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의 <화에 휩쓸리지 않는 연습>을 읽고
겉으로는 평온하고 냉정해보이지만, 사실 나는 화(anger)나 짜증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결정적인 순간에 욱하는 경우가 있고 이 때문에 큰 손해를 본 적도 있다. 요즘은 되도록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서 예전과 같이 손해를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사실 화라는 감정을 나 혼자 다스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이유로 틱낫한의 <화에 휩쓸리지 않는 연습>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틱낫한은 베트남의 승려이자 시인, 평화운동가이다. 공부를 상당히 많이 한 스님이기도 한데, 1961년에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불교를 가르친 이력도 있다.
<화에 휩쓸리지 않는 연습>은 프롤로그부터 인상적이다. 이 프롤로그의 주제는 다름 아닌 ‘화를 다룰 줄 아면 상처도 힘이 된다’는 것이다. 틱낫한은 17쪽에서 우리는 첨단의 의사소통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은 눈 깜박할 사이에 정보를 지구 반대편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어머니와 딸 사이의 대화는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대화를 회복하지 않으면 행복은 아득히 멀어질 뿐이라는 점도 쓴다. 부처의 가르침에는 연민을 가지고 경청하는 수련, 부드럽고 온화하게 말하는 수련, 화를 돌보는 수련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고 한다.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면 거의 전문적인 상담사 수준의 수련인데 종교를 떠나서 현대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수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말로써 상대방을 공격하고 상처주는 것에 능하다. 또한 화를 지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따라서 틱낫한은 대화를 회복하고 가족과 학교, 사회에 행복을 가져오려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주의 깊게 듣고 부드럽게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야만 나 자신은 물론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부처의 가르침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내용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연민이다. 192쪽에 의하면 이해와 연민은 매우 강력한 에너지원이다. 이해와 연민은 어리석음과 수동성의 반대말이다. 연민을 수동적이고 나약하고 소심한 감정으로 여기고 연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불의에 저항하거나 도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해와 연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오히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전사이자 영웅이다. 연민의 마음으로 폭력적이지 않게 행동할 때,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진정 강해질 수 있다.
사실 나도 틱낫한의 이러한 이야기가 낯선 것은 아니다. 틱낫한의 이야기는 그저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으로 꼽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부드럽게 대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해도 막상 잘 맞지 않는 사람과 부딪히면 화나 짜증이 먼저 밀려들어온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만 할까. 틱낫하은 맨 먼저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만들어준다.
이 책의 21쪽에는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면 몸과 마음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몸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몸이라는 것이다. 화는 정신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물질과 정신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 둘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몸과 마음이 하나를 이루는 것을 ‘나마루빠’라고 한다. 나마루빠란 정신과 물질을 하나의 개체로 생각하는 심리-신체 과정을 뜻한다. 같은 문제라도 어떨 때는 마음으로 나타나고, 어떨 때는 몸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이러한 관점은 사실 서양인들에게는 많이 낯설 것이다. 서양인들은 데카르트 이래로 ‘몸과 마음’을 각각 분리시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는 이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틱낫한은 이원론적 입장에서는 몸과 마음을 서로 분리된 개체로 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몸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몸이다라는 견해를 보여준다. 몸과 마음을 전혀 다른 실체로 분리하는 이원론을 극복한다면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경청’이 단순히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틱낫한은 연민의 마음으로 경청하는 태도는 남의 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66쪽에 의하면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다. “내 안의 상처받은 작은 아이야. 내가 여기서 듣고 있으니까 어서 이야기를 해봐. 뭐가 화가 나는지, 뭐가 고통스러운지 다 말해봐. 내가 잘 들어줄 테니까.”라고 말이다. 매일 5분, 10분씩 내면 아이에게 돌아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상처는 치유될 것이라고 틱낫한은 말한다.
나도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상처받은 아이, 혹은 자아가 숨겨져 있다. 때로는 이 자아로 인해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자아의 말을 한 번도 귀 기울여 들어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내 안에서 상처와 화를 갖고 숨어 있는 아이, 자아의 슬픈 말에 최선을 다해서 경청할 것이다.
또한 틱낫한은 이 책에서 감정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고 썼다.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면 화를 다스리는 일 쯤은 충분히 할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162쪽에 의하면 감정은 어느 순간 나타나서 잠시 머물렀다가 저 멀리 사라진다. 이렇게 바람 같은 감정 때문에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틱낫한은 쓴다. 감정은 왔다가 가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몰려오면 의식적인 호흡을 하면서 곧 지나갈 폭풍우임을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번 성공하면 명상 수련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를 그동안 화나게 만들었던 일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도 화에 휩쓸리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며 살아야겠다.
요새 불끈 불끈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책을 제대로 속독해서 읽어 봐야 겠습니다.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