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원> 역자 후기
"제가 얼마나 대단한 책을 번역한건가요!"
"아니, 옮긴이 후기에다 그렇게 써 놓으셨잖아요"
작년 말 역자 교정을 끝내고 마감에 쫓기며 역자 후기를 쓰고 있을 때 편집자께서 서은국 교수님의 추천사를 보여 주셨다.
가벼운 책으로 생각했다가 읽어보고 약간 놀라신 듯 새벽 3시까지 책을 읽고 써 주셨다는 추천사에는 "가장 탁월한 인간의 능력(생각!)이 사실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 존재할 수 없었던 미약함에서 탄생했다'라는 흥미로운 역설"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 문장을 보고 아, 역시 나는 안 돼, 내 머리에서는 저런 문장이 나오지 않아, 하고 생각하며 옮긴이의 글을 마감해야 했다.
> "고도의 사고 능력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아이덴티티의 중심이다. 이 능력이 왜,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큰 질문에 세계 최고의 학자가 내어놓은 설명은 비교하기 힘들 만큼 깊고 명료하다. 가장 탁월한 인간의 능력(생각!)이 사실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 존재할 수 없었던 미약함에서 탄생했다'라는 흥미로운 역설을 전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읽은 과학도서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서은국,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행복의 기원> 저자
그리고 그날 밤에 장대익 교수님의 추천사를 받아보았다.
> "유인원 중에서 어떻게 사피엔스만이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이 위대한 질문에 답할 단 한명의 과학자라면 그는 단연코 마이클 토마셀로이어야 한다. 토마셀로만큼 인간과 다른 유인원 종들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깊이 들여다본 지구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집단 지향성'이 그 간극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왜 이토록 독특한 영장류로 진화했는가에 대한 해설서 정도가 아니다. 노벨상급 연구의 요약본이다." -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울트라 소셜> 저자
장대익 교수님의 추천사를 보고 내가 출판사 편집자에게 처음 내뱉은 말은,
"제가 얼마나 대단한 책을 번역한건가요!" 였는데,
돌아온 대답은,
"아니, 옮긴이 후기에다 그렇게 써 놓으셨잖아요" 였다.
* * *
2쇄를 찍었습니다. ^o^
'옮긴이의 글'을 여기에 옮겨 봅니다.
<생각의 기원>
토마셀로 지음,
이정원 옮김,
이데아.
올해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인간 생각의 자연사‘라는 멋진 제목에 끌려 번역 제의를 덥석 수락하고 검은색 표지의 원서를 받아 든 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원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번역서 <생각의 기원>의 첫 독자로서 이 글을 쓴다. 토마셀로의 책을 펼쳐 놓고 옮긴이로서 지냈던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열정적인 독자로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번역 초기에는 책에 인용된 실험 영상을 찾아서 보기도 하고 참고논문을 출력해서 읽어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은 원고의 두께를 가늠하기 바빴다. 토마셀로의 전작들과 관련도서를 찾아 읽으며 생각의 기원을 추적하는 여정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언제부턴가 다른 번역서에서는 토마셀로의 개념들을 어떤 용어로 옮겼는지 확인하기 급급했다. 옮긴이의 역할을 마무리하고 독자의 입장이 되고 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토마셀로는 30년 동안 영장류와 인간의 인지, 언어 습득, 문화 형성 과정을 연구했다. 현재는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이 성실하고 뛰어난 연구자이다. 토마셀로의 책과 논문은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9천5백 회씩 인용되었으며, 토마셀로는 지금도 여전히 제1저자 혹은 단독저자의 논문을 매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연구자의 학문적 기여도를 참고하기 위한 지표로 h-index라는 것이 있다. H-index가 100점이면, 100회 이상 인용된 책 혹은 논문이 100편 이상이라는 뜻이다. 반짝 유행을 탄 논문이나 생계형 논문으로는 h-index를 올릴 수 없다. 동료 연구자들에게 많이 인용되는 논문을 꾸준히 발표해야 h-index가 올라간다. 그리고 h-index가 올라갈수록 1점 올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구글 스콜라(Google Scholar)에 따르면 분야를 막론하고 h-index 100점 이상인 연구자는 2천2백 명 정도이며, 150점 이상은 210 명밖에 없을 정도다. 토마셀로의 h-index는 159점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이슈를 선포한 마르크스와 견줄 만한 수준이다.
현재 토마셀로의 저서 중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은 <인간 인지의 문화적 기원(The Cultural Origins of Human Cognition)>(1999)이다. 18년 동안 총 6천7백여 회 인용될 정도로 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다. 토마셀로는 <생각의 기원>이 <인간 인지의 문화적 기원>의 속편 혹은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서문에서 밝힌 바 있는데, 토마셀로가 최근 3년 동안 <생각의 기원(A Natural History of Human Thinking)>과 <도덕의 기원(A Natural History of Human Morality)>을 연달아 출간한 것을 보면, ‘A Natural History of Human X’ 시리즈로 30년 연구를 집대성하기로 작심한 것 같다.
<생각의 기원>은 ‘인류의 생각이 어떻게 진화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토마셀로의 답이다. 토마셀로는 인류의 생각이 진화 역사에서 두 번에 걸쳐 크게 달라졌다고 보았고, 이것을 ‘지향점 공유 가설’이라 불렀다.
토마셀로가 기술한 생각의 진화사는 인간이 다른 유인원들과 진화적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은 침팬지나 보노보 같은 대형 유인원들과 공통 조상을 가진다. 인류는 대략 600만 년 전쯤에 다른 유인원들과 갈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토마셀로는 이 시기의 인간이 유인원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침팬지들은 원숭이를 사냥할 때 무리지어 함께 쫓는다. 하지만 침팬지들이 협력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데, 함께 원숭이를 잡아서 먹이를 나누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잡아서 먹이를 독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침팬지의 사회적 인지는 협력적이라기보다는 경쟁적이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500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간의 생각은 개인중심적이었으며 ‘개인 지향성’이라는 경쟁적이고 착취적인 사회적 인지를 가동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약 40만 년 전쯤이 되어서야 인간의 생각이 침팬지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토마셀로는 새로운 인지 기술을 처음으로 확보한 인류가 아마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아닐까 하고 추정하는데, 이 시기를 ‘초기 인류’ 단계로 분류한다. 초기 인류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소규모 협력 생활을 했으며, 이를 위해 ‘공동 지향성’이라는 사회적 인지 기능을 가동해야 했다. 초기 인류는 상대방의 의향을 파악하기 위한 사회적 지능이 필요했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자신의 의사소통과 행동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약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되자 협력 규모는 집단 전체로 확장되었다. 현대 인류는 ‘집단 지향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제도라는 가상의 실체들을 만들고 권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협력 활동을 잘 수행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 집단의 관점에서 자신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인간만의 전유물인 극도의 사회성은 어느 누구의 관점도 아닌 생각의 진화를 이끌었다.
토마셀로는 지향점 공유 가설을 15년 전에 처음 발표했는데, 이후에도 계속 최신 실험 결과들을 반영하고 내용을 보완해 왔다. 작년까지도 관련 논문이 나온 것을 보면 토마셀로가 생각의 진화 여정을 얼마나 진중하게 탐구해 왔는지 알 수 있다.
토마셀로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섣불리 따라나서지도 못했을 만큼 먼 길을 걸어 왔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옮겨놓으면서 이제 와서 보니 표지 그림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과거가 되어 버린 인간을 바라보며 침팬지는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아마도 창세기 3장 5절의 문구를 곱씹어보고 있는 듯하다. “너는 훗날 신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생각의 미래는,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o^
멋지십니다!
감사합니다! 팔로우 하고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