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외한 씨의 연재소설] 하얀방-4

in #kr7 years ago (edited)

괴성과 발자국 소리는 이제 복도 바로 건너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삭발 당해 있지도 않는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서는 것 같았다. 그때 시뻘건 고깃덩어리 같은 괴생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형상을 한 그것은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복도 반대편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행진하는 개미들을 짓밟고, 비틀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괴생물체는 온몸에서 땀이 나듯 피를 흘렸는데, 뛸 때마다 핏방울들이 바닥과 벽으로 흩뿌려졌다. 그것의 발에 밟히고 차여 납작해지고 허리가 잘린 개미들은 허공으로 소리 없이 내동댕이쳐졌다. 그 모습은 마치 슬로우모션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그는 그 괴생물체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뒤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살아생전 그런 흉측하고 괴상한 생물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개미 따위를 위한 신사도를 차릴 때가 아니었다. 그 역시 개미떼를 사정없이 짓밟으며 괴생물체의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의 그 괴생물체가 그의 뒤를 쫒아오기 시작했다. 짧은 사이 그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한 뒤, 개미들이 다니지 않는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허튼 수작이었다. 괴생물체는 여전히 그를 놓치지 않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이리저리 뛰어 갔다. 다음 방향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그의 앞에 다시 또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배가 아플 때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박함과 공포가 엄습했다. 괴생물체는 이제 거의 바로 뒤까지 쫒아와 있었다. 그는 숨을 죽였다. 오른손에 들려있던 칼을 다시 한 번 꽉 쥐었다. 빵을 써는 칼로 고기를 썰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고통스런 숨과 괴성을 동시에 몰아쉬며 붉은 괴생물체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이미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다. 고함을 지르며 괴생물체의 심장을 향해 칼을 박았다. 괴생물체의 눈이 커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가 찌른 것은 심장이 아닌 갈비뼈였다. 칼은 깊숙이 박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칼을 빼어들었다. 괴생물체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그의 칼을 빼앗기 위해 손을 휘둘렀다. 그는 재빨리 나이프를 괴생물체의 배에 쑤셨다.

뺐다, 쑤셨다.

뺐다, 쑤셨다.

뺐다, 쑤셨다.

뺐다, 쑤셨다. 그는 칼을 또 빼고, 다시 쑤셨다. 괴생물체처럼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 셀 수 없이 칼을 쑤셨다. 그런 초인적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칼에 찔린 괴생물체의 가슴과 배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하얀 옷이 괴생물체의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괴생물체는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 괴생물체는 아주 잠깐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괴생물체의 눈에는 아무런 살기가 들어있지 않았다. 괴생물체는 입을 벌렸으나 그 안에는 혀도 이도 없었다. 아무 의미 없는 음성만이 흘러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칼을 들고 있는 그의 눈에 그런 것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그는 극도의 흥분으로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비록 그게 괴생물체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무언가를 이렇게 난도질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손은 힘이 빠져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쥐고 있던 칼이 손에서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점차 괴생물체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괴생물체가 아니었다. 아주 얇게 살가죽이 벗겨진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와 비슷한 체격의 남자였다. 누군가의 정교한 칼질로 인해 그의 몸은 인체의 신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 또한 믿을 수가 없었다. 그저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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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1화부터 정주행하고 있는데 쫄깃 하네요.
다음화는 언제 쯤... 연참 연참

아이구, 정주행해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든든한 버팀목이 생긴 듯하네요. 조만간 다음 편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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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 이야기는 끝을 향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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