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볼래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in #kr7 years ago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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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하는데 즉, 중심이 되는 나라든 인물이든 그 주관적인 시각과 그와 반대되는 주변과의 끊임없는 투쟁의 전개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와 비아의 투쟁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읽고 있노라면 내 안에 숨어있던 애국심이 올라와 고취되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강단이 있는 신채호의 의지와 절개가 역사에 대한 철학과 서술을 통해서도 느껴진다.

정여립과 장자크 루소의 차이

"같은 종류의 행위일지라도, 시간성 및 공간성의 파급력에 따라 역사적 가치의 크기가 결정된다."
"정여립이 400년 전에 군주와 신하 사이의 윤리를 타파하려 했던 동양의 위인이라고 하여, <사회계약론>을 저술한 장자크 루소와 대등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여립의 영향을 받은 검계나 살주계 등의 활동이 전광석화처럼 발생하기는 했지만, 루소 이후에 파도처럼 웅장하고 격동적으로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 비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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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지극히 멀리하고 '있는 그대로'의 기록을 지향하는 신채호의 역사철학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와 독일 역사가 랑케와 그 방향을 같이 하고 있다.

"역사는 역사 자체를 위해 기록해야 한다.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의 객관적 흐름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역사다."
"대개, 가까운 사람과 존귀한 사람의 치욕은 숨기는 법이다. 주나라 천자가 정나라 제후의 활에 맞은 사실과 노나라 은공*소공이 피살되거나 쫓겨난 사실을 <춘추>에 길록하지 않은 공자의 편협함이 중국 역사가들의 습관이 되었다."
공자의 역사왜곡을 몇 번 더 지적한다. 유가사상의 역사가 긴 우리나라에서 공자의 잘못을 명확히 집어 지적하는 신채호의 모습에 갑자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실수가 있을 수 있는 법!! 때로 거기 젖어 있으면 그것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엄청난 독서가로 알려진 신채호는 그 어려운 당시에 어려운 책들을 어떻게 읽었을까 싶을 만큼, 서양철학자나 역사가들이 인용되어 나온다. 앙리 베르그송, 올리버 크롬웰, 장자크 루소, 나폴레옹 등등

책 초반에 개인과 환경의 관계에 대한 그의 확고한 입장이 나타난다. 이는 국부론에서 보여준 아담스미스의 견해와 유사하다. 그 또한 타고난 본성보단 교육이 그 사람의 인격과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그렇다면 개인이 사회라는 풀무에서 생겨난다면 개인의 본성은 어디에 있을까? 만약 개인도 본성이 없고 사회도 본성이 없다면 역사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개인이나 사회의 고정적인 본성 같은 것은 없고 환경과 시대에 따라 본성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또 다시 원효와 퇴계가 서로 뒤바뀌어 태어난 가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시대와 환경이 인물을 배출하기는 하지만 인물이 시대와 환경을 이용하는 능력이 제각각이다."

퇴계와 원효가 서로 뒤바뀌어 태어나도 그 시대와 환경 안에서 퇴계가 불심자가 되거나 원효가 유가사상가가 되지는 않을 꺼라는 얘기다.

개인과 민족의 두 가지 성질, 항성(불가변성)과 변성(가변성)

"두 가지 특성을 조절하여 중용을 취하고 천지처럼 장구한 생명력을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역사를 통해 민족적 통찰을 얻어야 한다."

여기서 역사연구에 대한 그의 동기가 보인다. 바로 애국이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어 정여립과 최치원의 두 사례를 보여준다.

"이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사회가 안정적일 때는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가 불안정적일 때는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기 쉽다는 것이다."

삼강오륜이 자리잡은 안정된 사회에서 유교 윤리관에 대한 개혁을 설파했던 정여립은 사지절단을 당하고 온 집안이 멸살당했다. 반면 '하급 재주꾼'이라고 언급된 최치원은 중국에서 유학을 했을 뿐, 그리고 조선을 중국화하려는 생각뿐이었다며 '인격적 자주성 없이 노예적 습성만 발휘하는' 이런 인물을 경계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당시 새로운 인물에 대한 수요가 커서 일개 중국 유학생에게 큰 스승의 칭호가 돌아갔다는 것이다. 여기서 썼던 재밌는 표현

"때만 잘 만나면 더벅머리 아이도 성공할 수 있다"

신채호가 거듭 싫어하는 인물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다른 이는 바로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 이 분은 책에서 내내 까인다. 민족의 자주성과 역사에 대한 객관적 기록을 그 무엇보다 강조했던 신채호이기에...

단군왕검부터 삼국시대를 아울러 고대사에 대한 확고한 검증의 과정을 거친다. 왜곡되고 잘못된 내용들은 바로 잡고 그 역사가의 그런 점을 꼬집는다. 읽다보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이를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된다. 기억에 남을만큼 나의 역사정체성에 영향을 준 내용 몇 가지 더 공유하고 싶다.

가장 먼저는,

백제의 중국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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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았는데 이제서야 확실해졌다. 중국의 역사서 <양서>와 <송서>에 "백제가 요서군*진평군을 빼앗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대주의나 백제에 대한 신라의 증오로 우리 역사서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오히려 빠져있다고 한다. 중국 역사서의 기록에 대해 이런 저런 평가들이 있다고 하는데 내게는 이 내용의 임팩트가 임팩트가 상당히 강하다. 역사적 자부심에 힘을 더해준다. 무지몽매했던 일본을 왕인박사를 통해 깨워준 백제를 떠올리면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의 위치가 약했다는 인식이 들어올 수 없다. 이런 사실들에서 내 안에 왠지 모르는 약소국의 정체성이 깔려있는 게 이상하고 때론 분하다.

화랑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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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엽 이후로 화랑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사라져 직접적 영향을 받은 사람은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과거의 유풍을 통해 조선을 조선답게 만든 것은 화랑이다. 그러므로 화랑의 역사를 모르고 조선사를 말하는 것은 골수를 빼고 인간의 정신을 찾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잘 생긴 사람을 뽑아서 화장을 시키고 화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요즘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아이돌 친구들이 그냥 떠올랐다. 크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그들이 화랑과 매칭이 잘된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설화로만 생각했던 이야기였는데 실제적이고 중요한 역사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스토리가 사뭇 가슴에 와닿았다.

"몇 해 전에 일본인 이마니시 류는 북경대학에서 조선사를 강의할 때 <온달 열전>을 실제 역사로 볼 만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정말 무식한 말이다. 온달의 죽음을 계기로 고구려신라 동맹의 길이 끊어지고 백제고구려 동맹이 성립하여 삼국 흥망의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이런 온달에 관한 기록을 남긴 <온달 열전>은 삼국시대의 몇 안 되는 글이다."

연개소문과 갓쉰동전

<갓쉰동전>은 고구려의 위대한 장군 연개소문에 대한 이야기인데, 중국에서 전해지는 설화란다. 이야기의 일부가 실려있는데 그냥 그 자체로도 너무 흥미로워 전부를 읽어보고 싶어진다. 제목부터 순우리말이고('개'는 '갓' '소문'은 '쉰') 나오는 여성인물들의 이름이 문희, 경희, 영희인데다 중국을 '달딸'이라고 부르는 점에서('달딸'은 몽골을 지칭하는 '타타르'에서 왔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설화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공간적 배경도 한반도다.

조선상고사의 마지막 면을 보며, 신채호의 가난과 단명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슬프다. 하늘이 감춰둔 비사를 보고 나는 무엇을 얻었던가? 인력과 돈이 없으면, 재료가 있더라도 나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지금까지, 자료의 수집 및 선택 등을 통해 얻게 된 경험을 소개했다. 그런데, 슬프다.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양의 문헌에 관한 대형 도서관이 없으면 조선 고대사를 연구하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 아직 만족할 만한 도서관은 없지만, 그래도 동양에서는 가장 나은 편이다. ... 그런데도 일본에서 서양학의 걸물이 나오지 못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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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과 비애가 동시에 느껴지는 구절이다. 이것이 그의 운명일지 모르나,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그가 더 나은 환경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조명할 수 있었다면 어떤 결과물들이 나왔을까?

조선상고사는 몇 번 더 읽어야 좋은 책 같다. 그렇게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심겨진 잘못된 역사관을 고치고 자주적인 의식을 고취시키고 싶다. 결국 신채호가 강조했던 건 독자적으로 사고하라는 게 아니었을까?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독자적 사고에 가장 취약한 것 같다. 그래서 더 끌렸나보다.

이 책을 보며 계속 민족적 영웅 이순신이 떠올랐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순신을 처음 주목한 이가 신채호란다. 영화 '명량'을 한 번 더 보고나서 '이순신전'과 '난중일기'를 주문했다. 예전엔 무인의 일기라 단순하고 지루할까봐 망설이곤 했는데 왠지 기대된다.

부족한 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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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역사에 좀 관심을 가져야 겠어요
은근 재미 있네요

감사합니다. 저두 좀더 넓혀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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