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10)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10)
카이사르는 칼싸움에 앞선 돈싸움에서도
경쟁자 폼페이우스를 압도하고 들어갔다
솥이 세 발로 서 있는 형상을 정립(鼎立)이라고 표현한다. 로마의 1차 삼두정치 체제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3자가 경쟁적 협력관계를 이뤄온 덕분에 지탱될 수 있었다. 세 발 가운데 하나가 떨어져나가면 솥이 이내 쓰러지고 말듯이,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원정에서 죽자 불안하게 유지되어온 삼두정치는 자연스럽게 종말을 향해 나아갔다.
폼페이우스는 이때쯤이 돼서야 자신이 호랑이를 키워줬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또다시 치명적 오판을 저지른다. 문제의 호랑이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로 알려진 인간의 얼굴을 한 호랑이는 갈리아의 산야를 종횡무진 누비며 피맛을 제대로 아는 진짜 호랑이로 변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군사적 업적에서마저 경쟁자 폼페이수를 능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키잡이 없는 배처럼 무정부 상태를 향해 표류해가는 중이었다. 여론은 광기가 판치는 혼란한 시대를 끝장낼 수만 있다면 군주제도 괜찮다는 태도였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폼페이우스도, 카이사르도 상대방을 처단하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최종적이면서도 불가역적으로 굳혔다.
칼의 전쟁의 전초전은 전(錢)의 전쟁으로 치러졌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모은 재물을 로마의 친카이사르 성향의 공직자들에게 보내 이들이 원 없이 돈을 쓰도록 했다. 또 호민관 쿠리오가 지고 있던 적잖은 액수의 빚을 대신 갚아주었고, 집정관 파울루스에게는 1천 5백 탈란톤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크라수스에게 어렵사리 꾼 돈으로 채무자들의 원성을 가까스로 무마하던 과거와 견주면 실로 상전벽해였다.
친카세력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지자 폼페이우스는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카이사르의 후임자로 자파의 인물을 앉힘으로써 갈리아에 있는 카이사르의 경제적 토대와 군사적 기반을 무너뜨리려 했다. 폼페이우스는 이와 동시에 카이사르에게 갈리아 원정이 시작될 때 빌려줬던 2개 군단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카이사르는 병사 한 사람당 250 드라크메의 포상금을 지급한 다음 이들을 원대복귀시켰다. 몸은 폼페이우스에게 가 있어도, 마음만은 카이사르 옆에 계속 머물러 달라는 무언의 속삭임이었다.
로마의 일반 병사들의 속내는 이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지휘관들의 행동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었다. 병사들과 같이 로마로 돌아간 지휘관들은 부하들이 길고 힘든 원정 때문에 카이사르에게 등을 돌린 상태라는 유언비어를 의도적으로 유포시켰다. 폼페이우스를 방심에 빠뜨려 임박한 내전에 대한 군사적 준비태세를 느슨하게 만들려는 책략이었다.
그렇지만 폼페이우스에게 돌아간 병사들의 진의는 중요한 순간 확연히 드러났다.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속주지배기간 연장 요청안을 부결시켰다는 소식이 들리자 회의장 부근을 배회하고 있던 한 백부장은 손으로 칼자루를 쓰다듬으면서 “그럼 이걸로 통과시키면 되지”라고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10)
카이사르는 칼싸움에 앞선 돈싸움에서도
경쟁자 폼페이우스를 압도하고 들어갔다
솥이 세 발로 서 있는 형상을 정립(鼎立)이라고 표현한다. 로마의 1차 삼두정치 체제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3자가 경쟁적 협력관계를 이뤄온 덕분에 지탱될 수 있었다. 세 발 가운데 하나가 떨어져나가면 솥이 이내 쓰러지고 말듯이,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원정에서 죽자 불안하게 유지되어온 삼두정치는 자연스럽게 종말을 향해 나아갔다.
폼페이우스는 이때쯤이 돼서야 자신이 호랑이를 키워줬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또다시 치명적 오판을 저지른다. 문제의 호랑이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로 알려진 인간의 얼굴을 한 호랑이는 갈리아의 산야를 종횡무진 누비며 피맛을 제대로 아는 진짜 호랑이로 변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군사적 업적에서마저 경쟁자 폼페이수를 능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키잡이 없는 배처럼 무정부 상태를 향해 표류해가는 중이었다. 여론은 광기가 판치는 혼란한 시대를 끝장낼 수만 있다면 군주제도 괜찮다는 태도였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폼페이우스도, 카이사르도 상대방을 처단하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최종적이면서도 불가역적으로 굳혔다.
칼의 전쟁의 전초전은 전(錢)의 전쟁으로 치러졌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모은 재물을 로마의 친카이사르 성향의 공직자들에게 보내 이들이 원 없이 돈을 쓰도록 했다. 또 호민관 쿠리오가 지고 있던 적잖은 액수의 빚을 대신 갚아주었고, 집정관 파울루스에게는 1천 5백 탈란톤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크라수스에게 어렵사리 꾼 돈으로 채무자들의 원성을 가까스로 무마하던 과거와 견주면 실로 상전벽해였다.
친카세력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지자 폼페이우스는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카이사르의 후임자로 자파의 인물을 앉힘으로써 갈리아에 있는 카이사르의 경제적 토대와 군사적 기반을 무너뜨리려 했다. 폼페이우스는 이와 동시에 카이사르에게 갈리아 원정이 시작될 때 빌려줬던 2개 군단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카이사르는 병사 한 사람당 250 드라크메의 포상금을 지급한 다음 이들을 원대복귀시켰다. 몸은 폼페이우스에게 가 있어도, 마음만은 카이사르 옆에 계속 머물러 달라는 무언의 속삭임이었다.
로마의 일반 병사들의 속내는 이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지휘관들의 행동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었다. 병사들과 같이 로마로 돌아간 지휘관들은 부하들이 길고 힘든 원정 때문에 카이사르에게 등을 돌린 상태라는 유언비어를 의도적으로 유포시켰다. 폼페이우스를 방심에 빠뜨려 임박한 내전에 대한 군사적 준비태세를 느슨하게 만들려는 책략이었다.
그렇지만 폼페이우스에게 돌아간 병사들의 진의는 중요한 순간 확연히 드러났다.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속주지배기간 연장 요청안을 부결시켰다는 소식이 들리자 회의장 부근을 배회하고 있던 한 백부장은 손으로 칼자루를 쓰다듬으면서 “그럼 이걸로 통과시키면 되지”라고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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