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얼굴>

in #kr7 years ago

1940년대 일제 감정기 태평양전쟁 막바지 와중에 오빠가 결혼을 했다.
결혼식 날 아침 어머님이 '남정네 얼굴이 왜 이리 혈색이 없나' 하시고 신랑 얼굴에 연지(호호배니) 를 발라주셔 동생들은 '남자가 연지 곤지 발랐네' 하고 오빠를 놀려주던 생각이 났다. 식장에서 하객들이 '신랑이 색시보다 잘생겼네' 하니 어머님 말씀이 '색시가 하관이 두툼해 관상학적으로 집안에 복이 들어오는 두꺼비상이니라 하셨다.

첫 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얼굴이다.
곧잘 사람들은 생김새를 포함해 얼굴에 나타나는 기운이나 호감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얼굴의 옛말도 '얼이 깃든 '골'(洞 동네)라는 뜻이다. 인상(人相)이 심상(心相) 인 것이다. 옛날에는 '생긴대로 산다' 는 수동적 운명론이 지배적이었지만 요즘에는 '사는 대로 생긴다' 능동적 관상학적이 우세하다. 인상을 만드는 요소 중 유전자는 고작 20%~30%이고 나머지는 후천적 사회화의 과정이란다.

얼굴은 가지각색이다. 둥든 얼굴, 긴 얼굴 까만 얼굴, 하얀 얼굴 누런 얼굴, 다 각각 다르다. 얼굴은 바탕과 빛깔이 다를 뿐만이 아니라 얼굴을 구성하고 있는 눈, 코, 입, 어느 한 부분이나 똑같지가 않다.
이렇게 똑같지 않은 얼굴 중에서 종합적으로 잘 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것과, 생김새는 잘 생겻던 못생겻든 인상이 좋고 나뿐 것이 표정의 초점을 이루는 것이다.
첫인상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이지만 자주 만날수록 그 우락부락한 무습은 깨끗이 사라지고 차차 좋아지는 사람이 잇는 가하면 얼핏 보아서 첫눈에는 들엇는데 두 번 세 번 볼수록 싫어지는 얼굴이 있다.

"옳거니"하며 나는 미소를 지엇다. 나의 새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조경희 님은 수필 "얼굴"에서 미국에 계시던 부친이신 독립운동가 조광원 성공회 신부님께 이렇게 말씀 하셨단다.

'왜 나를 보기 싫게 낳아 주셨느냐?'
그때 아버지는 나 같은 철부지를 점잖게 상대해 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회답의 대답이란,
'인간은 본시 얼굴이 예쁜 것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사람 노릇 을 한다는 타이르는 말씀이었다.

그 아버님의 말씀대로 월당 조경희 (月堂 趙敬姬 1915~2005) 님은 한국문화예술과 수필가 협회회장으로 선두에서 개척하시며 빛나는 업적을 남겨 후대에 존경을 받고 계신다. 나의 언니도 오빠와 미수(米壽)까지 회로하며 두 분이 자라나는 어린새싹을 지도하며 평생 교육계에서 봉직 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외모 보다 그 얼굴에서 풍기는 도덕적 이미지에 이미 부여를 했다. 팔품(八品) 이라 하여 야덟가지 분류를 했는데 위(威) 박(博) 악(惡) 속(俗)으로 인물의 됨됨이 그리고 장래성까지 가능 했는데 큰 착오가 없었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성형과 시술로 인상을 바꾸고 자기 본래의 얼굴을 감추려 든다. 호화찬란하게 등장한 삼품 속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곤란하듯이 최신식으로 '메이컵' 한 얼굴에서 누가 진정 좋은 사람인가 발견하기 힘들듯이 말이다.

무소유를 실천하신 고 법정(法頂) 스님, 낯은 곳에서 수도의 길 헌신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 맑은 샘물이 솟아나듯 사랑과 미소로 행복을 전하시는 이해인 수녀님을 보라. 그분들의 얼굴 모습에서 삶의 극악스런 혼적이나 되바라진 인상을 찾을 수 없음은 끊임없는 수도 생활의 결과라 하겠다. 사십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지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나이 드셔도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셨다.

어제 경기도 광주(廣州)에 있는 '화담숲' 에 갔었다. 오색 단풍지는 숲길을 거닐고 가을 의 한가운대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이 "곱게 늙어 가네요"하는 설레는 말을했다. 그 말을 즐겁게 듣고 미소로 답한다. '내가 늙어가는구나 이 가을따라 흘러가는 구나' 얼굴 쳐들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언제 부터인지 아참마다 익숙했던 내 얼굴 아닌 생소한 늙은이 얼굴 바라보며 묵묵히 세월이 스쳐간 자리에 본능적으로 화장하며 덧칠을 해댄다. 살아 있음에 매번 얼마나 황홀한 축복인가 감사하며...

                                 2017.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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