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다시보는 "짝"의 공포스러움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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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로 만 서른의 나이가 되었다.
신동엽 아재개그에 나도 모르게 피식 했더니 옆에 있던 여친이 아재라고 핀잔을 준다.
나이 서른살이 아재지 그럼 뭐냐고 했더니 왜 그리 순순히 인정해버리냐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짝의 애청자였다.
2011년 방영하기 시작해 2014년 출연자 사망으로 안타깝게 종영되기까지 매주 즐겨보곤 했었다.
대학 시절부터 외국에 나와 유학한지 꽤 되었던 당시의 나는 본토 우리나라 사람들의 데이트/연애 문화가 참 궁금했었는데 짝은 그런 목마름을 적셔주는 단비같은 존재였다.

짝은 "나라면 어떤 여자를 고를까" 하는 대리만족의 재미가 있었다. 무수한 일반인들 중 간혹가다 보이는 예쁜 여자의 출현. 그리고 도시락선택때 벌떼같이 몰려드는 남자들을 보면서 "역시 외모따지는게 나만 그런건 아니군" 하는 동질감을 얻었다. (미인대회출신편을 기억하시는가?) 그리고 세상에 이상한 여자보다는 이상한 남자들이 참 많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남자를 보면서 나는 스스로 그래도 저거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는 위안을 얻었다. (모태솔로편에 조개껍질남을 기억하시는가?) 그리고 세상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유아기적 트라우마를 못벗어나는 사람이 있고, 또 여성 입장에서는 그런 정신적/가치관적 결함조차도 재력이 상쇄한다는 사실에 일단 남자는 돈이구나 하는 현실감각을 얻었다. (이건 에피소드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짝을 처음 시청하기 시작했던 20대 초중반의 나에게 있어 여성은 아직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수가 없었다. 왜 삐지는지도 모르겠고 기쁘게 해주기는 왜그리 어려운지 모를 존재였다. 허구한날 싸우고 또 화해하고를 반복했다. 지친 연애가 끝나서 솔로가 되면 다시 또 여자친구를 어떻게 사귀는지를 몰라서 고생을 했다. 내가 가진 장점이 뭔지도 모르고 인기 좋은 친구 따라하려다가 이불킥할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짝이 종영하게 될 즈음 20대 후반에 들어선 나는 좀 나아졌다. 짝을 보며 소개팅 대리만족을 하던 나는 줄줄이 소개팅을 해보게 되었다. 여자들과의 대화가 수월하게 되면서 10대 후반과 20대의 절반동안 쌓여왔던 연애욕이 폭발하면서 중간 중간 텀이 없이 연애를 했다. 어릴 적에는 여자가 바라는 남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그냥 생긴데로, 지금 있는데서 조금만 더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어보자는게 모토가 되었다. 나름 여러 다른 색채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나에게 맞는 사람은 누구인지 이제는 대충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이 서른줄이 되었다. 미스테리의 존재였던 여성은 이제 마주 앉아 몇마디 대화를 나누어 보면 어떤 색채를 가지고 있는지 느껴지게 되었다. 대화를 좀 더 길게 하다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걱정을 하고 사는지도 느껴진다. 마치 남자인 내가 다른 남자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 볼수 있는 것 처럼 무지의 영역에 있던 이성인 여성이라는 존재가 앎의 영역으로 옮겨 온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알고싶어 했던 존재를 드디어 이해하게 된 나는 불편해진다. 여성이 언짢아지고, 남성이 못마땅하고,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그래서 다시 보는 "짝" 은 이전과 사뭇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이전에는 무지로 인해 웃어 넘겼던 남성과 여성의 특성들이 훤히 보이다 못해 내 기분을 암울하게 만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참가자 여성이 남성과 여성이 만나 사귐에 있어 여성 스스로가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니꼽다. 남성이 구애를 하는건 당연하며 여자는 스스로가 그 노력을 심사하고 평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새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노력의 이면에는 남성의 비굴함이 자리하고 있고 사랑의 제스쳐라고 생각했던 남성의 행동들이 결국 가서는 여성에 대한 기대와 보상심리로 전환된다는걸 모르는 그 무지함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성의 비굴함을 애정의 깊이로 잘못 해석해 기뻐하다가 나중 가서는 이내 싫증을 낼 모습이 자동적으로 그려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평가해보기 전에 남자의 가치를 평가하려고 드는데 대개 그 잣대에는 재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데 과연 그 정도 학력과 직업으로 나를 먹여살릴수 잇겠냐는 의문을 가지고 그걸 실제로 남자에게 캐묻기까지 하는 뻔뻔함은 또 어떤가 (워딩이 어떻든 간에 골자는 그것이다).

남자도 한숨이 나온다.
왜이리도 줏대가 없고 비굴한가? 꼭 남자인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 어색한 이벤트를 하니까 앉혀 놓은 여자만 불편하다.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시청자들 손발이 퇴갤할 정도로 오그라들거라는걸 본인들도 알텐데 왜 이벤트를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을까? 그것은 본인이 노래를 잘 불러서, 악기를 딱히 잘 연주해서가 아닐 것이다. 내가 이렇게 창피함을 감수할 정도로 엄청난 노력을 앞으로도 쏟아부을테니 나를 선택해달라는 일종의 선거 공약인 것이다. 근데 왜 공약은 남자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이렇게 왜곡된 구애 방식에 남자들 끼리 서로 출혈 경쟁을 해가며 동의하고 있는가. 짝의 남자들을 지켜보는건 마치 자존감이 없던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반은 부끄럽고 반은 노력이 가상하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다. 혀 뒷맛은 살짝 쓰다.

하지만 다시 보는 "짝" 이 정말로 공포스러운 이유는 거기 나오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이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은 몇년이 지난 지금 이제 재미를 따지기 전에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따져야 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나는 어느새 거기 나오는 남자들을 보면서 저러니 장가를 못가지, 여자들을 보면서 저러면 시집 가기 한참 멀었겠구만을 연발하고 있는 내 스스로를 발견한다. 남자가 자기 생긴 건 생각도 안하고 여자 참가자 몸매를 평가를 하니까. 여자는 자기가 웃을때 잡히는 눈가의 주름이 남자한테는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남자 가치판단하는데만 열중하고 있으니까. 남자는 안하느니 못할 말을 해서 본인 점수를 깎아먹고 있으니까. 여자는 싫증내고 짜증을 내면 자기 가치가 올라간다고 착각을 하고 있으니까. 남자는 직업이 처지면 시작 전부터 죄지은 남자마냥 위축되고 있으니까. 여자들은 본인들은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거부한다고 생각하지만 유독 금전/재력 문제에서는 옛가치관을 고수하니까. 남자들은 주관이 강한 여자를 보면서 드세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하고 다루기 쉽고 너무 똑똑하지 않은 여자를 쫓아다니니까.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사람은 다 자기만의 매력이 있고 짚신도 다 짝이 있다고 생각하던 예전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지금의 나는 머리가 말랑말랑 하던 그때와 사뭇 대조된다. 이제 나에게는 해서는 될말과 해서는 안될 말,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 가져야 할 생각과 갖지 말아야 할 생각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렇게 쫓아다니며 소개팅을 하던 그 시절의 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색채에 대해 놀라워 했던 반면 지금의 나에게는 모든 것이 흑과 백으로 나뉘는거 같다.

이성에 대한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이 나의 흑백판독기는 나에게 축복인줄 알았다. 한동안은. 하지만 그게 나로 하여금 혀를 끌끌 차고 그럼 그렇지를 연발하고 쟤는 이래서 안되고 걔는 저래서 안돼를 머릿속에 되뇌이게 만들줄은 몰랐다. 다시보는 "짝"은 그래서 공포스럽다. 내가 어느새 꼰대가 되었음을 확실히 인식시켜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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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칼럼 잘 보았습니다. 사람은 사람일 뿐인데 평가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좋은 점을 보는 게 훨씬 낫겠지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기쁩니다.
평가와 비난이라기 보다는 선입견이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발생된다고나 할까요?
사고방식도 경직되어가는게 조금씩 느껴지구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봅니다.

글이 편안하고 가독성 좋네요. 글 자주 올려주셔서 생각 공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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