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역사와 문화 5. 백년전쟁과 중세 프랑스의 비주류, 잔다르크
오늘은 중세에 있었던 백년전쟁과
소작농의 딸이였던 즉, 비주류였던 잔다르크에 대해 알아보아요.
-1. 백년 전쟁
1337~1453년, 116년간 벌어진 전쟁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을 말해요.
물론 116년 내내 싸운것은 아니랍니다.
-2. 백년 전쟁의 원인들.
이 두나라는 왜 116년이란 세월을 치고 박고 했을까요? 그 원인을 알아보아요.
① 영토 분쟁 : 프랑스 내 지역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 왕들의 분쟁
윌리엄 사후 영국 왕들과프랑스 왕들이 영토 분쟁을 시작합니다.
프랑스 왕과 영국 왕의 관계는 주군과 종신 관계 였어요.
복잡하니 잘 들어 주세요.
- 9세기 초반 노르만 족이 프랑크 왕국을 침입해요. 세느 강 하류에 근거를 마련하죠.
911년 서프랑크 왕으로부터 이지역을 양도 받아 노르망디 공국이 세워집니다.
=> 노르망디 공국의 탄생 -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1066-1087)이 영국의 왕위를 찬탈합니다.
영국에 노르만 왕조가 시작 되죠.
=> 영국의 노르만 왕조 시작 - 이렇게 프랑스 왕과 영국 왕의 주종 관계가 성립됩니다.
프랑스의 신하가 영국에서 왕이 됐으니, 영국이 프랑스의 신하게 된 이상한 관계가 성립됩니다. - 그런데 윌리엄 사후 영국 왕들과 프랑스 왕들 사이에 영토 분쟁이 시작됩니다.
② 플랑드르 지방을 둘러싼 분쟁
- 플랑드르 지방은 프랑스와 인접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영국과 밀접했었죠.
- 모직물 공업으로 번영했지만 영국산 양모 수입 여하에 따라 번영이 좌우 됐죠.
- 프랑스에게는 영국과 동맹을 맺을수 있는 플랑드르 지방은 프랑스에게 큰 위협이였어요.
(플랑드르 지방과 프랑스 영토를 확인해 주세요)
③ 왕위계승문제
- 1328년 프랑스의 왕위계승 문제가 발생 합니다.
- 1328년 샤를 4세가 사망하고 카페 왕조의 직계가 단절 됩니다.
-3. 백년 전쟁의 단계
① 1단계 (1337 - 1360)
프랑스의 계속된 패배
② 2 단계 (1360 - 1404)
군사적 회복과 휴전의 단계
③ 3 단계 (1404 - 1422)
프랑스 두번째 파국의 시기
④ 4 단계 (1422 - 1453)
프랑스 최종 승리.
-4. 백년 전쟁의 시작
- 1337년 5월 프랑스의 필립 6세가 기엔느의 봉토 몰수를 선언합니다.
- 1337년 10월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며
필립 6세에게 드렸던 신종선서 부인하며 선전 포고를 합니다.
-전쟁이 시작 됩니다. - 프랑스군이 연전 연패를 합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을 비교해보면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고 약 150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약 400만명의 인구 였죠.
백년 전쟁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영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었일까요?
(기병중심의 프랑스와 보병중심의 영국)
-5. 영국의 초기 승전 요인들
- 영국에게는 중무장한 프랑스 기병들을 막아 내는데 적합했던 무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장궁이죠.
장국을 이용해 백년 전쟁 3대 전투 : 크래시(1346), 푸아티에(1356), 아쟁쿠르(1415) 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영국군이 승리하죠. - 전쟁의 주무대가 프랑스 영토였습니다.
영국 병사들은 풍부한 약탈물을 기대하고 열심히 싸울수 있었죠. - 프랑스인들은 분열해 버립니다.
지방의 자치권 주장에 대해 프랑스 왕들은 두려웠습니다.
영국이 프랑스 내부 불화를 조장하기도 했죠. 그리하여
1419-1435년 부르고뉴가 이탈해 영국과 결탁 합니다.
중간중간 반란들도 일어나죠.
1357년 파리 시장 에티엔느 마르셀의 반란
1358년 자크리의 난 (농민 반란)이 있죠.
(잔 다르크)
-6. 잔 다르크의 등장과 프랑스의 승리
① 15세기 초 프랑스의 상황 - 1392년 '미친왕' 사를 6세의 정신 이상이 발생합니다.
-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는 대패를 하죠.
- 1420년 트로아 조약이 체결됩니다.
영국의 헨리 5세가 샤를 6세 딸과 결혼해 프랑스의 왕위 계승자가 된다는 내용이였죠. - 영국의 헨리 6세(1422-1461)가 "영국과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 합니다
샤를 7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잔 다르크. 팡테옹의 벽화.
② 잔 다르크(1412-1431)
- 1428년 영국은 전 프랑스를 지배할 목적으로 오를레앙을 포위합니다.
- 잔 다르크가 등장합니다.
로렌의 동레미 라퓨셀 소작농의 딸으로 태어납니다. - 1429년 오를레앙 및 랭스를 회복 합니다.
- 1429년 랭스에서 샤를 7세 (1422-1461)의 대관식을 합니다.
- 1431년 부르고뉴인들의 포로가 되어 잔다르크는 영국에 넘겨집니다.
- 루앙 종교재판서 잔다르크는 마녀로 규정되어 화형을 당합니다.
화형당하는 잔 다르크. 쥘 외젠 르느뵈의 그림.
③ 잔 다르크의 승리 요인
- 적극적인 공격 위주의 전략으로
프랑스군의 공격정신을 견인합니다.
기존 프랑스군 지휘관들이 방어 위주 전략이였다면
잔다르크는 영국군의 요새를 정면 공격하죠. - 잔다르크의 진두지휘는 프랑스 군인들의 정신적 일체감(무형의 전력)을 발휘 하도록 합니다.
- 전투 수행 병력을 기존 기병에서 보명과 포병의 결합으로 결합합니다.
공선전시 화포를 활용하죠 ( 포 전문가 알랑송 공작의 도움이 컸답니다.)
(보병 중심의 영국군과 기병 중심의 프랑스군)
④ 성녀 잔 다르크
- 1456년 교황청에 의해 마녀 혐의가 벗겨집니다.
- 1919년에는 정식 성녀로 인정되죠.
⑤ 백년전쟁과 잔 다르크의 의미
- 소작농출신/ 여성/ 군사적무지/ 1년도 안 되는 군 경력 그녀는 비주류 였죠.
하지만 그녀는 도덕적 힘의 우위를 생생히 증명합니다.
-7. 프랑스의 승리
- 잔다르크 사후 전세는 프랑스에 유리하게 전개 됩니다.
- 1935년 아라스의 화홰
영국과 동맹을 포기한 보르고뉴와 샤를 7세가 화홰를 합니다. - 1450년 노르망디에서 프랑스가 승리합니다.
- 1452년 보르도에서 프랑스가 승리합니다.
- 1453년 칼레만 영국의 영토로 남고 프랑스에서 영국 군이 철수 합니다.
(프랑스의 상징 튤립과 영국의 상징 사자)
-8. 백년 전쟁의 의의
- 양국의 정치적 발전을 가져옵니다. 근대 국가로 도약하는데 큰 발판이 되죠.
프랑스는 백년 전쟁을 계기로 상비군을 보유하게되고 왕권이 강화 됩니다.
영국은 장미전쟁(1455-1485) 이후 왕권이 강화 되죠. - 양국의 국민의식 즉 근대적 애국심이 성장됩니다.
근대 국민국가의 밑거름이죠. - '신흥세력' 영국과 '전통의 강호' 프랑스의 새로운 관계가 정립됩니다.
특히 영국은 당시 선진국 프랑스와의 대등한 전쟁을 벌임으로써 대륙에 대한 열등 의식을 탈피하죠. - 양국은 백년 전쟁을 통해 서유럽의 지도 세력으로 부상합니다..
가장 오래 걸렸지만 가장 못 쓴글 같아 걱정이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Ourselves 캠페인
셀프보팅을 하지 않고 글을 올리시고
ourselves 테그를 달아 주시면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줄꺼에요
Cheer Up!
I do not khow china language.But I like this post.
It's Korea Language
말씀처럼 군사적무지에도 도덕적 힘의 우위를 증명해낸 점이 정말 놀랍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재밌게 잘보았습니다! 오늘도 술술 읽어내려갔네요:)
항상 깔쌈한 정리 감사합니다!
와 좋은글이네요 보팅금액은 작지만 꼭 보팅하고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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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시리즈 연재가 계속 되면 먼나라 이웃나라 스팀잇편 완성 되겠네요
정리를 진짜 잘해주시네요~~잔다르크!!!!ㅎㅎ잘읽고갑니당
치킨장학금에서 나왓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