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첫 유죄 판결과 남은 숙제
우리나라에서도 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 같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태다. 말레이시아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가짜뉴스 생성자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형법 개정을 실시한 국가다.
말레이시아에선 지난 4월 2일 가짜뉴스 작성을 처벌하는 법안이 여당 다수 찬성으로 통과된 바 있다. 가짜뉴스 처벌 법안은 정치인 나지브 라자크(Najib Razak) 정권이 제출한 것이다. 처음에는 최고형은 징역 10년이었지만 최종 통과된 안에선 징역 6년 이하, 벌금 50만 링깃(한화 1억 3,000만 원대)으로 바뀌었다. 수정 법안은 의회에 통과되면서 법률로 성립되게 됐다.
말레이시아의 가짜뉴스 처벌 법안은 가짜뉴스를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잘못된 뉴스나 정보, 데이터, 보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잘못됐다는 건 객관적 사실에 대해 정보발신자 주관이나 판단 합리성 같은 요소가 고려되지 않고 읽히는 걸 말한다.
해당 매체에는 영상이나 녹음한 음성도 포함된다. 그 뿐 아니라 SNS 같은 소셜미디어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만일 말레이시아 시민이 영향을 받는다면 외국인을 포함한 말레이시아 국외 거주자에게도 적용된다. 다시 말해 말레이시아 국외에서 악의적으로 가짜 소식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면 말레이시아 행정 당국에 형사 고발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나지브 라자크 말레이시아 총리의 뇌물 수수 의혹 탓에 차기 총선에서 집권 여당도 고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가짜뉴스를 중죄로 다스리겠다는 법률이 나오면서 정권 차원에서 비판을 봉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거나 실질적인 검열 기능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 법률에 의거해 첫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나왔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가짜뉴스로 범죄자가 된 것.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말레이시아인이 아닌 덴마크인이다. 46세 덴마크인인 살라 살렘 살레 술라이만(46, Salah Salem Saleh Sulaiman)은 지난 4월 21일 말레이시아에서 팔레스타인 남성이 사살된 사건에 대해 경찰 도착이 늦었다는 내용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올렸다. 결국 악의적인 가짜뉴스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체포, 구속됐다. 술라이만은 경찰이 도착하는 데 50분 가까이 걸렸다고 주장했지만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은 8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결국 4월 30일 쿠알라룸푸르 법원은 수감자의 행위가 가짜뉴스 처벌법 위반이라면 벌금 1만 링깃(한화 273만 원대) 유죄 판결을 내렸다. 4월 11일 시행된 가짜뉴스 처벌법은 3주 만에 첫 유죄 판결을 받은 수감자를 배출(?)한 셈이다. 그는 벌금을 지불할 수 없어 감옥에서 1개월을 보내는 걸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덴마크 국적이지만 말레이시아에는 여행차 체류 중이었다고 한다. 잠시 머무는 동안 유튜브 동영상에 사살 사건 관련 내용을 올렸다가 가짜뉴스 확산 행위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가짜뉴스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은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가짜뉴스에 대해 독자를 속일 의도로 만든 허구라고 정의한다. 또 가짜뉴스를 바로 잡으려는 움직임은 언론에게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워싱턴포스트 같은 곳은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사이트 200개 이상을 모아 블랙리스트로 게재하기도 했다. 구글 역시 마찬가지로 가짜뉴스 사이트 200여 개를 추방 조치하기도 했다. 가짜뉴스 챌린지(Fake News Challenge. http://www.fakenewschallenge.org/) 같은 프로젝트는 업계 전문가 100여 명과 자원봉사자 등의 참여를 통해 머신러닝과 자연어 처리,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뉴스 기사에 숨어 있는 조작이나 오보를 식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기술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아버지 지미 웨일스는 지난해 가짜뉴스 근절을 외치며 위키트리뷴(Wikitribune. https://www.wikitribune.com/)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클릭만 높여주는 현상을 클릭베이트(Clickbait)라고 한다. 클릭(Click)과 미끼(Bait)의 합성어로 쉽게 말해 클릭을 위해 계속 미끼를 던진다는 것이다. 그는 가짜뉴스가 만연하는 건 뉴스 사이트가 페이지뷰나 광고 수익만 추구하기 때문이라면서 전문 지식을 보유한 기자가 기사를 쓰고 이를 읽는 독자가 모두 체크, 개선해나가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채택한 위키트리뷴을 제시했다.
가짜뉴스를 둘러싸고 국내에서 댓글에 매크로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봇이나 매크로 같은 기능을 통한 가짜뉴스 확산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것. 하지만 최근 MIT 연구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짜뉴스가 확산되는 원인에는 봇보다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연구팀은 20006∼2017년까지 트위터에서 450만 회 이상 리트윗된 12만 5,000개 이상 스토리를 조사했다. 결과를 보면 가짜뉴스 중 상위 1%는 10만 명까지 확산된 반면 사실인 트윗은 1,000명 이상까지 확산되는 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실보다는 잘못된 정보가 트윗으로 확산되기 더 쉽다는 얘기다. 또 가짜보다 사실을 다룬 트윗은 확산 속도도 6배가 더 길었다. 가짜뉴스가 빠르고 더 쉽게 확산되는 이유로는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가짜뉴스 중 정치 관련 테마는 가장 확산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밝혔듯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데 봇이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봇은 가짜뉴스나 사실인 내용 확산에 미치는 기여도가 비슷했다고 한다. 봇의 영향은 양쪽에서 다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가짜뉴스가 더 확산되는 데에는 사람의 기여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결과는 매크로나 봇 같은 자동 도구를 막는다고 해서 잘못된 정보 확산이 방지되는 건 아닐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터넷에 유언비어나 가짜뉴스, 음모론 같은 정보가 가득하다는 문제가 지적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했던 2014년 전 세계 10대 트렌드 역시 온라인에서의 오보 확산(The rapid spread of misinformation online)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2016년 탈진실 관련 키워드 검색이 2,000%나 급증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은 가짜뉴스는 저널리즘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