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 관한 생각들 (8) - 헌법과 여성 : 성평등 헌법으로 나아가기를!
한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은 중앙대학교의 설립자로도 유명한 임영신입니다. 이승만이 임명한 상공부장관이었던 임영신은 1949년 1월 13일 열린 제헌국회 재보궐 선거에서 미군정기 수도경찰청장이었던 장택상을 꺾고 여성 최초의 국회의원이 됩니다.
임영신은 당시 '대한여자국민당'이라는 정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데, 대한여자국민당은 비록 이승만 개인을 지지하는 우익 정당의 성격이 강했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남자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민주사회 건설"의 슬로건을 걸고 제헌국회에 여성 후보자들을 출마시키기도 했던 여성 정당이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정당, 대한여자국민당
대한민국의 첫 국회의원 선거인 제헌국회 선거에는 총 20명의 여성 후보자가 입후보하여, 중혼 반대, 여성의 재산권과 상속권, 남녀평등, 여성 지위 법률화 등의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여성의 92퍼센트 이상이 문맹이어서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웠고, 일부 남성 후보자들이 여성 후보자들의 선거 운동을 방해하는 공작을 벌였기 때문에 당선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듬 해에 재보궐 선거에 임영신이 당선되면서,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등장한 셈입니다.
그런데, 제헌국회 선거에서 여성 의원의 당선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제헌헌법을 제정할 당시, 여성들은 헌법 제정 과정에 단 한 사람도 참여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제헌헌법은 순전히 '남성들이 만든 헌법'이었습니다.
헌법은 모든 사람에게는 보편적인 인권이 있다는 근대적 인권관에 기초하여,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 실현을 보장하는 국가의 기본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에서나 한국에서나 처음 헌법이 제정될 당시, 여성의 참정권은 아예 없거나 매우 제약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보편적인 인권이 있다고 했을 때, 그 모든 사람에서 여성은 배제된 존재였던 셈이죠.
우리는 흔히 법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권자, 입법의원, 검사, 판사, 변호사 모두 여성들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처음 등장했던 것이 바로 법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법 자체가 남성 중심적인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법이 이처럼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던 것이 불과 십수년 전까지 유지되고 있었던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제도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호주제는 민법 상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의 관계를 등록하는 제도였으며, 남계 혈통을 중심으로만 가족을 구성하는 악습이었습니다. 동성동본 금혼제도 역시 남계 혈통을 중심으로 공유하는 성과 본관을 근거로, 혼인을 금지하는 말도 안되는 제도였죠.
이미 제헌헌법 제정 당시부터 성별에 의한 차별금지가 명문화 되고, 혼인에 대해 남녀동권의 원칙이 선언되어 있었지만 그건 선언적인 의미에 불과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을 비롯하여 여성 운동가들은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호주제 폐지와 동성동본 금혼 폐지 운동에 나섰지만, 이는 남성 중심 국회의 비협조로 번번히 가로막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호주제 폐지와 여성의 권리 확보를 위한 가족법 개정 운동은 특히 1970년대에 강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가족법 개정운동에 나선 이태영 변호사
앞서 제헌국회의 헌법 개정 과정에 여성들의 참여가 전무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현행 헌법의 제정 과정은 어떨까요? 예전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듯이, 87년 헌법은 주로 여당인 민정당과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의 협상과 합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민정당 그리고 그 합의를 이끈 이른바 '8인 정치회담'의 멤버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습니다. 여야의 합의를 기초로 개헌안을 작성했던 '개헌안 기초 10인 소위원회' 구성원 중에서도 여성은 전무합니다. 애초에 헌법 개정을 이끈 12대 국회의 국회의원 270여 명 중 여성 의원은 단 7명에 불과했습니다. 실질적으로 현행 헌법으로의 개정 과정에서도 여성들의 직접적인 참여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죠.
또 다시 개헌이 논의되고 있는 현재, 20대 국회의 경우 여성 의원 수는 48명으로 전체 의원의 17% 정도입니다. 작년까지 활동했던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소속 위원 36명 중 여성 의원은 다섯 명이구요. 현재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구성원 25명 중 여성 의원은 겨우 네 명입니다.
제헌국회 당시, 여성 의원이 한 사람도 헌법 제정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발전한 셈인가요? 그러나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을 염두해 본다면, 아직 국회에 여성 의원의 수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이처럼 남성들이 중심이 된, 남성들의 관점에서, 남성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헌법이, 온전히 성평등한, 성인지적인 헌법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성평등 헌법이야 말로 민주적 헌법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절반을 배제하고 비가시화 하는 헌법이 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헌 논의를 통해 지난 70년 간 여성의 참여가 배제된, 여성의 권리를 제대로 호명하지 않았던 역사를 반성하고 성평등 헌법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되었던 여성의 존재를 헌법에서 드러내고, 헌법의 조문 하나 하나가 성평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세심하게 검토하길 바랍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밝히면서, "나도 말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선언하는 '미 투 운동'이 연대와 지지 속에서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2018년이, 성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성평등 헌법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길 바랍니다.
제헌 국회의 성별 구성에 대해 생각해본적도 없는데다 한분도 여성이 없었다는데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게 슬프네요.
@홍보해
제헌국회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도 이렇다는게 참...ㅜㅜ 국회 헌법개정 특위 자문위에도 49명 중 여성이 단 다섯명...
10%라니.. 생각보다 훨씬 심하군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오타신고합니다 ㅎㅎ
헉 감사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