉, ‘올바른’ 국사 교과서를 통해서 민족 정체성을 밝히려면 민 족주의의 모호성과 국가주의의 근본적인 단점을 잘 조율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역사 외교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한국 역사를 덜 편향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협의를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 에 성공적이지 못한 통합이었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은 후 한국사의 쟁점들을 국 내외에서 원활히 조율할 수 있다면 소모적인 갈등이 사라짐과 동시에 단합된 국민의 위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과정이 수반되어야 지금보다 더 나은 교재를 만들 수 있고, 그로부터 여러 가지 이익들을 얻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는 좌파와 우파의 통일, 그리고 외국과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한 역사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한민족 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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