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꿈은 늙지 않는다>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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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새벽에 ‘쾡,쾡’ 장작 패는 소리가 어둠을 밀어내고 아침이 열렸다. 나는 “아버지다.”하며 일어나 옆에 어머니의 빈 자리를 보며 뒤뜰로 달려 나가곤 했다. 아버지는 늘 집을 떠나 시골에 가셨다고 하여 어린 나는 아버지를 찾아 칭얼거리다 어머니께 꾸중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부지런한 집안 분위기는 습관이 되어 지금 이 나이에도 어김없이 이른 새벽에 나를 일으켜 세워 깨운다. 집안은 아버지의 고향인 충북 진천에서 서울로 청운의 꿈을 품고 공부하러 오는 친척 오빠, 일자리 구하러 오는 집안 분들이 아랫방, 행랑을 차지하여 늘 북적북적했다. 저녁때 아버지가 집에서 식사하실 땐 꼭 반주를 하셨고 나는 한 잔 두 잔 오르내리는 곁에서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조잘거리다 무릎을 베고 잠들곤 했다.

늘 신문을 펼치시는 모습을 보며 첫 장래 희망은 신문기자가 되어야지 하는 야무진 꿈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 싹을 노래한 ‘새 나라의 어린이’를 읽으며 이번에는 나도 초롱초롱한 어린 싹에게 꿈을 주는 선생님이 되는 소박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6.25 때 부산 피난지에서 결혼을 하게 되고 다섯 아이들을 키우며 아들의 중학교 입학시험에서의 무우즙 사건과 둘째 딸이 고교 진학할 무렵 고교 평준화등, 수시로 변하는 교육시책을 겪었다. 그들이 대학생이 되니 이번에는 유신반대, 학생운동으로 편한 날 없이 십여년을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한참 아이들의 교육으로 정신 없이 동분서주하는 생활이 연속되고 있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저렇게 세월을 보내면 안 되는데” 어머니께 말씀하셨단다. 그 후부터 나는 그 말의 뜻을 되새기며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은 고독감과 허무한 마음이 들어 전전긍긍 고민하곤 했다.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워 사회의 재목이 되게 하고자 애쓰면서도 사그러져 가는 꿈의 불씨를 찾아 열정을 잃지 않으려 책과 신문을 곁에 두었다. 나이 오십이 되면서는 어려서 아버지 곁에서 배우던 서예를 시작해 일 년 만에 신사임당 대회에서 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팔십이 넘어서야 홀로 되어 글쓰기와 컴퓨터를 배워 아이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게 되었다.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도전과 노력으로 나는 시들지 않는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삶은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행복 다음에는 불행이 따라 온다는 섭리에 따라 불안감이 다가 오곤 한다. 그러나 분수를 지키며 외유내강의 삶 속에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침착하게 사리를 밝혀 앞으로의 대책을 긍정적인 처세로 풀어간다. 늘 평범하고 소박한 꿈을 꾸어 왔고 때때로 꿈꾸어온 행복이 잠시 머물다 떠나간다 하더라도 미련 없이 다음 꿈을 꾼다.

우리는 어른들에게서 “꿈을 크게 가져라.”하는 말씀을 듣는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항상 갈망하며 우직하게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처럼 살아가라.”는 말을 했다. 내일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꿈을 향해 치열하게 싸우라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꿈을 꾸는 젊은이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맹렬하게 싸우라는 말로 들린다. 삶의 긍정적인 꿈은 행복이다.어제는 지나갔지만 오늘 지금의 문은 우리 앞에 활짝 열려 있다.

“내 최고의 업적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시간의 역사>를 쓴 영국의 스티븐 홉스 박사의 명언처럼 나에게도 ‘장수’라는 귀한 선물이 주어졌다.

창 밖엔 푸르른 가을 하늘이 높다. 뭉실뭉실 포근한 구름은 풋솜 풀어 놓은 듯 한낮의 햇빛과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부드럽게 흔들어 대는 바람과 함께 가을의 청명함을 더하고 있다. 10월의 들판이 가을걷이로 분주하듯이 나의 꿈을 머금은 삶의 가을걷이도 막바지를 향해 꿈은 무르익어 가리라.
책상 한 귀퉁이에 자리한 이해인 수녀님이 보내주신 꽃 달력이 오롯이 나를 부른다.

이미 건너간 사람은 / 건너가지 못한
나의 슬픔을 /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래도-,
살아가자면 / 언제이고 / 차례가 온다.
내일 향해 꿈을 꾸자./ 인내로 기다리자.
나는 누군가에게 / 사랑의 길을 열어주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이해인 시인의 꽃 달력에서)


                                              2013.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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