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에게 찬사를
토끼몰이라는 말이 있다. 시위자들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어 진압을 하다가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하면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서 시위자들을 폭도들로 모는 것이다.
토끼몰이가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나타났던 곳이 용산이었다. 재개발이란 미명하에 거기가 삶의 터전인 사람들을 강제로 몰아내려고 하다 그들이 결사항전을 하는 것을 폭도들이 시위를 하는 것으로 몰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관련 기사들을 보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폭력을 쓰고 그래서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는 것을 폭력으로 몰아가는 것이 온당하지 않은 일이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그저 폭력은 나쁜거지라고 말했다.
약자의 저항은 많은 경우에 극단적인 수단을 동반한다. 약자들은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분신,투신,단식,농성 등등 생명을 담보로 했거나 폭력을 동원한 것이기에 거칠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생존권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그런 거친 행동을 안타까워할 수는 있어도 왜 폭력을 쓰냐며 욕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며칠 전에 트럼프가 최선희의 펜스 비난 성명을 핑계삼아 정상회담을 취소하자 많은 사람들이 회담 취소는 북한의 책임이라며 북한이 잘못했다고 북한과 김정은을 비난했다.
용산참사 때 시위하던 철거민들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최선희가 펜스를 맹 비난한건 맞다. 하지만 그 맹비난을 유도한 사람은 펜스 그리고 펜스 뒤에서 판을 흔들길 원했던 트럼프다.
3월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김정은은 한미군사훈련이 예년 수준으로 진행되는 것을 이해한다는 그 전까지 북한에 대한 상식으로는 경천동지할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예년 수준으로 해달라는 제한이 걸려있긴 했지만, 항상 북한의 비난 대상이던 한미군사훈련을 이해한다는 말을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한 것이다.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김정은의 예년 수준이라는 부탁을 굳이 무시하고, 한번도 온 적 없던 F-22를 8대나 보낸다. 트럼프가 왜 그랬는지는 https://www.facebook.com/lee.s.hoon.524/posts/10157467298349358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트럼프는 북한과 김정은을 자극해 판이 깨질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우리와의 고위급 회담을 취소하는 것 외에 미국에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걸로는 판을 깰 명분이 약하다 생각한 트럼프는 펜스를 시켜 북한과 김정은이 그대로 지나치기 어려운 발언을 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5/22/0200000000AKR20180522011952071.HTML?input=1195m
펜스 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 출연해 "지난주 리비아 모델과 관련한 어떤 얘기가 있었다"며 "알다시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히 밝힌 것처럼 만약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안은 리비아 모델이 끝났듯이 끝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 김정은을 죽여버리겠다는 의미다. 북한으로썬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발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본인이 아니라 외무성 부부상인 최선희의 입을 빌어 ‘펜스’만을 비난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바대로 트럼프는 그 비난을 핑계삼아 미북정상회담을 취소한다. (심각할 것 같은 현장에서 배석한 사람들이 낄낄 거리며 웃어서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이 회담 취소에 대해 김정은 혹은 북한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비난은 온당한가?
토끼몰이 식으로 상대방을 몰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트럼프의 방식은 이해할 수 있다. 원래 외교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상대를 두고 저런 식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었던 북한과 김정은을 욕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강자는 원래 멋대로 해도 되지만, 약자는 영리하게 행동해야 한다. 약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히 영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약자를 비난하는 것이 옳은가?
난 잘 모르겠다.
심지어 그 후 대처는 박수받을만 하다. 최선희보다 딱 한 단계 위로 보이는 외무성 제1 부부상인 김계관의 입을 빌어 완전하게 무릎을 꿇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최선희보다 상급자이기 때문에 최선희의 말을 완전히 취소하는 효과가 있으며, 이후에 트럼프가 본인을 더 압박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나선것도 아니고 외무상도 남아있는 상태라 몇 발 더 물러설 곳을 남겨놓았다.
게다가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취소할 때 시점 또한 생각해봐야 한다.
김정은은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에 시동을 걸었으며 그 날은 비핵화의 중요한 스텝 중 하나인 풍계리 실험장을 폭파했다. 북한이 의지할 곳은 오로지 핵 뿐인 상황에서 카드를 버리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내놓은게 뭐 있나? 입 몇 번 턴거 말고 아무 것도 없다.
강자와 약자의 차이 때문에 트럼프가 유리한 위치에서 편하게 협상하는 것이나 김정은이 먼저 배를 까고 땅바닥에 구르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풍계리 실험장을 폭파한 날 정상회담을 취소한 트럼프가 아니라 본인의 암살 위협에 대해 다소 민감하게 반응한 김정은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난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참고로 맥스썬더에 처음으로 배치된 F-22는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스텔스+정밀 타격으로 요인암살이 가능해 전략무기로 분류된다. 미국은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하면 그것을 진짜로 실행할 능력이 있는 나라다.
트럼프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며 놀리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문재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판을 깨버릴 수도 있었다. 김정은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김정은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처했다. 본인이 비핵화와 종전, 평화를 향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들 문재인을 찬양하지만, 나는 트럼프의 정상회담 취소 이후 대처에 관해서는 김정은의 공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문재인이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는 하다.
김정은은 평화를 향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실행할 능력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문재인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걸 알아볼 눈이 있었다.
박근혜를 북한에서 어떻게 말했는 지를 생각해보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깍듯한 예우는 김정은이 문재인을 믿고 신뢰하며 어쩌면 존경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어쨌든 김정은은 문재인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도 알아보는데 못 알아보는 한심한 인간들이 대한민국에 참 많다.)
김정은은 그간 코믹한 헤어스타일과 체형, 복장 때문에 이상하고 코믹한 독재자로 오인받아 왔지만, 생각보다 훨씬 합리적이며 영민한 독재자인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이 시점에 대통령이 문재인인 것만큼이나 김정은이 북한의 지도자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줄요약 : 외모만 보고 사람 무시하면 안되갓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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