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해리는 샐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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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쓴 단편 소설입니다. 조금 깁니다. 잘 읽어 주세요.

그 남자는 오늘 기분이 안 좋았다. 박람회 초대권을 누나네 식구들이 가져가 버리고 나머지 한 장은 약속한 사람에게 줘야만 했다. 단지 그것만이라면 평소의 그 남자의 성격으론 허허, 하면 웃을 일이었지만, 그 날은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 남자는 화창한 날과 미풍이 불어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고, 여름의 문턱에 다가선 청량한 날씨를 싫어한다. 행복의 밀도가 본인의 의지하곤 상관없이 내키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안겨오기 때문이다.

종로 옛 국세청 앞에서 그 사람을 만나 초대권을 주고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질 무렵, 그 남자는 문득 만날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취소한다. 그건 순전히 날씨의 탓이다. 생각보다 많이 더웠고, 생각보다 행복한 기운들이 여기저기 기운차게 흘러 다니기 때문이었다.

"이 좋은 날에 우중충한 넘끼리 만나면 삼 년 재수 없을 거 같다. 담에 보자."

그 남자는 호기있게 말을 하곤 끊어버린다. 사실 그 남자의 친구도 그 남자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영화는 따로 보자고, 남자끼리는 다신 보지 말라고 굳은 맹세를 한 처지에 스스로의 약속을 굳이 깨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 남자는 천천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그 남자는 문득 자기의 옷차림이 맘에 안든다.
이런 날씨였으면 반팔이라도 입을 걸, 생각해보니 옷도 가을 옷이다. 쇼윈도우에 보인 그 남자의 모습이 옷차림만큼이나 무거워 보인다.

이때였다. 저 뒤에서 그 남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진 않았지만, 아니 정확히 어떤 소리인지 몰랐지만 그 목소리의 톤이나 크기가 남자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뒤를 돌아 본 그 남자는 한 여자를 본다. 아마도 여기저기 기운차게 흘러 다니는 행복들은 그녀가 흘리고 다닌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모습. 우아한 자태. 민소매를 입은 그녀의 어깨가, 살짝 웃는 그녀의 입술이 그 남자를 부르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잘있었어?"

그녀가 그 남자에게 다가온다. 그 남자는 그제서야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한다. 그녀는 그 남자를 천천히 본다.

"살이 찐거 외에는 변한게 없네. 그대로야. 안더워? 오늘 날씨 많이 덥지?"
"어~~ 그렇죠 뭐. 나와 보니 조금 덥네요."

그 남자는 3년 만에 만난 그녀가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얘기하자 당황이 된다.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은 한 것을 무척이나 부끄러워한다.

"하하하. 왜그래? 반갑지 않은 모양이네. 난 반가운데. 그런데 아까 그 아가씨 애인이야? 이쁘던데."

'아니야. 오늘 줄게 있어서 잠시 만난거야. 넌 더 이뻐진거 같다."

"그래? 고마워. 요샌 나이 먹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친하지 않아? 아까 보니깐 둘이 잘 어울리던데. 잘해보지."

“그냥 아는 사이야.”

그 남자는 약간의 소리를 높인다. 그녀는 잠깐 머뭇거리다 그 남자의 손에 든 음식 박람회 팜플렛을 본다.

“나 지금 음식 박람회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

그 남자는 그녀의 말에 손에 든 팜플렛을 본다. 그리고 잠깐 주위를 살펴본다. 그녀의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식구들은 시골에 있어. 오늘만 휴가 받은 셈이다. 같이 갈래? 너도 갈려고 한거 아니야?”

“정말 가려고 했던 거야?”

“그게 중요한건 아니잖아. 같이 가자.”

그 남자는 그녀와 얼마쯤을 걸어 그녀의 차에 올라탄다.
그 남자는 말이 없다. 3년 전 만난 그녀.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고, 그녀가 그 남자의 맘을 알고 문을 열어보이자, 내심 반가워했던 그 남자. 아름다운 외모에, 누구라도 뒤돌아 볼만한 몸매에, 좋아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한 그런 그녀. 그렇지만 그 남자는 그녀를 만난 것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결혼식 때 왜 오지 않았어?”

“기다렸어?”

그 남자의 질문에 그녀는 운전하는 도중에 그 남자를 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조그맣게 흔든다. 그 남자는 다시 말이 없다.

2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자 벌써 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남자는 많은 사람들을 보자 보러 갈 마음도 사라지고, 벌써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 남자는 그녀를 본다. 그녀는 그 남자하고는 다르게 눈이 빛나고 있다. 나눠주는 모든 팜플렛을 받아 챙기고는 일일이 본다. 입구에선 약도를 보며 행사하는 시간을 일일이 대조해서는 관람할 계획을 세운다.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를 본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다. 그 남자는 그런 그녀를 옆에서 가만히 따라만 다닌다. 두 장의 입장권을 사고 올 무렵, 그녀는,

“이거 다 보려면 세 시간은 걸리겠지?”

그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휴, 도중에 보다가 나오는 건 넘 잔인해. 우리 시원한 맥주 마실래?”

그녀의 제안에 그 남자는 두말없이 입장권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 둘은 근처 호프집에 들어간다.

운전을 해야 하는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를 단숨에 들이킨다. 시원하다를 연발하며 마시는 그녀. 그 남자는 계속 말이 없다. 한참이 지났을 무렵, 그녀가 말을 꺼낸다.

“나 안보고 싶었어?”
“모르겠어.”
“몰라?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이젠 그런 맘도 없다는 거야.”
“정말? 야 많이 변했다. 나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언제인데.”

그녀의 허물없는 말투에 그 남자는 다시 옛날의 감정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입술이, 가슴이, 매끈한 다리가 예전의 그 감정으로 그 남자를 인도한다.

“따라 다닐 때 잘하지. 그때 얼마나 좋아했는데.”
“좋아했다고? 사랑한다고 했잖아.”
“네가 거부했잖아.”
“거부한건 아니다. 다만 널 오래 만나고 싶어서 그랬는데.”

그녀는 그 남자하고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자신의 얘기는 숨기지 않았고, 편안한 그 남자의 마음에 넉넉히 자리를 잡아 쉬었다가 가곤 했다. 그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힘을 얻는다.

그녀는 그 남자가 좋았다. 여자 친구보다 더 비밀 얘기를 할 수 있고, 내가 무엇을 하던 넉넉히 품어 주는 그 남자가 편했다. 하지만, 이런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는 나쁜 년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해서 어떻게 하자고. 그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같은 연애에 그 남자를 끌어드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남자하고의 결혼은 생각하지 않았기에 스스로도 자기가 천박하고 현실주의자라는 걸 알았기에, 그 남자를 가까이 하기 싫었던 것이다. 선을 보며 자기의 조건에 맞는 사람을 고를 때에도 그 남자는 묵묵히 욕을 하지 않고, 천박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켜봐 주었다. 그 남자한테 미안한 맘도 들었지만, 그래서 놓아주고도 싶었지만 자기의 편리함으로 인해 놓치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자기 맘을 알면서 끝까지 고집했다. 친구로서 남아달라고...

그 남자의 눈길을 외면하면서, 노래방에서의 키스도 공원에서의 손을 잡았던 것도 늘 친구의 경계선으로만 생각했다. 여기까지 만이라고..

그 남자는 그녀의 마지막 밤을 기억한다. 모텔 방에서 술이 취한 상태에서 유선 TV에서 나오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그녀는 그 남자에게 “해리는 샐리를 좋아하지 않아.” 라고 말한다. 그 남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마치 둘 사이를 예견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나랑 자고 싶어?”

그녀가 말한다.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난 싫어. 널 잃고 싶지 않아.”

그 남자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다. 의아해 하는 그녀. 약간 화가 난 얼굴이다.

“영화 찍어? 대사 졸라 유치하다.”
“진짜야. 농담 아니야.”
“설사 지금 너하고 잔다고 해도 맘은 변하지 않아.”
“맘이 어떤데?”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맘.”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그래.”
“핏, 거짓말.”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들이 자기를 어떻게 봐왔는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그 남자의 맘이 거짓은 아닐지라도, 아니 그게 진심일지라도 지금의 그 남자의 맘은 자기를 좋아하는 거라고 알고 있기에 자기가 손을 내밀 수는 없었다. 그래 한번 자주자, 라는 맘도 있었다. 어차피 숨기고 모른체하는 감정이기에 원하는 것을 줘버리자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손을 내밀지 못할 바에는 내민 손도 잡을 수 없는 일이었다. 편하게 맘가는데로 지냈으면 했지만 그렇게 안하는 것이 그 남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늘 편하게 대해주려는 그 마음 씀씀이가, 배려해 주는 그 넓이가, 이해해 주는 그 깊이가 얼마나 자기희생이 필요한지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텔에서 그 남자가 어떤 행동을 하던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 그녀지만, 받아들인 마음이 오히려 그 남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가자. 여기 너무 답답해.“

그 남자는 그녀의 말에 냉장고에 음료수를 꺼내고 마신다.

“너무 아까운데.”
“뭐가?”
“들어 온지 두 시간만에 나가는게 말야.”

웃는 그녀와 함께 나온 그 남자는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다. 그리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창밖을 보는 그녀를 본다. 말하고 싶었다. 그런 식의 결혼은 하지 말라고, 사실은 널 사랑하고 있다고, 그렇지만 너의 감정이 원하는 만큼, 너에게 부담이 안가는 만큼 널 사랑했다고, 솔직하게 그 남자의 감정을 이 순간에 드러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다.

“해리는 샐리를 사랑하지 않아.”

그 남자는 여자에게 선언을 하듯 말한다.

“그래.”

그녀는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유도 묻지 않고.

그 이후로 그 둘은 만나지 않았다. 전화로 곧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 상대 남자가 그 남자가 보기에도 너무나 훌륭한 사람이란 걸 알기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청첩장을 보냈지만 그 남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청첩장의 의미를 그 남자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남자는 또 자신의 감정을 속일 자신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그 남자는 사랑에 빠졌는지 모른다. 그녀는 그 남자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의 선을 스스로 뛰어 넘을 수 없었기에 조금은 그 남자한테 그런 것을 원했는지 모른다. 조금은 자신의 행복한 생활이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 남자가 더 행복하기를 더 좋은 여자를 만나기를 원하는지 모른다.

“해리가 샐리를 사랑한 거 같지 않아?”

차에 내려 인사를 하려는 그 남자에게 그녀가 물었다.

“샐리는 해리를 사랑했을까?”
“응.”

그녀는 단숨에 대답한다.

“왜?”
“해리가 샐리를 찾아 달려왔잖아. 그것만으로 샐리는 해리를 사랑한다.”
“그렇군.”
“해리가 샐리를 사랑했을까?”
“아니.”
“왜?”
“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 나였으면 그런 생각도 안하고 달려 갔을거야. 고민도 안하고.”

그녀는 빙그레하고 웃는다.

“친구하고 애인하고 차이점이 뭔지 알아?”
“....”
“친구는 고민하게 하지 않고 편하지만 애인은 상대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면서도 그를 바라보는 거지.”

그녀의 차가 떠나고 그 남자는 잠시 생각한다. 그때 그녀하고 하룻밤을 지냈다면 해리처럼 그녀를 찾아 갈 수 있었을까? 그 하룻밤으로 모든 걸 바꿀 수 있었을까?

햇살은 부드러워 지고, 행복의 무게만큼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있다. 그 남자는 잠시 주위의 사람들을 쳐다보다 친구한데 전화를 건다.

“답답하게 웬 집구석이야. 빨랑 나와. 표 예매한다. 뭐라고? 삼 년 재수 없다고 누가 그랬어? 우린 친구잖아. 친구끼리 영화 보자는데 뭐가 말이 많아. 빨랑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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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단비 같은 소설이 등장했네요! 감사합니다!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짱짱맨홍보대사입니다.(라고 생각하는중입니다.)

팔로우+보팅+리스팀+트위터홍보 해드리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활동하려고 합니다

짱짱맨 태그 보고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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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팅~ 응원합니다

대단 하십니다! 소설을 쓰시는 분이시군요. 가끔 들려서 하나씩 읽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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