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총칙>을 읽고
흔히 ‘법학’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재미없고 어려운 학문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있다.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 무인도에 들어가서 살지 않는 이상, 법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상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은 우리사회의 규율이자 규범이다. 따라서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꼭 법조인들만의 의무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법 지식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록 법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법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법문사에서 2009년에 발행한 김준호의 <민법총칙>을 읽었는데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이렇게 독후감을 남기고 있다.
김준호는 머리말에서 법학, 특히 민법학에 관한 문헌은 논문을 제외하고 대체로 그 성격에 따라 교과서, 주석서, 연구서, 판례서 등으로 나뉜다고 썼다. 그리고 이것은 그 분량과 체재에 따라 다시 나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책에서 법이란 구체적 사건에 대한 타당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쓴다. 구체적 사건에 따른 타당한 해석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또한 요구된다. 그런데 이와 맞물려 있는 것이 법 해석의 통일이라고 하는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다. 구체적 사건의 타당한 해결에 집착한 나머지 그 해석이 사건에 따라 제 각각이면 이 또한 법률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결국 민법규정의 목적을 토대로 하여 법적 안정성의 틀을 유지하면서 구체적 사건에 따라 타당한 결론을 끌어내는 구체적 타당성도 실현하는 해석방법이 그 목표 내지 표준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김준호는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제1장은 민법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법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방대하고 복잡한 내용의 민법을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민법의 의의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긴 편이다. 2쪽에 의하면 민법은 사법 중에서도 일반사법이다. 즉 민법은 인간이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예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특별사법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상법’이 있다. 상법은 영리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상인’을 그 적용대상으로 하는 점에서, 일반사법인 민법과 구별된다. 민법은 이렇게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규정하는 것으로 그 성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민법의 법원(法源)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한다.
김준호는 <민법총칙>의 4쪽에 민법의 법원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놓았다. 4쪽에 의하면 민사분쟁이 생겼을 경우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규가 필요하다. 그러한 법규가 민법이라고 한다면, 민법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또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가 문제되는데, 이에 관한 것이 민법의 법원(法源)이다. ‘법원’이란 ‘법의 연원’을 줄여서 표현한 것으로서 법철학의 분야에서는 여러 의미로 사용되지만, 본조에서 정하는 민법의 법원의 의미는 다름 아닌 민사에 관한 적용법규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뒤로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민법에 대한 심화된 내용이 등장한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민법의 해석’에 대한 부분이다. 30쪽에 의하면 개인간에 민사분쟁이 발생한 경우, 법원은 민법을 재판규범으로 삼음으로써 그 해결을 꾀하게 된다. 이것이 민법의 적용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그 전체로 민법의 의미와 내용을 명확히 밝히는 작업이 요청되는데, 이것이 민법의 해석이다. 법률 특히 민법은 역사적으로 경험해 온 여러 사건들의 공통점을 묶어 이를 일반적, 추상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그래서 그 규정의 내용이 어렵고 추상적이다. 이러한 추상적인 민법규정의 취지와 의미를 밝혀 이를 명확히 하는 것이 민법해석의 목적이다.
민법해석의 목적에 대해서 계속 알아보자. 30쪽에 의하면 민법을 해석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조문의 문언에 대해 통상의 의미에 따라 해석하는 ‘문리해석’, 민법이라는 하나의 체계하에서 해석하는 ‘논리해석’, 조문의 의미를 좁게 해석하거나 넓게 해석하는 ‘축소해석’과 ‘확대해석’, 기존의 법규를 다른 유사한 사항에 적용하거나 또는 적용하지 않는 ‘유추해석’과 ‘반대해석’, 입법의 취지 내지 목적을 탐구하는 ‘연혁해석’이 그것이다. 이 중 특히 유추해석은 법률의 흠결을 보충하는 해석방법으로서 실제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이것은 어떤 법률요건에 관해 민법에 규정이 있는데 그와 유사한 다른 것에는 그 규정이 없을 때에, 민법의 그 규정을 그 유사한 것에 적용하는 것으로서 ‘같은 것은 같게’ 다루자는 요청에서 나오는 해석방법이다.
또한 이 책에는 <판례>가 수록되어 있어서 어려운 민법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령 200쪽에는 이런 <판례>가 나온다. A는 B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면서 그 담보로 A 소유의 공장 내의 토지와 건물에 대해 B 앞으로 각각 공장저당법에 의한 공장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다. 한편 위 공장에는 10개의 저유조가 있는데, 이것은 정유회사의 저유탱크와 비슷한 크기로서 지면은 철근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두꺼운 철판으로 된 원통형 벽면과 삿갓 모양의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고 토지에 견고하게 부착되어 있다. A는 위 공장저당권을 설정하면서 이 저유조를 토지에 설치된 기계기구 기타 공장공용물에 포함되는 것으로 하여 그 목록에 기재하여 같이 제출하였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이 저유조가 기계기구 등 공장의 공용물에 해당한다면 토지에 대한 공장저당권의 효력은 그 목록에 기재된 저유조에 대해서도 그 효력이 미치지만, 저유조를 독립된 건물로 보면 이에 대해 따로 공장저당권을 설정하지 않은 이상 B의 공장저당권은 이 저유조에는 미치지 못하게 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위 저유조를 유류창고로서의 기능을 가진 독립된 건물로 보아 B의 공장저당권의 효력은 저유조에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판결하였다.
이는 참으로 재미있고 어려운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민법이란 분명 어렵고 방대한 분량의 법이지만, 이처럼 실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법률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법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더 심층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신의성실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사회가 됐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