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외한 씨의 연재소설] 하얀방-2

in #kr7 years ago (edited)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그는 이곳을 병실 정도로 생각하고만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사고가 난 것인지, 눈은 무엇 때문에 다친 것인지, 머리는 왜 삭발이 되어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의 일을 떠올려 보았지만 어제는 이미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제의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오후 두시 혹은 새벽 두시. 그가 갇힌 방안에는 창문이 없었다. 시계 속의 숫자만으로는 낮과 밤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다. 시계가 정확하게 맞추어져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멍하니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바늘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고장난 시계였다. 헛웃음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따져 보았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매는 동안 그는 어느 정도 평정심을 찾았다. 천천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기 위해 방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은 온통 하얀 벽과 천장과 바닥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방안의 모든 가구들 역시 하얀색이었다. 심지어 그가 입고 있는 옷조차도 모두 하얀색이었다. 처음에 그가 이곳을 병실로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침대는 오른쪽 벽에 바짝 붙어있었다. 침대의 왼쪽 벽에 자리한 작고 하얀 서랍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랍장으로 다가갔다. 자세를 낮추어 서랍장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서랍장 안에는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옷들이 여러 벌 들어있었다.

첫 번째 칸,
두 번째 칸,
세 번째 칸,
네 번째 칸,
다섯 번째 칸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뿐. 별다른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는 하얀 옷 위로 자신의 배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는 고팠다. 그러고 보니 눈을 뜬 뒤로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빵과 우유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선 채로 빵과 우유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조심스럽게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이어서 빵을 조금 떼어 먹었다.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우유를 한 모금 더 들이키고는 허겁지겁 빵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빵을 자르는 칼은 그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빵을 칼로 썰어먹는 고상함 따위는 애진작에 허기와 함께 삼켜버린 뒤였다.

그는 순식간에 빵을 다 먹어 치웠다.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우유를 다 마시는 순간, 혀끝으로 딱딱함과 함께 금속 특유의 신맛이 느껴졌다. 그는 바로 컵을 내려 그 맛의 정체를 확인했다. 우유 때문에 불투명해진 유리컵 속으로 금속성의 물질이 보였다. 열쇠. 그것은 분명 열쇠였다. 기쁨과 불안이 공존하는 묘한 감정 속에 열쇠를 꺼냈다.

그가 컵 속의 열쇠를 손으로 집어 들었을 때, 갑자기 뱃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직전에 먹은 빵과 우유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으나, 원인이나 이유를 따질 틈 따위는 없었다. 그는 바로 문 쪽으로 다가갔다. 생전 처음 보는, 어딘지도 모르는 방안에서 큰일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유 냄새가 나는 열쇠를 열쇠구멍에 끼워 넣었다. 열쇠는 구멍에 딱 맞았다. 하지만 너무 깊게 넣었는지 혹은 덜 넣었는지 문고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열쇠를 뺀 뒤 다시 넣고 이리저리 돌렸다. 뒤가 터지기 일보직전, 문이 열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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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소설이네요.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과연 문 밖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곧 다음 편도 올리겠습니다.

흥미진진해요 보팅 팔로우해요

감사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분이시군요. 저도 팔로잉하겠습니다.

앗..뒤가 터지기 일보직전....;;;;

네, 다행히도 문이 열렸네요.

문 밖에는 변기가 똵... 이어야 할 거같은 상황이네요.
어떤 상황이 문 밖에 기다리고 터질 거 같은 뒤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

제가 글을 이상한 곳에서 끊어서 개운치 못한 기대감을 안겨드렸네요 ㅋ 곧 3편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우 금손이시군요!

아이구 금손이라뇨. 과찬이십니다. 그래도 칭찬해 주시니 기분은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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